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이전에는 몰랐다. 남자인 나보다도 더 열심히 올림픽을 시청하고 있다. 경기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나오는 선수들의 사연들도 열심히 찾아본다. 어디 아내 뿐이겠는가? TV의 스포츠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 시사교양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선수들과 그 가족들과의 인터뷰, 토크쇼 등을 통해 앞다투어 선수들의 뒷 이야기들(behind story)을  방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스토리도 함께 즐기고 있다. (어쩌면 발빠르게 선수들의 스토리를 '활용'하는 기업과 방송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청자들이 스포츠 경기와 더불의 선수들의 스토리를 '소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스토리 없는 선수들이 별로 없다. 다른 나라 선수들과의 가슴 떨리는 명승부에다가 선수들 개개인의 고된 훈련, 부상, 가족 이야기들이 더해질 때 스포츠는 승패를 떠나서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스포츠에 이런 휴먼 스토리, 곧 인간적인 이야기가 없다면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글래디에이터들의 목숨을 건 혈투를 즐기던 로마인들의 '야만적인' 광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특히 투기종목과 같이 선수들이 (비록 규칙이 있지만) 서로 주먹으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집어 던지는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만을 본다면 스포츠를 통해서 인간의 폭력성을 대리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투기 종목도 각 선수들의 이야기와 함께 갈 때에는 남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되고, 폭력이 아니라 스포츠가 된다. 


이처럼 스토리는 스포츠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우리가 물질을 우상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많은 이들이 스티븐 잡스가 만든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 등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기기들을 만든 잡스의 이야기(biography)를 아낌없이 구매한 것은 이러한 진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에게 이야기가 중요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자신이 바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라이프 스토리'(life story)가 없는 사람은 없다. 산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또는 써나간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나를 창조하신 분, 나의 정체성의 신비를 간직하신 분과 본질적인 관련성을 가진다. 그래서 John Navone과 Thomas Cooper는 “인간의 이야기들은 반드시 하나님과 이웃과 함께 공동으로 쓰여진다(human stories are implicitly coauthored with God and neighbor)”고 말하였다.1) 나의 이야기는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이웃, 특히 하나님과 함께 써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나를 찾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에 나의 이야기는 그것이 로맨스이든지, 모험 이야기이든지, 아니면 여러가지 종류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든지 간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


평소에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이나 스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또는 시장이나 마트 어느 코너 앞에서 물건을 집어 들다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소박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 주인공들은 다 하나 같이 독특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기 나름의 톡특한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비범함을 눈치채고 그것을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는 것은 방송작가들의 재주일 것이다. 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가 <인간극장>의 주인공이 되어 나의 일상 생활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이것은 내가 스스로는 '방송을 탈 만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자아도취에 빠져서 공상하기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각각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올림픽 시즌, 스포츠 경기와 선수들의 이야기만을 '소비'하는 것으로 시간을 모두 소비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인간극장>을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써내려 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어떤 이들은 자신은 글짓기도 정말 못하는데 이런 것을 생각하면 머리에 쥐내린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이야기의 공동저자이신 그분과 함께 마음 터놓고 진지하게 머리를 맛댄다면 말이다.


1) John Navone and Thomas Cooper, Tellers of the Word (New York: Le Jacq, 1981), 105.


2012년 8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