137차 한국교회사학회 | 2018. 6. 2. 감리교신학대학교

 

지형은의 말씀과 삶이 어우러질 때에 대한 논찬

 


 

지형은 박사의 말씀과 삶이 어우러질 때는 신학과 성서와 목회에 대한 발표자의 학문적 통찰과 현장 목회 경험이 잘 어우러진 글이다. 먼저 발표자는 켄터베리의 대주교였던 안셀무스(Anselmus Cantuariensis: 1033/4-1109)의 유명한 명제 “Cur Deus homo”를 인용하며, 신학(神學)이란 왜 신이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탐구라고 주장한다. 그는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된 말씀이 육신이 된 사실을 언급하며,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써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몸과 물체적인 일상성을 거룩하게하기 위해서 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나 물질을 속된 것으로 여기는 이원론적 사고를 거부한다. 나아가 물질성과 일상성을 거룩하게 여기는 관점을 도약대로 삼아 기독교 신학은 유물론과 유신론 사이의 낡은 갈등과 분리를 뛰어 넘는다. 발표자에 의하면 물질의 세계를 창조하신 영이신 하나님이 그 세계를 당신의 품에 끌어안으심으로써 유물론과 유신론 너머의 세계가 열린다.” 그는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을 영이신 하나님이 물질세계를 당신의 품에 끌어안으신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몰론 이 말에는 발표자의 해석뿐만이 아니라 논찬자의 해석도 포함되어 있다. 성육신(incarnation)이 하나님의 영이 물질세계와 만나는 유일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상징적 사건이라 묘사하였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고(1:2), 때때로 선지자들을 비롯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충만하게 하셨으며, 예수의 부활 이후 그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 속에 거하셨다(2:1-5, 16-18; 고전3:16).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능력과 신성이 창세로부터 온 천지 만물 속에 분명히 빛나고 계신다고 증언한다(1:20).

발표자가 말하는 유물론과 유신론 너머의 세계는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으로 보인다. 지형은 박사에 의하면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은 각각 십계명과 주기도문이다. 그는 십계명이란 사람이 삶으로 살아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며, 주기도문은 하늘 아버지의 뜻이 사람 사는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요약한다. 이렇게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두 중심점으로 구성된 타원형이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다스림이며, 이 다스림의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실현하려고 살고, 또 가르치셨던 것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말씀,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논증한다.

다른 말로,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삶이 되는 길을 걸으셨다.” 그러므로 그를 주로 고백하고,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가 걸었던 길, 곧 말씀이 삶이 어우러지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형은 박사는 그것이 말씀을 온 삶으로 순명(殉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따라죽을 ()’을 사용하여, “순명(殉命)”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자신이 죽는(고전15:31; 2:20) 대가를 치러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발표자는 하늘 아버지의 말씀에 내 삶과 죽음을 조금치도 남김없이 옹글게 바쳐 올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길이라 단언한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아서 말씀과 삶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병들고 약해지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 발표자의 진단이다. 이 진단에 따르면 교회 회복을 위한 처방은 이 발표의 제목처럼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내가 죽음으로써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학이 발표자가 목회하는 성락성결교회의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리더십으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계를 변화시킨다!”라는 목적 선언문에 담겨져 있다. 이처럼 지형은 박사는 발표를 신학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했지만, 논지를 사변적적 논의가 아니라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이라는 실천적 관점에서 풀어 나가며, “신학적 작업에 연관된 사람들의 삶에서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신학은 교회를 망친다.”라는 기독교 역사의 경험에서 우러난 경고로 발표를 마친다.

 

기독교 영성사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발표자의 주장은 제자도(discipleship)’ 영성의 특징을 보인다. 필립 쉘드레이크(Philip Sheldrake)에 따르면, 기독교 영성사의 근본적이고 성서적인 이미지는 제자도. 그는 그의 책 간단한 영성사(A Brief History of Spirituality)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분의 삶을 본받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참된 기독교적 삶의 본질적인 이상과 표지가 되어 왔음을 논증한다. 나아가 그는 제자도의 개념에는 회심”(conversion)예수의 길을 따름”(following the way of Jesus)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 둘은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응답과 참여라고 말한다.[각주:1] 지형은 박사도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는 것이 회개, “기독교 신앙의 길은 예수의 길이고,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고 살고 가르치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지형은 박사가 추구하는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은 제자도의 다른 표현이다.

또한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을 신화’(神化, deification) 또는 하나님과의 연합(union with God)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신학(Theology)이 사람이 되신 신에 대한 탐구라면, 영성학(Spirituality)은 신과 하나 되려는 사람의 추구에 대한 학문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기독교 영성의 최고 이상인데, 사람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일치에 이를 수 있다. 이 때 하나님과의 연합, 또는 신화는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이 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사랑의 일치를 말한다. 요한 사도가 말하는 바 주님께서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상태이며(15:4), 베드로 사도가 말하는 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벧후1:4).

기독교 영성사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은 다양하게 이해되어 왔고, 그래서 또한 다양하게 추구되고 경험되어 왔다. 그 중에서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1491-1556)는 그의 영성훈련 매뉴얼인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에서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역하며, 군사들을 부르고 있는 왕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예수회의 영성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할 때 경험되어진다. 이러한 예수회의 영성은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Finding God in All Things)라는 모토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이른바 종교적인 사건들과 현장에서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상과 자연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형은 박사가 추구하는 일상 속에서의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은, 비록 그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 속에서 말씀을 삶으로 살아냄으로써 사람이 되신 말씀(1:1)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만약 이것이 논찬자의 과대 해석이라면, 그렇게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더 좋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이제 논찬을 마무리하며, 토론을 위해 질문을 한 가지 하려고 한다. 사실 발표자가 신학적, 성서적 통찰을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는 했지만, 말씀과 삶의 어우러짐은 오늘날 교회의 설교단과 여러 경건 서적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그렇다면, 저자는 그러한 이상과 목표를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해 나가고 있는가? 다른 말로, 추상적인 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날 말씀과 삶의 괴리가 심각한 한국 교회를 위해 학자이자 목회자인 발표자가 주는 실천적인 제언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짧지만 밀도가 높은 글을 읽고, 한국 교회의 회복과 성숙을 위한 좋은 논의에 동참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1. Philip Sheldrake, A Brief History of Spirituality (Malden, MA: Blackwell, 2007), 14-1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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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엽서에서 보고는 잊고 있던 "철마(鐵馬)"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 녹슬어 뼈대마저 무너진 가련한 시체. 서울에서 약 한 시간 반 거리, 분단의 상징은 멀리 있지 않았다. 분단은 우리가 잊고 있는 순간에도 엄연히 실존하는 실재(reality)다.

아니, 분단은 허구(illusion)다. 실제로는 하나인 한민족을 둘로 나누는 허상과 거짓일 뿐이다.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그 허상을 깨닫고, 그 가림막을 직접 벗겨낼 때 에스겔의 환상처럼 녹슨 뼈에 근육과 살이 붙어 철마는 다시 달리게 될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에스겔37:5-9)

2018. 5. 31. @ DMZ, 철원 월정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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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찬란한 아침에
하늘 향해 열린 숲속의 창 아래 서니
날개가 펼쳐진다

2018.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