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의 이름으로 만나는 우리

 

며칠 째 강한 추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나요?

여러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오르네요. ······· 보고 싶어라!^^ (닭살 돋죠?)

 

전 지금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왔답니다.

가족들도 만나고,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있어요.

전 이렇게 여유 있게 보내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연말이라 많이 바쁘게 보내고 있겠군요.

공부하시는 분들은 아직 기말고사가 끝나지 않은 이들도 있겠고, 일하시는 분들은 연말정산과 송년모임들로 이제 한참 바쁘겠네요. ^^

 

이젠, 정말 한 해를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연초에 세웠던 계획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물론, 계획대로 실천한 것보다 하지 못한 것이 많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패배감을 두려워하지 않고 겸손히, 그리고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본다면, 올해의 결실을 들판에 내버려 두지 않고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으며, 또 내년엔 보다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을 토대로, 성탄절이나 송구영신 예배 때 있을 청년부 모임에서 서로 나누며 기도하면 서로에게 아주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비록 몸은 떠났지만, 여러분 생각을 참 많이 한답니다. 그리고 간간이 소식도 듣고, 위해서 기도하고 있어요이번 12월 한 달은 청년부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어수선하고 과도기와 같은 시기이겠지만,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든든히 지키고 계시니 힘내서 잘 보내세요혼자서는 힘들겠지만, 함께 하면 훨씬 쉬울 겁니다.

 

지난 두 주간은 청년예배에 빠진 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주일 공예배에는 참여하신 분도 있겠지만, 우리 청년예배와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아요.(불조심 표어처럼 말이예요)

 

김창호라는 한 산악인이 이라는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그는 나는 둘이 함께 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혼자 갑니다라고 말을 하더군요. 실제로 그는 홀로 히말리야 빙하를 탐사하는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산악인이라고 해도, 팀을 이루지 않고서는 높은 봉우리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 우리의 영적여정도 산악등반과 같다고 생각해요. 결코 혼자서는 오를 수 없지만, 믿음의 동역자들, 지체들과 함께 하면 오를 수 있는 길. 때로는 서로의 짐을 나눠 지고, 때로는 서로의 몸을 밧줄로 묶어 지탱해주고, 서로의 체온으로 언 몸을 녹이고, 조금의 식량도 함께 나누는 그런 동역자가 있을 때 우리는 거센 눈보라가 휘날릴지라도 언젠가는 우리가 올라야할 믿음의 산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요...

 

여러분에겐 화평교회 청년부라는 훌륭한 동역자들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모든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반자의 이름으로 만나 우리를 이루어감을 기억하세요당신은 화평교회 청년부 공동체에 꼭 필요한 사람이잖아요^^

 

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주후 2002. 12. 13.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20억년의 사랑


 

엄마가 이혼을 한 후 십대인 딸은 점점 반항아가 되어갔습니다.

"대체 몇 신데....."

엄마는 밤마다 대문 밖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밤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툭하면 사고를 쳐서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는 딸, 엄마의 주름은 늘어만 가고 딸이 빠진 수렁은 깊어만 갔습니다.

 

"제발 상관 마. 내가 어떻게 살든!"

딸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멋대로 살 테니 이제 제발 포기하라며 자꾸만 거칠고 모나게 뒤틀려 갔습니다.

 

"가족? 흥 그게 뭐야. 다 필요 없다구."

툭 하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기 일쑤였습니다.

"승희야 제발... 문 좀 열어 봐."

 

그 딸이 열여덟 살이 되던 생일날이었습니다. 새벽같이 나간 딸은 한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딸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엄마는 시간을 되돌려 놓고만 싶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딸아이를 위해 선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날도 12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딸은 책상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상자에는 편지와 함께 작은 돌멩이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

또 뻔한 잔소리려니 하고 심드렁하게 편지를 읽던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돌의 나이는 20억 년이란다. 내가 널 포기하려면 아마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지..."

 

딸은 비로소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두터운지 깨달았습니다.

딸은 곤히 잠든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20억년은 너무 길다. 그러니까 엄마... 나 포기하지 마."

 

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딸은 그날 밤, 긴 방황을 끝내고 엄마 품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승희는 가슴에 아주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정이 깨어진 경험은, 승희의 마음에 원망과 상처를 가득 채워, 승희로 하여금 가족을 거부하고 그 울타리를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승희의 반응은 반대로 승희가 얼마나 부모님의,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원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한 것은 결국 엄마의 포기하지 않는 20억 년의 사랑이었다.

