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0. 27. 추수감사주일. 유치부 헌신예배.

 

하루 종일 바쁘게 주일을 보냈다. 매주가 그렇지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에다 유치부 헌신예배가 있어서 더 그랬다. 사랑스런 유치부 선생님들은 유치부 아이들에게 나눠 줄 선물 포장을 마무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일찍 교회에 나왔다. 선생님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과 사랑으로 준비된 인형극이 공연되었고, 아이들과 부모님들(그리고 유치부 헌신예배 때도 이 인형극을 공연했는데 성도들도 모두) 즐겁게 인형극을 보았다. 사역을 시작한지 이제 17개월을 채웠지만, 유치부와 청년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도교역자로서 나는 참 허점이 많고, 보지 못하는 것이 허다하며, 또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선생님들을 통해서, 그리고 청년회 임원과 조장을 통해서 당신 자신의 일을 해 나가신다. 이러한 일을 하시는 하나님은 정말 놀라우신 분이시다.

 

오늘 청년부를 맡은 후 처음으로 청년예배에 참석하지 못 했다. 유치부 헌신예배와 시간이 겹쳐서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김영록 전도사님에게 설교와 마치는 기도를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유치부 헌신예배가 조금 일찍 마쳐서, 청년예배의 끝부분인 나눔의 시간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김영록 전도사님에게 끝까지 예배의 모든 것을 맡겼는데, 원래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을 보니 어색하고 또, 섭섭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영원히 내 자리가 아니다. 나는 곧 떠나야 될 사람이다. 어느 곳에 가든지 영원히 그곳에 엉덩이를 붙이려 하거나, 영원히 나의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게 교역자의 삶이다.

 

교역자 회의 시간에 담임목사님께 내년엔 사역지를 옮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이유도 묻지 않으시고,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말씀하셨다. 몇 개월 동안 사역지를 옮겨야 할지 계속 있어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해 왔는데 이것으로써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기분이 시원섭섭해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섭섭하기만 했다. 어쩌면 나보다 청년들이, 유치부 선생님들이 더 섭섭해 할 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는 두 마음이 있다. 청년들이 눈물로써 나와의 이별을 아쉬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청년들과 선생님들이 나와의 이별로 너무 섭섭해 하지 않고, 새로 그 자리에 오실 전도사님과 빨리 친밀감을 형성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전자는 그들에게 내가 소중한 존재이기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다.

 

저녁에 월례회 후에 가진 유치부 선생님들과의 회식시간, 어쩌면 이제 그분들과는 마지막 회식을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순수히,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실히 섬기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특히 맑은 눈을 하고 화평교회에 대한 애정과 교회를 섬기는 기쁨을 말씀하시는 전계환 부장 집사님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동안 이분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한 집사님의 허름한 겉옷이 눈에 띈다. 별로 예쁘지 않은……. 집사님은 작년에 교육관에서 쓸 대형 진공청소기 2대를 헌물하셨다. 그리고 올해엔 때가 가지 않는 방석을 교체하기 위해 방석 껍데기 100개를 헌물하셨다. 예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보다, 교회를, 먼지 속에 있는 아이들을, 힘들게 청소하는 성도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더 컸나 보다. 그러나 난 지금 헌신예배 때 설교했다고 강사료를 받아서 가방 속에 챙겨두었다. 받고 싶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부족한 전도사를 생각해서, 별 은혜 안 되는 설교를 들으면서도 챙겨주셨다. 이 돈을 어찌 내 주머니에 챙길 수 있을까? 이 돈으로 조그만 선물이라도 사서 선생님들에게 드려야겠다.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또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당장 화요일부터 시험이 있고, 한 주 동안 할 일이 많다. 앞으로 몇 주간을 계속 그럴 것 같다. 자꾸만 두렵다. 또 일주일을 살아야 하는 것이……. 주님 종을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해야할 일들이라면 능히 감당케 하여 주소서…….

