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S 1100호 축하글

 

인터넷 시대의 LOGOS (로고스), 그 힘찬 전진

 

 

인터넷 시대에 글쓰기, 특히 종이에다가 글을 써서 인쇄하는 것은 각광받는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쇄매체를 고집하는 것은 여전히 인쇄매체가 가진 장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제한되어 있지만, 인쇄매체는 장소와 시간에 있어서 자유롭고, 또한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보존하여 다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IMF 이후 많은 출판사가 도산을 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글쓰기와 글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쇄매체의 분투의 한 가운데에 우리의 로고스지가 자랑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12쪽의 회지를 매주 발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로고스는 20여년의 역사를 훌쩍 넘어 벌써 1100호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20여년동안 수고하고 헌신한 선배기자들과 현역기자들의 노고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또한 그만큼 로고스를 애독하고, 글쓰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청년부 지체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위에 로고스를 통하여 청년부 안에 사랑의 교제와 말씀의 도전이 가능하게 하셨던 성령님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에 로고스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매주 발간되고 꼼꼼히 읽혀지고 있다.


이제 1100호의 고개를 넘어서는 로고스는 그 연륜 만큼이나 중요한 책무가 주어져 있다. 지난 1월 전국의 수백 개 교회 청년·대학부가 모였던 리더십 캠프에서 확인한 바가 있듯이 로고스는 다른 교회의 청년·대학부의 회지에 비해 역사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선발주자의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로고스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쇄신하여 선발주자로서의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청년·대학부의 인쇄매체가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다른 교회들에게 좋은 모범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흔 기자들 뿐만 아니라, ‘로고스의 독자된 여러 지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기도하며, 방향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 영등포교회 청년1·2부에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교회로부터 주변 지역의 많은 교회들이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영등포의 어머니교회라는 명칭을 얻었다면, 이제는 건강한 청년·대학부를 세워감으로써 주변의 다른 교회 청년·대학부에 건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등포의 어머니교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한 귀중한 사명의 한 가운데에 현재 로고스가 분투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힘써 전진해야 함을 1100호를 출간하는 오늘, 우리 모두가 깊이 명심하자!


2004년 2월 3일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1100호. 




독일경건주의 영성훈련을 통한 한국교회 영성훈련의 실천방향

 

석사학위 (Mater of Divinity) 논문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서울

2004년 1월

 

독일 경건주의에 대한 새롭고 깊은 이해를 보여주기보다는 기존의 연구들을 토대로 영성훈련의 관점에서 독일 경건주의의 유산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한국교회의 영성훈련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한국교회 영성훈련의 한계를 극복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논문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영성훈련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고민하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원문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사이트(RISS)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이동)






목차

 

Ⅰ. 서론 ······················································································ 1

   A. 연구의 동기와 목적 ·········································································· 1

   B. 연구 방법과 범위 ·············································································· 3

 

Ⅱ. 경건주의의 배경과 정의 ························································· 4

   A. 경건주의의 역사적 배경 ·································································· 4

1. 독일 정통주의(Orthodoxy)와 객관화된 신앙 ·················· 4

2. 30년 전쟁과 경건성의 위기 ················································ 6

3. 청교도주의(Puritanism)의 영향 ········································ 8

B. 경건주의의 정의 ··············································································· 9

1. 경건주의에 대한 오해 ························································· 9

2. 경건주의의 정의 ································································ 12

 

Ⅲ. 독일 경건주의의 영성훈련 ···················································· 15

A. 영성과 영성훈련의 정의 ······························································· 15

1. 영성의 정의 ········································································ 15

2. 영성훈련의 정의 ································································ 18

B. 독일 경건주의 영성훈련의 특징 ·················································· 20

1. 하나님과의 일치 추구 ······················································ 20

2. 중생의 체험을 위한 투쟁 강조 ········································ 27

3. 소그룹(small group) 훈련 ··············································· 29

4. 공동체 훈련 ········································································ 31

5. 성경 중심의 훈련 ································································33

6. 영성형성(Spiritual Formation)으로서의 영성훈련 ········35

7. 영성훈련으로서의 신학교육 ············································ 37

8. 지도자의 중요성 부각 ······················································· 40

 

Ⅳ. 오늘날 한국교회 영성훈련의 문제점 ······································ 42

A. 기복적이며, 자기몰두적인 기도 ··················································· 42

B. 지식 위주의 훈련 ············································································ 44

C. 단기적인 행사(event)로서의 훈련 ··············································· 47

D. 오순절운동의 영향 ·········································································· 49

 

Ⅴ. 독일 경건주의와 한국교회의 영성훈련 비교 ···························· 51

A. 독일 경건주의와 한국교회 영성훈련의 연속성 ······························ 51

B. 독일 경건주의와 한국교회 영성훈련의 불연속성 ·························· 54

C. 한국교회 영성 훈련의 바람직한 방향 ·············································· 57

1. 기도를 통한 하나님께로의 발돋움 ··································· 57

2.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로서의 성경읽기 ················· 59

3.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가정의 회복 ··································· 60

4. 일상생활 속에서의 영성훈련 : 관상적 태도 ··················· 62

 

Ⅵ. 결론 ····················································································· 65

참고문헌 ···················································································· 68

가족 생각

 


명절이 좋은 점은 그동안 잘 만나지 못 하던 가족과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생활하다 보니,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는 것이 더욱 뜸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명절 연휴에 주일이 끼는 바람에 집에 내려가지 못 할 때가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큰 아버지의 머리는 드문드문 눈으로 덮인 산 마냥 흰 머리가 제법 덮여 있었고, 촌수를 따지면 5촌이 되는 조카들은 앨범이 몇 장 뜯겨져 나간 것처럼 훌쩍 자라 있었다. 설날 대목을 보겠다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3일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과일을 팔러 다니던 사촌형 부부가 얼굴이 언 사과처럼 빨갛게 얼어 들어오는 것을 보며, 그동안 내가 가족들에게 참 무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이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면, 친척들을 잘 돌아보지 않는 나는 변명의 여지없이 참 악하고 나쁜 사람임이 틀림없다. 멀리 있고, 잘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핑계가 되지 않는다. 우리 속담에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피를 나눈 가족과 친척을 돌아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특히 믿는 사람은 더욱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돌보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멀리 있는 경우도 그렇고 또한,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어서도 안 된다. 이처럼 명절은 바쁜 삶으로 소원해진 가족과 친척들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는 날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와 반대되는 말씀도 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10:37)

 

이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자기 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읽는 이들을 당혹하게 한다. 그러나 실은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 오직 주님을 더욱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누구보다 잘 실천한 사람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시다. 주기철 목사님은 당신이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인해 가족까지 엄청난 핍박과 심적, 육적,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고자 하는 의지와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 대가로 그 가족들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목사님이 가족들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주기철 목사님은 누구보다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러나 당신은 오직 가족을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 맡겼을 뿐이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가족들을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보호하셨고, 지금 현재 생존해 계시는 주기철 목사님의 2, 3세 후손들이 이를 간증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다는 것을 핑계로 결코 가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부모님께 드릴만한 것이 있어도 고르반,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부모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악한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예수님은 강력히 비판하셨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것, 그리고 선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들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가족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혹시 부모나 가족, 친척들에게 인간적인 약함이나 부족함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를 용납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올 해 더 큰 사랑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04년을 시작하며 올 해 가지는 목표는 무엇인가? 올 한 해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여, 가족과 이웃들을 향해 더욱 큰 사랑을 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올 해 우리의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부관계나, 부모관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관계와,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의 가족관계에 많은 불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고 용납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세상에 대안적인 가족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일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2004. 1. 24.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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