 

'20억 년의 사랑!'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이야기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아파하시며, 포기하지 않고 지켜보시는 우리 주님을 생각해 볼 때, 주님의 사랑은 지금으로부터 20억년 이전에도 있었고, 20억년 이후에도 지속될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아니, 주님의 사랑은 나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이다.

 

위의 이야기는 'happy endding'으로 끝난다. 아마도 승희의 엄마는 돌아온 딸로 인해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두 사람은 서로 끌어 안고 펑펑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날 밤은 승희와 엄마가 같은 방에서 손을 꼬옥 잡고 잠을 잤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면 주님은 기뻐하시며, 자제력을 잃고(?)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실 것이다.

주님께 돌아가자!

20억년의 사랑, 영원한 그 사랑에 마음을 열자, 우리는 그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


2002. 11. 4.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2002. 10. 27. 추수감사주일. 유치부 헌신예배.

 

하루 종일 바쁘게 주일을 보냈다. 매주가 그렇지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에다 유치부 헌신예배가 있어서 더 그랬다. 사랑스런 유치부 선생님들은 유치부 아이들에게 나눠 줄 선물 포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교회에 나왔다.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사랑으로 준비된 인형극이 공연되었고, 아이들과 부모님들(그리고 유치부 헌신예배 때도 이 인형극을 공연했는데 성도들도 모두) 즐겁게 인형극을 보았다. 사역을 시작한지 이제 17개월을 채웠지만, 유치부와 청년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도교역자로서 나는 참 허점이 많고, 보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며, 또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선생님들을 통해서, 그리고 청년회 임원과 조장을 통해서 당신 자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이러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시다.

 

오늘 청년부를 맡은 후 처음으로 청년예배에 참석하지 못 했다. 유치부 헌신예배와 시간이 겹쳐서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김영록 전도사님에게 설교와 마치는 기도를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유치부 헌신예배가 조금 일찍 마쳐서, 청년예배의 끝부분인 나눔의 시간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김영록 전도사님에게 끝까지 예배의 모든 것을 맡겼는데, 원래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을 보니 어색하고 또, 섭섭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영원히 내 자리가 아니다. 나는 곧 떠나야 될 사람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영원히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려 하거나, 영원히 나의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게 교역자의 삶이다.

 

교역자 회의 시간에 담임목사님께 내년엔 사역지를 옮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이유도 묻지 않으시고,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몇 개월 동안 사역지를 옮겨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해 왔는데 이것으로써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기분이 시원섭섭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섭섭하기만 했다. 어쩌면 나보다 청년들이, 유치부 선생님들이 더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는 두 마음이 있다. 청년들이 눈물로써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청년들과 선생님들이 나와의 이별로 너무 섭섭해 하지 않고, 새로 그 자리에 오실 전도사님과 빨리 친밀감을 형성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자는 그들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이기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다.

 

저녁에 월례회 후에 가진 유치부 선생님들과의 회식시간, 어쩌면 이제 그분들과는 마지막 회식을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순수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실히 섬기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특히 맑은 눈을 하고 화평교회에 대한 애정과 교회를 섬기는 기쁨을 말씀하시는 전계환 부장 집사님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동안 이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한 집사님의 허름한 겉옷이 눈에 띈다. 별로 예쁘지 않은……. 집사님은 작년에 교육관에서 쓸 대형 진공청소기 2대를 헌물하셨다. 그리고 올해엔 때가 가지 않는 방석을 교체하기 위해 방석 껍데기 100개를 헌물하셨다.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보다, 교회를, 먼지 속에 있는 아이들을, 힘들게 청소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더 컸나 보다. 그러나 난 지금 헌신예배 때 설교했다고 강사료를 받아서 가방 속에 챙겨두었다.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부족한 전도사를 생각해서, 별 은혜 안 되는 설교를 들으면서도 챙겨주셨다. 이 돈을 어찌 내 주머니에 챙길 수 있을까? 이 돈으로 조그만 선물이라도 사서 선생님들에게 드려야겠다.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또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당장 화요일부터 시험이 있고, 한 주 동안 할 일이 많다. 앞으로 몇 주간을 계속 그럴 것 같다. 자꾸만 두렵다. 또 일주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 주님 종을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해야할 일들이라면 능히 감당케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