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주후 2004년 8월 22일

 

버리기

 

또 몇 상자를 버렸다.

지난 주 부모님이 계시는 부산 집으로 내려가 그동안 구석에 쌓아 두었던 짐들을 정리하였다. 결혼할 때 다 가져오지 못한 책들과 소지품들을 상자 속에 넣어서 쌓아 두었는데 이번에 부산에 내려간 김에 그 중 일부를 가져오기로 한 것이다. 2년 전 짐을 상자로 쌓아 둘 때에도, 그리고 신대원을 졸업할 때에도 아끼던 책들과 소지품들을 여러 상자 버렸었는데, 이번에도 또 여러 상자가 폐휴지로 실려나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사실 여건이 된다면 버리지 않고 모두 가져가고 싶었지만, 선별해서 가져가는 책들도 수납공간이 없어 당분간은 상자 속에 넣어두어야 하는 형편이라, 아내의 협박(?) 속에 이번에는 좀더 과감하게 버렸다.

한 해, 한 해를 더 산다는 것은 한 상자, 한 상자 짐이 더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 고작 만 30년을 살았을 뿐인데 짐이 너무나 많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꼭 필요한 짐 외에는 여분의 옷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에 비하면 난 참 많은 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짐을 버릴 때에는 아쉬움이 있다. 작은 소지품 하나, 그리고 친구들이랑 함께 만들었던 작은 문집하나에도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을 버릴 때에는 동시에 홀가분함도 느껴진다. 짐의 무게와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늘을 걸어갈 수 있어서 좋다. 과거의 좋은 기억도 쓰라린 상처도 모두 추억 속에 넣어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그분을 향한 영적여정을 걸어갈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짐 버리기’의 하이라이트는 ‘메달 버리기’였다. 요즘 늦여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테네 올림픽의 금메달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어릴 때부터 여러 대회와 학교에서 받은 메달이 몇 개 있었다. 이전에는 그것이 내게 자랑이 되어 깨끗한 상자 속에 소중하게 간직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내게 자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집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짐’이자,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그래서 이번에 메달들을 고철로 내어버리면서 앞으로 이 땅에서의 상급이나 영광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구하고, 푯대를 향하여 더욱 열심히 달려가겠다고 다시 주님께 약속하였다.

짐을 버리는 것은 이처럼 여러모로 유익함이 있다. 복잡한 책상서랍과 책꽂이 그리고 옷장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있고, 또 오늘과 내일의 소망을 주님께만 둘 수도 있다. 이제 곧 가을이 다가 온다. 반팔티와 반바지를 정리해서 넣어두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가을 옷들을 꺼내야 할 때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새 학기를 맞아 보지 않는 책들은 정리하고 이번 학기 교재와 새 책들을 손이 잘 닿는 곳에 정리해 두어야 한다. 이 기회에 시간을 내어 짐정리를 해 보는 것을 어떨까? 아직 살아온 연수가 많지 않아 짐이 얼마 없을 지도 모르나, 지금부터 조금씩 짐을 버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것을 억지로 버릴 필요는 없지만,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이나 삶을 더 무겁게 하는 짐들이 있다면 조금씩 때로는 과감히 버려보라. 그리고 오직 주님께만 오늘과 내일의 소망을 두고 이번 가을을 가볍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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