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5. 수.


"어서 일어나! 어머니는 벌써 정리를 시작하셨어." 아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겨우 잠에서 깨었다. 장례를 치르는 지난 3일 동안 거의 자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매우 무겁다.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가보니 어머니는 벌써 옷장에서 아버지 옷들을 모두 꺼내놓고 정리하고 계신다. 집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빨리 지우고 싶어서 그러신 걸까? 그러나 난 아버지가 남기신 메모지 한 장도 버리는 것이 주저가 된다. 사실 지금까지 난 아버지를 정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유품들 속에는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들이 배어 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 속에 낯익은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후에는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였다. 내 출생 신고는 아버지께서 하셨는데, 아들인 나는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이땅에 태어나는 것을 환영하고, 자녀는 부모가 이땅을 떠나 하늘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한다. 나보다 이 땅에 먼저 오신 아버지의 사망확인서와 화장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사망신고를 하는 것도 이렇게 비통한데, 아들이나 딸을 먼저 보내는 참척(慽)의 경험을 하는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어제 오후, 장례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예금 상속 절차를 알아보려고 아버지의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갔는데 마침 평소 아버지께 친절히 대하던 은행원을 만났다. 그런데 그분의 "힘 내세요."라는 말 한 마디에 눈물이 쏟아져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은행을 나왔다. 아버지의 통장을 넘겨보니 늘 잔고가 많지 않았다. 드물게 목돈이 들어 오는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대부분의 금액이 어머니의 통장이나 내 통장으로 이체되었다.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아버지께 짐이 되어서 그 죄송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전에는 공부가 끝나면 최선을 다해 갚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2013. 5. 16. 목.


장사를 지낸 지 세번 째 날을 맞아 다시 추모관으로 갔다. 평소 아버지의 바램은 화장 후 땅에 묻히시는 것이었지만, 부산 인근에는 수목장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아직 없어서 일단 아버지의 유골을 사설 추모관에 모셔 두었다. 사용기간이 15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시립 납골당과 달리 이곳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땅에 영구적인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추모관 안에 재가 되어 놓여 있는 유골들이 이땅엔 영원한 것이 없음을 증언하고 있다. 


유골함만 덩그랗게 놓여 있던 유리장 안에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사진과 아버지를 추모하는 몇 가지 물품들을 넣어 두었다. 아버지께서 쓰시던 서예 도구와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께 드리는 작품들이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의 딸이 어젯밤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엽서이다. "할아버지께,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요. 할아버지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라며 연필로 꼭꼭 눌러쓰고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하트를 함께 그려넣었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칠한 하트 위에는 "생명"이라고 적어 두었는데, 비록 육체는 재가 되었으나 아버지께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늘에 계신 것을 상징하는 듯하여 흐뭇하다.



장례를 치르면서 놀랍고 감사한 것은 어린 조카들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생각보다 잘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죽는 것이 무섭다던 첫째 조카는 그 새 성장하여 장례 때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고, 혓바늘만 돋아도 걱정이 되어서 인터넷으로 "혓바늘 사망률"을 검색하던 동생의 딸도 장례를 치르며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가는 듯 보인다. 장례를 통해서 어른들도 자신도 마지막에 죽음을 직면하게 될 것임을 기억하게 되지만(전도서 7장 2절), 아이들에게도 슬픔으로 가득 찬 장례가 산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


장식이 끝난 뒤, 간단히 추모 예배를 드린다. 재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육체를 앞에 두고, 영원히 썩지 않을 신령한 몸을 생각하고 소망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따로 메모해 두신 시를 한 편 낭송한다. "그대와 헤어지자마자 나는 다음의 만남을 기대합니다…….원래 삼우(虞)라고도 하는 이날의 방문은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죽은 혼백을 위로하는 제사이지만,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오늘은 오히려 살아 남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아픔을 위로 받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