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6. 수.


블랙 프라이데이가 코앞에 다가 왔다. 온라인에서는 벌써부터 각종 할인 행사들이 진행 중이다. 이메일은 매일같이 블랙 프라이데이 딜을 알리는 광고 메일로 붐빈다. 그러다 보니 내 속의 욕망도 꿈틀거린다. 평소에 눈여겨 봐왔던 컴퓨터와 악기 등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을 이용하는 해외직구족도 늘었다는데, 미국 현지에 사는 나는 더더욱 이 쇼핑 대열에 참여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제 얼마 후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문제는 재정이다. 다달이 월세와 학비를 내기에도 빠듯한 형편에 아무리 할인을 많이 한다고 해도 고가의 랩탑이나 악기를 구입하기 위해서 쉽게 지갑을 열 수가 없다. 그래서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하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수명이 다되어 가기는 하지만 지금 랩탑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기타도 좀 낡았지만 나의 연주 실력에 비하면 과분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새로운 '장비'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 없을까? 


저녁을 먹고 오늘 새로 배송된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읽는데, 저자가 해방 후 한국 현대사를 '자유와 존엄에 대한 열망'과 '물질에 대한 욕망'의 투쟁으로 보는 부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 평소 물질에 대한 욕망을 저급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자유나 존엄, 또는 진리에 대한 열망을 희생시키는 것을 비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물질에 대한 욕망에 따라 질주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슬쩍 끼어 들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다른 열망, 곧 가난한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따라 가난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은 블랙 프라이데이의 검은 욕망에 밀려 거의 질식해 가고 있는 상태이다. '오직 주님만이 저의 전부입니다.' '주님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라는 고백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듯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비를 통해서 공허함을 채우고자 하는 소비욕은 오직 '소비적인' 욕망일 따름이다. 충족되지 않는 블랙홀과 같다. 밑빠진 장독과 같다. 그분의 자리를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부족한 재정 상태가 문제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물질적인 결핍 때문에 거룩한 욕망의 결핍을 깨닫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내일 땡스기빙 데이를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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