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대청소, 봄 수련회

  

 

자기 방을 스스로 청소해 보지 않은 사람은 먼지가 얼마나 끊이지 않고 쌓이는지 모른다부모님과 함께 살 때, 내 방은 항상 깨끗했다. 비록 넓지는 않았지만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마다 감탄할 정도로 항상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고, 또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깔끔한 성격의 어머니 덕분이다. 그런 어머니를 닮아 나도 비교적 깔끔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아침에 바쁘게 나가느라 어지럽혀 놓은 책상을 매일 같이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 주셨다.

 

그래서 난 책상에 먼지가 그렇게 많이 쌓이는지를 신대원 시절 생활관(기숙사)에서 살면서 알았다. 좁은 방에 4명이 모여 살지만, 다들 바쁘게 사는 지라 우리방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걸레질을 했다. 그래서 책상과 바닥엔 우리의 게으름을 비웃듯이 거의 먼지와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난 책상에 먼지가 그렇게 많이 쌓이는지, 또 머리카락은 그렇게 많이 빠지는지 알게 되었다.

 

먼지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과학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방에서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는 것도 아닌데, 하루 이틀이면 어느새 쌓여서 촉감과 호흡기를 괴롭힌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우리가 지난 겨울 수련회 때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속에 푹 빠졌다 할지라도, 한 주, 두 주,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우리의 신앙에는 나도 모르게 먼지가 제법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굳이 수련회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한 주, 또는 며칠만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메말라가는 우리의 영혼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혹시 수련회나 경건훈련이 헛수고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왜 날마다 매끼마다 밥을 먹는가? 또 배고파지고, 어차피 (귀찮고 지저분하게도) 모두 배출될 것인데 말이다.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한 끼의 밥은 반나절 동안 살 힘을 얻기 위해서 먹는 것이지, 몇 달 또는 몇 년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겨울수련회는 겨울수련회 나름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봄 수련회는 봄 수련회 나름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늘의 묵상과 기도는 오늘에 의미 있는 일이며, 내일의 것은 또 내일에 의미가 있다.

 

올해에는 이전에 없었던 봄 수련회와 가을 수련회를 갖게 되는 것은 끼니와 끼니 사이에 배고픔을 달래고 음식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간식을 먹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비록 지난 겨울 수련회가 우리에게 아주 큰 은혜의 시간이었으며, 또 올 여름 정말로 기대가 되는 제주선교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 사이 간단하게라도 함께 하룻밤을 지내며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힘겨운 5,6월을 살아가는데에 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별히 이번 봄 수련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동행이라는 주제를 주셨다.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홀로 갈 수만은 없다. 먼저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날 떠나지 않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삶이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기 위해 선악과를 먹었던 것과 같은 범죄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이 가시와 엉겅퀴와 같은 고난이 있는 길이며, 해산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고통이 있는 삶이다. 곧 죽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아버지는 우리의 오른 손을 붙드시고, 모든 어려움을 능히 이겨나가게 하신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시편73:23)

 

다음으로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독불장군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나게 하신 가족, 그리고 친구와 지체들은 모두 소중한 동반자들이다. 함께 하나님께로 가는 우리의 영적인 여정을, 인생을 함께 걷는 이들이다.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서로를 붙들어 주며 걸어갈 때, 우리는 혼자 힘겹게 사는 것보다 훨씬 많은 안정감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서로서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 내가 단언하건데,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사는 기쁨을, 함께 걷는 유익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참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올해 우리에게 봄 수련회라는 귀한 시간을 허락하셨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삶에 묻은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새롭게 하나님과 그리고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동행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한다.


2004. 5. 22.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어버이날 단상



하나. 카네이션

길거리마다 카네이션이 가득하다. 

영등포역에서 교회로 오가는 길에는 대목을 맞은 상인들이 부지런히 카네이션 바구니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마치 대학시절, 학교 앞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도 매년 이맘 때 쯤에는 수많은 카네이션들로 길가가 채워졌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가는 길에 아주 신중한 얼굴로 이쁜 것을 골라 사가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카네이션을 고르거나, 바구니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저들의 무리에 나도 동참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든다. 그러나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멀리 부산에 계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KTX가 개통되었다고 하나 부산은 하루에 오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아마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이 카네이션 증정을 담당하리라... 그러나 이렇게 어버이날이 되어도 부모님을 찾아 뵙고 꽃 한 송이도 드리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히 죄송하고,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신데도 이렇게 서운하다면, 부모님께서 돌아가신다면 오죽이나 더 하겠는가? 비록 지금은 학생 때보다는 더 좋은 꽃과 선물을 살 수 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지금은 그것이 큰 의미는 없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비록 지금은 비싼 선물을 살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을 때 잘 하자!


