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귀뚜라미 울어 가뜩이나 마음 심란한데

외눈박이 달, 시월의 밤하늘에 높이 떠서

태초처럼 밝은 눈을 크게 뜨고는

창가에서 턱을 괴고 있는 나를 내려다봅니다


잠시 고개 들어 달을 올려다보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이내 질끈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정화수를 떠놓고 달 앞에서 비는 여인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달이 

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것은 달이 심술궂거나 무심해서가 아니라

달이기 때문입니다, 달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밤하늘에 말없이 매달려서

열린 창틈으로 방 안을 지긋이 내려다볼 뿐 

결코 들어오지도, 가버리지도 않습니다, 달이란

우연히 눈 마주친 차창 밖 정류장 사내처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그냥 거기에 머물러 나를 보고 있습니다, 달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알면서도 속상한 나는 창문가리개를 살짝 내려 

가리개 살 사이에 죄없는 달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려고 나도

몸을 꼼짝하지도, 눈을 깜박이지도 않습니

내가 자신을 가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달은 

꼼짝하지도, 깜박이지도,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말없이 나를 바라봅니다. 달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나는

원래 그런 아이입니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밤을 견디고 하루하루 

창문을 열고 닫다 보면

소란한 마음과 소원은 사라져 버리고

달과 나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2015.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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