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에 학우회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쓴 촌극 대본이다. 당시 극장에서 재미있게 본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를 패러디해서 당시 내가 생각하던 신대원생들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제목과 아이디어는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내용은 상당 부분 바뀐 것을 보고 아주 실망하고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원작자에게는 아무런 상의나 양해 없이 글을 바꾸고 아이디어만 가져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글을 얼마나 못 썼으면 그랬을까 생각하고 그 다음부터는 희곡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희곡은 쓰지 않을 것 같다. 


요즘 갑자기 이 글이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파일을 찾아 이 곳에 보관을 위해 이곳에 남겨 둔다. 형편 없는 글이지만 극에 나오는 '김봉두'를 보고 자신의 마음에 닮은 사람이 있음을 알아 볼 목회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엇보다 나 자신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서.



전도사 김봉두



등장인물 : 김봉두, 남옥이, 소석이, 친구 미영, 박 전도사.


스크린에는 ‘전도사 김봉두’ 그림이 있고, 무대 위에는 소석이와 남옥이가 성경책을 들고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김봉두가 활기찬 걸음으로 등장한다. 김봉두는 양복을 입고 옆구리에는 성경책과 서류봉투를 끼고 있다. 조명은 꺼져 있고, 김봉두가 등장하면 김봉두에게 조명을 집중시킨다.


김봉두 : (관객을 향하여) 내가 누구게?(‘개그 콘서트 우격다짐’의 이정수와 같은 말투로) 나 김봉두야! 학교에는 선생 김봉두가 있지만, 교회에는 전도사 김봉두가 있지.

         내 설교는 ‘되’야! (바닥에 있던 되를 들고 보여주면서) 되로 주고 말로 받지! 한 번 볼래?


(김봉두가 소석이와 남옥이를 향하여 걸어간다)


소석이와 남옥이 :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김봉두 :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오~ 애들아 안녕!

         자, 우리 같이 예배드리자. (성경을 펴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갈라디아서 6장6절 말씀이예요.

         다 찾았으면, 우리 큰 소리로 같이 읽어 볼까? 시작!


다같이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김봉두 :  (힘주어서) 아~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답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누구이죠?


남옥이와 소석이 : (합창하듯) 전도사님이래요~.


김봉두 : 맞았어요. 바로 여기 있는 나 김봉두(악센트를 넣어서) 전도사님이죠. 그러면, 여러분은 전도사님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것을 혼자 가져야 할까요?


남옥이와 소석이 : 함께 해야 해요!


김봉두 :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면서) 역시 여러분은 똑똑한 하나님 나라 어린이예요~. 그런데 여러분, 조금 있으면 다가오는 5월 15일이 무슨 날이죠?


소석이 : 장신대 개교기념일이래요.


김봉두 : 그래, 그것두 맞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날이 있어요.


남옥이 : 스승의 날이래요.


김봉두 :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우리 남옥이 역시 6학년답게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전도사님이 오늘 말씀을 실천하도록 숙제를 내주겠어요. 


(김봉두 성경책 사이에서 흰 봉투를 꺼내서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누어 준다)


김봉두 : 자 이거 우리 남옥이꺼. 그리고 (소석이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다가) 너도 한 장.


소석이 : 선생님 제 이름은 소석이래요. 양소석.


김봉두 : (당황해 하며) 그래, 알아. 소석이. 나도 다 알고 있었다구. 전도사님이  너네 두 명밖에 없는데 이름도 못 외울까봐?


(소석이는 아무말 못하고 김봉두만 바라보고 있다)


김봉두 : (화를 내며) 근데, 이 녀석이 어디 전도사님한테 바락바락 기어오르고 있어! 내가 니 친구야?


남옥이 : 소석아, 니 빨리 전도사님한테 잘못했다고 해라.


소석이 : (기가 죽어서) 전도사님 잘못했습니다.


남옥이 : 근데요, 선생님! 편지봉투는 여기 있는데, 편지지는 어디에 있어요?


김봉두 : (표정을 정리하고 다시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에~ 여러분, 편지지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이 봉투를 가져가서, 전도사님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모님과 같이 상의해 보구, 스승의 주일에 이 봉투를 들고 오세요. 알겠죠? 봉투를 안 가져오는 사람은 전도사님이 심방을 가도록 하겠어요.


남옥이, 소석이 : 네~.


김봉두 : 자 그럼 이제 기도하고 예배를 마치자. 


남옥이, 소석이 : 네.


김봉두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과 복을 넘치도록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남옥이와 소석이는 퇴장하고 김봉두는 다시 관객을 향하여 선다)


김봉두 : 이 정도면 내 이름이 왜 쇠금자(金)를 쓰는 김봉두인지 알겠지? 내가 봉투를 정말 좋아하거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봉투가 한 가지가 더 있지.


(이때 친구 미영이 가방을 메고 헐레벌떡 뛰면서 지나간다.)


김봉두 : (미영을 붙잡으며) 어이~ 미영아!


미  영 : (숨을 헐떡이며~) 어, 봉두네!


김봉두 : 야! 너 근데 아침부터 왜 이렇게 뛰어다니냐? 