둘. 선물

제주선교 답사로 하룻밤 외박을 해야 하는데, 마침 장모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이 기회에 어버이날 선물을 직접 드리기로 하고, 작은 선물을 몇 가지 준비했다. 작은 선물이라고 하지만, 여행 중인 장모님이 들고 다니시기에는 부피가 그리 작지는 않다. 원래 내용이 실속 없을 때 양이 커지는 법이다 ^^: 그리고 아주 당연히 돌아가시는 차표를 마련해 드렸는데, 내려가시는 날 아침 장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방도 작은데 선물을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 자꾸 이러면 부담스러워서 자주 못 오는데…” 그렇다. 장모님은 확실히 부담을 가지고 계시다. 장모님 뿐만 아니라 친부모님도 혹시 필요하신 게 있냐는 질문에, 아예 값싼 한 가지 항목으로 한정지어 대답하신다. 그리고 평소에도 액수를 떠나서 우리가 부모님을 위해 재정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갖고 계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거의 대부분)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고 부모님께서 나와 형제들을 위해 시간과 재정을 사용하시는 것을 누려왔다. 어머니께서 나와 식구들을 위해 온갖 집안일을 하시고, 내게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 재정을 지출하시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누려왔다. 그러므로 부모님도 자녀들의 섬김을 부담없이 받으실 당연한 권리가 있으신데도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께서 베푸신 것보다 훨씬 미약한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그 권리를 찾아 누리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들의 존재가 자식에게 부담과 짐이 될까봐 염려하신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이것이 하늘아래 가장 높다는 부모의 사랑인가?

셋. 전화

5월 7일,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저녁 전화기를 들었다. 8일 아침 일찍 전화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에 바쁜 우리인지라, 아예 미리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직접 찾아 뵙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이렇게 전화하는 것이나 직접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부모님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신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효도합시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최소한 일주일에 3번 이상씩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자는 캠페인을 벌였지만,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부모님과 이야기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비단 떨어져 있을 때의 전화뿐만 아니라 함께 살 때에도 대화에 참 인색한 것 같다. 많은 시간을 컴퓨터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지만, 부모님과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어린아이들이 처음 유치원에 가면, 집에 돌아와서 유치원에 있었던 사소한 일까지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가 물어 보아도 잘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엄마들은 서운함을 느낀다는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부모님과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살아왔다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서운하실까? 특히 부모와 자녀의 대화의 단절은 나아가서 세대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커다란 사회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부터라도 부모님과 대화를 위해 시간을 좀더 늘리는 것은 어떨까? 비록 무뚝뚝한 성격의 아버지라도 곧 마음을 여실 것이다.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에베소서 6장 1-3절)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칼럼

2004년 5월 8일

Tag 청년, 효도

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2004. 4. 25.

준비된 헌신, 계속되는 헌신

 

얼마 전 한 후배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의 병명은 간암 말기. 고작 스물아홉의 나이에 간암이라니, 더욱더 병원에서도 손을 놓아버린 말기라니... 갑작스런 소식에 몇 명의 지인들이 함께 병문안을 갔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는 원래 간염으로 군대에 가지 않았지만, 이후에 치료를 받아 항체가 생겼다는 판정에 안심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고 몇 년 동안 바쁜 사회생활과 개인적인 일들로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더욱이 그날은 탤런트 이미경씨가 페암으로 사망한 다음 날인지라, 병문안을 다녀오는 우리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요즘은 웰빙(well being)’ 열풍이 불어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건강관리, 또는 균형 잡힌 몸을 위해 시간과 재정을 투자하지만, 난 먹고 자는 것, 그리고 걷는 것 빼고는 건강을 위해서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운동을 해야 되는데..’라는 마음은 있지만, 운동의 우선순위를 늘 뒤쪽으로 밀어 놓고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전국적으로 운동을 하자는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전혀 마음에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 정말 마음이 완고하다. ^^; (아마 여기에는 학교 다닐 때 체육시간, 특히 실기 시험 때의 긴장감에 대한 기억도 한 몫하리라. 사실 난 큰 키와는 달리 운동에는 별 소질이 없어, 어설프게 흐느적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선후배들의 질병 소식들과 언론에서 나오는 각종 통계와 보도들은 젊음이라는 것이 결코 건강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나니, 내가 오래 살고 싶은 욕심보다 가족을 위해 건강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중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라는 책이 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inerd, 1718-1747)18세기에 활동한 미국 인디언 선교사이다. 그는 21세에 개종을 하고, 24세에 헌신을 해서, 29세로 생애를 마친 짧지만, 뜨거운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일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주님께 얼마나 깊이 헌신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생애를 29세라는 젊은 나이로 마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는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이 수고하고 헌신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이 약해 제대로 걷기 힘들 때에도 먼 곳에 있는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말을 타고 며칠 씩 걸리는 거리로 찾아가기도 했고, 기도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브레이너드의 이러한 헌신된 삶은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건강을 돌보지 않아 일찍 숨을 거둔 것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느끼게도 한다.


물론 흑백논리처럼 우선순위를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헌신에는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고, 가까운 곳과 먼 곳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해도 건강이 뒤따라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의 예물은 반드시 흠이 없는건강한 양이어야 했다. 이것은 곧 신약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12:1) 헌신에서, 우리가 흠이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서 흠이 없다는 것은 영적, 도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육체의 건강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4월 한 달 동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헌신이라는 주제로 4부예배를 드리고 있다. 헌신의 시작은 그 마음의 결단이겠지만, 지속적인 헌신, 즉 헌신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흠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시간과 재정을 투자해야 하는 이유는, 예쁘고 멋있는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지속적이고 깊이 있게 헌신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