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없는 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라는 말을 우리는 가끔 주고받습니다. 보통은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서 내 몸이라 할지라도 내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 때 사용하는 표현이지요. 그런데 시인이 이 표현을 사용했을 때는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풀〉이라는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김수영 시인의 〈말〉이라는 시는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나무뿌리가 좀더 깊이 겨울을 향해 가라앉았다

이제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이 가슴의 동계(動悸)도 기침도 한기도 내 것이 아니다

이 집도 아내도 아들도 어머니도 다시 내 것이 아니다

오늘도 여전히 일을 하고 걱정하고

돈을 벌고 싸우고 오늘부터의 할일을 하지만

내 생명은 이미 맡기어진 생명

나의 질서는 죽음의 질서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버렸다


- 김수영, 〈말〉 1연.


여기서 “동계(動悸)”란 심장이 보통 때보다 심하게 고동쳐서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가슴의 울렁거림이나 기침과 같은 신체적 작용도, 자기와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집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곧 자신의 소유도 아니며, 자신이 다룰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도 다른 어떤 것에 맡기어져서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왜 이토록 무력한 고백을 하고 있는 걸까요?

김수영 시인이 이 작품을 창작한 날은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964년 11월 16일입니다. 이때는 5·16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때였습니다. 대학생들은 거리에서 박정희 정권 타도를 외쳤고 박정희는 서울에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1964년 6·3사태). 이것은 끝이 아니라, 길고 긴 겨울과 같았던 박정희 정권의 시작이었습니다. 

4·19 혁명이 미완으로 끝난 것에 대한 깊은 좌절을 토로하던 김수영은 “온 세상이 죽음의 가치로 변해” 버린 것을 절감합니다. 비록 자신은 여전히 매일의 할 일들을 하며 소시민적인 일상을 살고 있지만, “죽음의 질서” 속에서 시인과 지식인으로서 무력함을 경험하며 괴로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지는 2연에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고해야할 너무나 많은 말을 갖고 있지만 / 세상은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원래 참된 시인의 말은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고, 억압과 불의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죽음의 질서가 지배하는 겨울과 같은 시대에는 시인의 말은 불온한 말, 위험한 말, 또는 시대에 맞지 않는 말로 간주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은 없는 말, 곧 “무언”(無言)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는 “입을 봉하고” 맙니다(3연).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는 심지어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무언의 말

하늘의 빛이요 물의 빛이요 우연의 빛이요 우연의 말

죽음을 꿰뚫는 가장 무력한 말

죽음을 위한 말 죽음에 섬기는 말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하는 말

이 만능의 말

겨울의 말이자 봄의 말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다 

- 김수영, 〈말〉 4연.



흥미롭게도 김수영 시인은 말 없음조차 말로 만듭니다. 그래서 단순히 ‘무언’이 아니라 “무언의 말”, 곧 ‘말 없는 말’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많은 말을 쏟아내기보다 짧고 함축적인 시어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무언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를 읽지 않거나,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무언’과 같지만, 좋은 시는 비록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열린 귀를 가지고 읽는 이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저 몇 줄의 글자들로 이루어진 시는 매우 “무력한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꿰뚫는” 말이 됩니다. 

“무언의 말”인 시는 개념이나 지식이나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말합니다. “하늘의 빛”으로, “물의 빛”으로, “우연의 빛”으로 독자의 마음에 말을 건넵니다. 그래서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열고 수용적인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시는 한 가지로만 해석되는 “고지식한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시는 어떤 이들에게는 “겨울의 말”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봄의 말”이 됩니다. 곧, “우연의 말”이고, “만능의 말”입니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은 “이제 내 말은 내 말이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곧, 시가 글로 표현이 되고 나면, 이제 시인의 말이 아니라, 독자의 말이 되는 것이지요. 

죽음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 죽음의 가치가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세상에서 김수영 시인은 “입을 봉하고”, “무언의 말”인 시로써 죽음을 꿰뚫고자 하였습니다. 그러한 시도들 중의 하나가 〈풀〉과 같은 시가 아니었을까요? 오늘날 우리는 ‘말과 글의 홍수’ 시대에 삽니다. TV를 틀어도 카페에 가도 말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도 길거리에도 각종 기사와 광고문구들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화와 메신저로 하루에도 수많은 말과 글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말들이 가득한 시대에는 때로는 요란한 말보다 ‘말 없는 말’이 더 많은 것은 이야기합니다. 시인에게 ‘말 없는 말’이 시라면, 우리에게는 무엇일까요? 아마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하늘의 빛 그리고 물의 빛을 담은 진실한 삶이 아닐까요?

Magazine Hub 54 (2017년 10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