미  영 : 오늘 1교시 수업이잖아, 너 수업 안 들어가? 1분밖에 안 남았는데?


김봉두 : (씨익 웃으며) 미영아! 사람은 매사에 여유가 있어야 돼. 여유! 그래야 나중에 사역도 잘 할 수 있지. 


미  영 : 그게 무슨 말이야?


김봉두 : 잘 생각해 봐. 이번 수업은 출석을 직접 부르지 않고, 출석부를 돌리는 수업이잖아. 그러니까 여유 있게 커피나 한 잔하고 있다가 나중에 마칠 때가서 출석부에 사인하는 거지.


미  영 : 야~ 정말 그래도 돼? 그래도 우리가 신학생인데 좀 그렇지 않냐?


김봉두 : 너 또 범생이 같은 소리한다. 너 성경에 불의한 청지기가 칭찬 받은 거 몰라? 그리고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도 있잖아! 


미  영 : 물론 그 말씀이야 알지.


김봉두 : 그러니까 괜찮아! 또 이 과목은 특별히 강의를 듣지 않아도 나중에 책 한 번만 읽으면 다 알 수 있어. 교수님도 수업시간에 주로 책만 읽어 주시거나, 아니면 다른 이야기만 잔뜩 하시잖아. 


미  영 : 그야 그렇지만...


김봉두 : 그래서 내 말은 융통성을 발휘해서 시간을 아끼자는 거지.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아! 저기 봐 저기 박 전도사님도 우리반인데 수업에 안 들어 갔잖아.


(그때 박전도사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계산하며 다가오고 있다.)


미  영 : 어, 정말이네…….


김봉두 : 박 전도사님! 안녕하세요?


미  영 : 안녕하세요


박 전도사 : 아, 네! 안녕하세요?


미  영 : 근데 전도사님은 지금 뭘 그렇게 열심히 계산하고 계세요?


박 전도사 : (멋적어하며) 허허, 저요? 아 그냥 앞으로 채플 몇 번 더 빠질 수 있나 계산하고 있었어요. 할 일이 워낙 많아서요. 또 요즘 너무 피곤하기도 하구요. 저 그럼 이만…….  


(박 전도사 퇴장하며, 혼잣말로) 아~ 이제 두 번 밖에 안 남았네.


김봉두 : 거봐~! 대출 안하고, 직접 사인하는 게 어딘데…….


미  영 : (머리를 긁적이며) 그런가? 그런데 봉두야! 어제 새벽에, 내가 새벽예배 드리러 예배당에 들어가는데, 어떤 사람은 모자 푹 눌러쓰고 안에서 다시 나오는 사람도 있더라. 그게 어떻게 된 거지?


김봉두 : 아~ 그거! 그거야 뻔하지 뭐! 경건카드만 내고 그냥 나와서 다시 돌아가는 거지?


미  영 : 정말 그런단 말이야!


김봉두 : 그래,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어. 난 그렇게는 안 해. 그냥 교회 새벽기도 인도하느라 못 갔다구 하지.


미  영 : 너 정말 심하다.


김봉두 : 너두 참. 그렇게 순진해서 앞으로 어떻게 험한 목회의 길을 걸어가려고 그래? 지혜가 있어야지.


미  영 : 휴~, 난 잘 모르겠다..... 근데 봉두야! 너 오늘 왜 작업복 입었어? 예배 때 순서 맡았니? 


김봉두 : 아~ 이 양복! (서류봉투를 보여주며) 이것 때문에.


미  영 : 그게 뭐야?


김봉두 : 이력서. 오늘 면접 보러 가기로 했거든.


미  영 : 봉두 너, 교회 옮긴지 아직 1년도 안 되었잖아.


김봉두 : 야! 말도 마라. 교회가 쬐그만해서 일은 정말 많고, 사례는 거짓말 안 보태고 진짜 쥐꼬리만해. 장학금은 백원도 안 주고, 명절에도 국물도 없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내가 1년 정도 일했으면 잘 한 거지. 정말 나니까 군소리 안하고 1년동안 일한 거야.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진짜 순교하는 맘으로 버텼지~. 


미  영 : 봉두야! 너 정말 전도사 맞아?


김봉두 : 그럼, 전도사 맞지. (비장한 표정으로) 나는 정말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어. (혼자 찬양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오~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


미  영 :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때 조명 꺼지며 김봉두와 미영은 동작을 멈춘다. 그리고 소석이와 남옥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소석이 : 남옥이 누나야! 우리 전도사님이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더라.


남옥이 : 그래, 요즘 많이 피곤해 보이시더라.


소석이 : 우리 전도사님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까?


남옥이 : 소석이 니 오랜만에 좋은 생각했다. 


소석이 : 누나가 기도해라. 아멘은 내가 할게.


남옥이 : (웃으며) 알겠다. 사랑의 하나님! 사랑하는 우리 김봉두 전도사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요즘 우리 전도사님이 많이 피곤하신 것 같아요.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는 시골 마을에 오셔서 정말 힘드실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전도사님 건강 지켜 주시고, 힘이 되어 주세요. 저희가 전도사님 말씀 더 잘 듣지 못한 것 용서해 주시고, 다시는 전도사님 없이 예배드리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소석이, 남옥이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