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 9. 화


1. 다시 밭의 일부를 갈아엎고 고랑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밭을 가는 작업은 참 고되다. 땅 속 깊이 박힌 잡초와 나무 뿌리들과 씨름을 하는 데에는 힘도 많이 들지만 시간도 적지 않게 소모된다. 밭을 갈러 나갈 때면 텃밭을 계속 가꾸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끊이 없이 떠오르고, 다른 해야할 일들이 생각이 나서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나 막상 곡괭이와 삽을 들고 일을 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질문들은 사라지고 그냥 땀을 흘리며 일에 몰두게 된다. 육체 노동을 하며 흘리는 땀은 때로는 마음 속의 노폐물도 빼주는 듯하다. 청소나 설겆이 등을 할 때도 느끼지만 '단순 노동'은 마음을 단순하게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단순 노동이 결코 쉬운 일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원에서도 육체 노동은 수도 생활의 일부가 되어 왔다. 아니 단순한 일부가 아니라 영성 훈련의 중요한 한 방법이다.


2. 단단한 흙에 구멍을 낸 뒤, 삽을 깊게 박아서 흙을 떠내었다. 뿌리가 얕은 잡초들은 흙과 함께 나오지만, 깊이 박힌 녀석들은 여러 번 삽질을 해야했다. 지렁이들도 놀라서 꿈틀거린다. 오늘은 바닥을 지나가는 나무 뿌리도 발견했는데,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이 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뿌리가 농작물들이 먹어야 할 흙 속의 양분을 '폭풍 흡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반드시 파내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나무 뿌리와 씨름하다가 지쳐서 삽을 놓아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나무 뿌리에 너무 열중하느라 필요 이상으로 땅을 깊이 판 것 같다. 이럴 땐 쉬어가면서,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3. 오늘 점심에 시편을 읽는데 밭가는 이야기가 나왔다.


   "밭을 가는 사람이 밭을 갈아엎듯 [원수]들이 나의 등을 갈아서, 거기에다가 고랑을 길게 냈으나, 

    의로우신 주님께서 악인의 사슬을 끊으시고, 나를 풀어 주셨다." (시편129:3-4, 새번역)


비록 나는 밭을 가는 입장이었지만, 당하는 자의 고통이 '몸으로' 이해가 되는 듯하다. 도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비유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농업사회에서 살아가던 당시 시편의 독자들은 이 구절을 아주 생생하게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느낌을 이전보다는 더 잘 알게 된다. 이렇게 배우는 것들이 있으니, 며칠 뒤 다시 삽을 들고 땅을 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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