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0. 목. (2)


토마스 머튼 센터가 문을 닫는 오후 5시를 몇 분 남겨두고, 나도 읽고 있던 책을 닫았다. 담당자에게 대여한 자료들을 반납하며 내일 다시 올 것이라는 인사를 남긴 뒤 루이빌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책에서도 여러 번 읽고, 나도  논문에서 몇 번 언급하였던 그 유명한 'Fourth & Walnut 거리'를 가보기 위해서이다. 


이곳은 1958년 3월 18일, 머튼이 세상을 버리고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간지 약 16년 3개월 만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 오고 화해를 이룬 곳이다. 이날 머튼은 출판과 관련한 수도원의 공무로 지역의 출판업자를 만나기 위해 루이빌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가 상점들이 밀집된 Fourth와 Walnut 거리의 모퉁이에 서 있을 때 그에게 신비한 환상이 일어났다. 머튼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게들을 드나드는 것을 볼 때에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고, 그들과 자신이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신비한 깨달음에 휩싸였다. 1958년은 머튼의 인생에서 전기작가들이 "세상으로의 귀환"이라고 부르는 매우 중요한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고, 이날 Fourth & Walnut에서의 환상은 그 전환의 굵직한 획을 긋는 체험이었다. 지금은 Walnut Street가 Muhammad Ali Boulevard로 도로명이 바뀌었지만, 이곳은 지금도 많은 머튼 연구자들과 독자들이 찾는 곳이다. 차를 몰고 가는데, 그곳에 서면 머튼의 경험과는 똑같지 않아도 나에게도 어떤 신비한 체험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은근한 기대가 맘속에서 몽실몽실 피어 올랐다. 


벨러마인 대학교에서 루이빌 다운타운까지는 이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평일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거리는 한산했다.  "Merton Square"라는 표지판과 머튼 관련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는 안내 표지판, 그리고 머튼의 미소짓는 얼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석조조각이 머튼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그 자리에 서는데, 드디어 이곳에 왔다는 잔잔한 감격과 함께 약간 생경한 느낌이 밀려왔다. 머튼 광장은 책에서 읽던, 그리고 은연 중에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현대화되어 있었다. 4번가는 "4th Street Live"라는 이름으로 공연과 외식 등 각종 유흥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고, 지나가는 전차의 모습을 한 버스 외에는 옛날의 모습을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그랬다. 머튼의 루이빌 환상(Louisville Epiphany)이 일어난 지 벌써 반세기도 넘게 지났는데, 이 거리가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또는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걸 알면서도 난 왜 그런 기대를 갖고 있었는지……. 이렇게 때론 아는 것과 바라는 것은 서로 다를 때가 많다. 그것은 이런 장소뿐만이 아니라, 사람, 사건 등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대해 기대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기대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적지 않게 아쉬워하곤 한다. 오늘도 역시 이 거리에서 '관광 명소'를 알리는 안내판과 조형물 외에 54년 전 머튼의 발자국도 남겨지지 않고, 나에게 강력한 신비체험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좀 서운해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인 장소에 서 있다는 감격에 비하면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토마스 머튼이란 영적 거장은 들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안내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오히려 그 안내판과 조형물 앞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고 있는 한 동양인이 무안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옛날 머튼이 서있었을 것 같은 거리 모퉁이 한 켠에 조용히 한동안 서있었다.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머튼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그랬을까? 비록 그가 경험한 것과 같은 강렬한 체험은 없었으나, 그래도 왠지 지나가는 이들이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약 오 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집근처의 번잡한 교차로에서 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주의 행성들이 창조주의 뜻과 계획 속에서 질서있게 움직이는 것과 같이 사람들이 하나의 우주 속에서 하나님께 속하여 살고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은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었던 때가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각자의 궤도를 따라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