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주후 2004년 9월 26일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채워야 한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중학생들이랑 신촌에 있는 민들레 영토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새문안교회에서 학원선교의 일환으로 서울 시내 10여곳의 중·고등학교 특별활동(CA)을 지원하고 있는데, 여기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성산중학교 기독교문화연구반’인데, 반갑게도 지도교사로 열심히 수고하시는 분은 제작년까지 우리교회를 섬기셨던 김동호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영숙 선생님이시다.


중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청년부를 주로 섬기다보니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3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한 꺼번에 상대하려면 늘 목이 쉬고, 진땀이 빠진다. 특히 우리반의 구성원들 중 5분의 2정도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특별활동을 선택할 때 가위 바위 보에 밀려 빈 자리를 찾아 들어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의욕도, 관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기독교문화연구는 고사하고, 복음을 전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학기 내내 고전하다가 2학기 때에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 아이들을 몇 개의 모둠으로 편성해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CA를 조금 일찍 마치고 한 모둠씩 돌아가며 가까운 민들레영토에서 모임을 가지는 모험(?)을 감행했다. 감사하게도 그 방법이 효과가 있어서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나님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이전에는 일정 기간 동안 교회에 다니던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대부분이 ‘영적 무관심’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와 아주 절친한 친구는 모태 신앙이다. 그런데도 그 친구는 그 아이를 전도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을 이들의 영적 무관심을 깨뜨리고, 교회로 인도할 사람이 이들 주변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조차도 이들의 영혼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무관심한 채 그저 ‘친한 친구’로 만족하고 있다. 누군가가 이들의 손을 잡고 억지로라도 교회에 데려간다면 이들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없다. 억지로 친구의 손을 잡아 끌면 당장 그 친구로부터 원망과 짜증을 듣게 될 지는 몰라도, 그가 교회에 나와서 진정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친구로부터 큰 감사를 받을 수 있다. 생명의 은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당장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모험은 감행하려 하지 않는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우리 조 다모이기’, ‘총전도주일’을 앞두고서도 이 일들을 나와 관계 없는 일로 생각하고 그저 나의 구원으로만 만족하지는 않는가? 늘 부대끼는 가족, 친척, 친구, 동료들을 강권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짜증을 두려워하여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통곡하며 회개할 일이다. 가슴을 치며 부끄러워할 일이다. 주님은 천국문이 닫히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들어오기를 애타게 원하신다.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천국잔치 자리를 채우기 원하신다. 일단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잔치의 즐거움, 즉 그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주인이 종에게 말하였다. ‘큰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누가복음 14:23, 표준새번역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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