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3. 추수감사주일.


지난 부활주일과 비슷하게 이번 추수감사주일도 찬양 인도를 준비하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말 큰 재난을 당하거나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모든 일에 '감사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이다. 대내적으로도 그렇고, 대외적으로도 그렇다. (이전에 어머니께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실 때 가까이 지내시던 기독교인들은 항상 '감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바울의 명령처럼 범사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하박국의 고백처럼 결핍 가운데 있을 때에도 감사하는 것은 성경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재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모든 일들에 감사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억압당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의 고통에 깊은 공감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감사하라'는 말대신,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고 그 슬픔과 고통의 원인이 제거되어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으로 함께하고 몸으로 행동한다면,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범사에 감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고통에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기준으로 오늘 나의 사역을 돌아 본다면 그리 잘 한 것은 아닌 듯하다. 큰 병에 걸린 가족을 두고 있는 교우의 고통과 슬픔에 몸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 또한 감사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찬양을 인도하며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가사의 곡들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멘트를 통해서도 회중들의 생각과 노래를 적절하게 인도하지 못했다. 이십 년 가까이 찬양인도를 해왔는데, 그리고 공식적인 '찬양인도자'라는 타이틀을 내려 놓을 때가 다가 오는데 나는 아직도 너무나 서투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