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용해 아내와 영화 〈더 폰〉(연출 : 김봉주)을 보았다. 유난히도 무서운 장면을 싫어하는 아내는 반 이상을 눈을 감고 귀를 막았지만, 나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최근 흥행한 〈베테랑〉(2015)처럼 폭력이 난무하지는 않지만, 〈더 폰〉은 어두운 화면과 긴장감이 가득한 음악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언급하면, 2014년 5월 16일, 변호사 고동호(손현주 분)의 아내 조연수(엄지원 분)가 살해 당하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일 년 뒤인 2015년 5월 16일, 일 년 전의 아내로부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리고 2015년의 남편과 2014년의 아내가 함께 살인범으로부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한다.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영화는 사건 당일과 일 년 후 같은 날 태양 흑점이 폭발하여 통신 전파 교란이 생겼다는 설정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개연성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상상력이 흥미롭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제공해 준다.

    

    먼저 이 영화는 우리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에서 2014년의 아내가 2015년의 남편과 통화를 통해서 다르게 행동하면 그 결과 일 년 뒤의 세계도 바뀐다. 곧, 오늘 현재의 세계는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인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창밖에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심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과거의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생물학적으로 따져 올라가면,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그 끝에는 세상의 모든 존재의 원인인 신, 곧 창조자가 있다. (물론 내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수많은 다른 요인들도 영향을 끼쳐왔다. 즉,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후에도, 타인의 선택, 환경의 영향, 나 자신의 선택들 등의 결과로 인해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다루면 너무 복잡해지므로 여기까지만 언급하자.) 어쨌든 이 영화를 다시 반추해 보며, 더불어 나의 존재의 근원적인 원인이신 그분 안에서 나의 현재의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 영화처럼 '현재의 나'가 과거의 사건에 관여하여 현재를 바꿀 수는 없다. 사십 대에 들어선 이후 아주 가끔 '내가 이삼십 대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부질없다. 영화와 달리 현실은 과거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열려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아주 다르게 펼쳐진다. 영화에서 만약 2014년의 고동호가 한두 가지 '사소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는 완전히 다른 일 년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되돌리거나 후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야 한다. 바둑에서의 복기(復棋)와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 중요하다.) 물론 우리는 현재의 선택이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를 최선의 선택들로 채워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도록(로마서 8:28)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좀 생뚱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제 이 글을 여기서 끝내기로 선택한다. 

2015.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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