우리의 사귐

 

가을을 맞아 이번주(91)부터 청년부 조가 새롭게 편성되었다. 이번 조편성은 여름을 지나면서 흐트러진 소그룹을 재정비하여 활성화하고, 연령에 맞는 교육과 교제를 해나가는 데에 그 주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새롭게 11기 류안나 자매와 박지현 자매가 조장으로 헌신하였으며, 모두 6개의 조가 새롭게 편성되었다. 특별히 이번 조편성에서는 25살 이하의 지체들과 26살 이상의 지체들을 나누어서 각각 4개조와 2개조로 편성하였다. 그래서 이전에 20대 초반의 젊은 기수와 30대의 고기수들이 함께 조모임을 함으로써 나타났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청년부 조편성에 많은 의의를 두고, 여러 가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청년부에 있어서 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모임을 통해 성경을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 외에도 한 조 안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영적 여정의 동반자로 초청하며 함께 걸어 갈 수 있다.

30여년을 살아오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친구를 사귀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올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주 안에서 만난 교회 친구와 선·후배들이다. 그것은 그들과 성격과 취향이 비슷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결코 나눌 수 없는 신앙에 대해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새롭게 한 조에서 만나는 지체들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께로 가는 영적 여정의 동반자로서 관계를 맺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잠깐 옷깃을 스쳐지나가는 사람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충실한 동반자가 되도록 노력하자. 우리의 시간을 사용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연락하는 것과 또한 재정을 투자하여 선물을 사주고, 먹을 것을 사주는 것들은 서로에게 충실한 동반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우리의 마음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들은 우리의 관계를 막아서는 커다란 장애물들이다. 서로에게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또한 수용하는 관계로 까지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청년부 공동체의 모든 조가 당장에 이런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때로 우린 조모임을 하면서 서로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가 온 뒤에 땅은 굳어지는 법이며, 우리의 모든 모임과 교제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한일서 1:4)”

 

이번에 조편성을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에게는 장기결석자라는 이름의 많은 지체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그들을 조에 편성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름을 지워버릴 수도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금도 그들을 기다리시고 찾으시는 주님 때문이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주님께 다시 돌아오도록 돕는 것은 우리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이다. 이들도 또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동반자이다.

올가을 편성된 조는 다음해 1월 중순까지 계속 유지되다가 내년에 새롭게 올라오는 새내기(지금의 고3)들과 함께 다시 편성될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라도 인원이 많이 늘어 나게 되면 분가(?)를 해서 한 조를 둘로 나눌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5,6개월 뒤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서로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떠난 자들이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더 많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그것은 우리의 사귐이 주님과 함께 하고, 서로에게 충실한 동반자가 되어갈 때 가능해질 것이다.

 

2002. 8. 30.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지혜롭고 순결하게

 


지난 여름 수련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나 좋으신 주님과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했던 그 23일의 일정을 추억해 보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나도 모르게 입은 반달처럼 웃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와 살아야 하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사탄은 우리의 빈틈을 노려, 넘어뜨리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또한 잠깐 쉼을 누렸던 우리에게 다시 많은 일들과 욕심이 우리를 쉬지못하게 하려고 달려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12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10:16a)라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b). 뱀은 성경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아주 지혜로운 동물로, 그리고 비둘기는 아주 순결한 동물로 표상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아는 지혜와 세상의 뜻과 방법을 아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평안과 구원과 영생이지만, 세상의 뜻은 불안과 파멸과 영원한 죽음이다. 보통 이러한 뜻은 직접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것들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삶에서 요구되어지는 크고 작은 선택의 문제에서부터 세상의 문화와 여러 가지 사회현상들도 성경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지혜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질 것이다(1:7)

 

또한, 우리는 더욱 순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님은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므로, 작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사도바울을 통해 강하게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 쯤이야'라는 안일하고 타협적인 마음을 버리고,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일 손발을 씻듯이 매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손발을 씻을 때의 상쾌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리보다 더 강한 사자나 호랑이 등을 통해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되신 주님을 의지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양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이 땅을 정복하고 변화시켜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더욱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권면을 하면서 이러한 삶은 바로 우리가 드려야할 '영적 예배'라 하였다. 다음의 말씀을 암송하며, 마음 속 깊이 새기자.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자. 그러할 때 주님이 우리를 이리들에게 지켜 주시고, 더욱 지혜롭고 순결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정복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나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2002. 8. 21.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