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순결하게

 


지난 여름 수련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어떻게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너무나 좋으신 주님과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했던 그 23일의 일정을 추억해 보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나도 모르게 입은 반달처럼 웃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와 살아야 하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사탄은 우리의 빈틈을 노려, 넘어뜨리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또한 잠깐 쉼을 누렸던 우리에게 다시 많은 일들과 욕심이 우리를 쉬지못하게 하려고 달려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12제자를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10:16a)라고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b). 뱀은 성경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아주 지혜로운 동물로, 그리고 비둘기는 아주 순결한 동물로 표상된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아는 지혜와 세상의 뜻과 방법을 아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평안과 구원과 영생이지만, 세상의 뜻은 불안과 파멸과 영원한 죽음이다. 보통 이러한 뜻은 직접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것들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삶에서 요구되어지는 크고 작은 선택의 문제에서부터 세상의 문화와 여러 가지 사회현상들도 성경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지혜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질 것이다(1:7)

 

또한, 우리는 더욱 순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주님은 작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므로, 작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사도바울을 통해 강하게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 쯤이야'라는 안일하고 타협적인 마음을 버리고,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일 손발을 씻듯이 매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순결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손발을 씻을 때의 상쾌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리보다 더 강한 사자나 호랑이 등을 통해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되신 주님을 의지하고 순결하게 살아가는 양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이 땅을 정복하고 변화시켜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것을 위해 주님은 우리에게 더욱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도 우리에게 이와 비슷한 권면을 하면서 이러한 삶은 바로 우리가 드려야할 '영적 예배'라 하였다. 다음의 말씀을 암송하며, 마음 속 깊이 새기자.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자. 그러할 때 주님이 우리를 이리들에게 지켜 주시고, 더욱 지혜롭고 순결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정복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나가실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1-2)


2002. 8. 21.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지금 장상 국무총리 서리의 인사청문회가 한창 열리고 있다. 장상 국무총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총리이자, 이화여대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치던 신학자였기 때문에 많은 국내외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어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다든가? 부동산 투기 의혹과 아들의 국적문제 등 여러 가지 의혹으로 인해 장총리 서리가 아주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식민지라는 부끄러운 역사 속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갈망했던 민족시인 윤동주이다. 그는 가난한 이웃과 민족과 자연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특별한 사람이다. 오늘과 같은 때에 그가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 번의 실수도, 한 번의 잘못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만, 갈수록 작은 흠에 대해서는 뻔뻔해져 가는 것 같다. ‘이 정도 쯤이야..’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고 넘어간다. 새 구두를 사서 신고 다니면, 작은 흠집이 나도 신경쓰이고 속이 상하지만, 갈수록 웬만한 흠집은 눈에도 안 보이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까?

 

그러나 우리는 얼마 신다가 버리는 구두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아름다운 생명이며,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거룩함에 나아가야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일순간 완벽한 사람이 될 순 없지만, 하루 하루 조금씩 주님을 닮아가 거룩함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성화(聖化)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영광의 주님을 만나 예비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갈망하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던 윤동주 시인과 같이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작은 잘못이라도 크게 부끄러워하며 고치기를 애써야 한다.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현실과 자신의 욕심과 타협해 간다면, 우리가 이루어야할 거룩함은 점점 멀어지고 만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예배자 중의 한 사람 다윗은 내가 나의 온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26:1-2)“라고 기도했다. 나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다윗이 부러웠다. 이러한 다윗의 간구가 우리 모두의 간구가 되기를 소망하며, 매일밤 피로에 지친 몸을 그냥 이불 위로 던지기 전에 잠잠히 주님 앞에 무릎꿇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자.

"주님 나를 살피시고, 정결케 하사 주님 닮아가게 하소서. 나를 거룩함으로 온전케 하소서"


2002년 7월 29일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관 속에 누워 -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렇게 사람이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보면 인생이 참 허무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런 생각도 그 때 뿐이라니까. 또 동네에 들어가서 며칠 생활하다 보면 금방 잊어버려~."

 

지난 화요일 아침, 고 김진환 원로목사님의 시신 화장을 지켜보기 위하여 벽제 화장터에 함께 갔던 사람들 중 몇 분이 나눈 이야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아침도 화장터에는 여섯 명이 함께 들 정도로 무거운 관이 줄이어 소각로로 들어갔다가 수십분 후에는 모두 어김없이 작은 상자 속의 재로 변해 한 사람의 손에 가볍게 들려 나오고 있었다. 오열하는 유족들의 통곡을 뒤에 이끌고 말이다.

 

그래서, 구약의 전도서에서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7:2),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7:4)라고 가르치고 있나 보다.

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 속에 눕혀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나도 좁은 관 속으로 들어가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될 텐데 그때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기억할 것인가?’ 관 속에 누운 것처럼 가만히 눈을 감고 조문 온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상상력을 동원해 귀를 기울여 보라. 그리고 죽음 후에 주님을 만났을 때 그분께서 나를 보시면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가만히 귀기울여 보라.

 

고 김진환 원로목사님은 자유게시판에 올린 고석경 장로님의 추모사에도 잘 나타나듯이 분골쇄신하여 주님과 성도들을 섬기신, 참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의 장례식에는 특히나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이별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삶은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살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부끄러움 삶이라는 결론 밖에 내릴 수가 없다. 이것은 결코 겸손이나 자기비하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은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이다. 아직 주님은 우리에게서 숨을 거두어 가시지 않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때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전도서 기자의 교훈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12:1)

 

이 말씀은 올해 우리 청년부 주제말씀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젊은 날 꼭 마음에 품어야할 말씀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아버지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우리의 인생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창조주이시자 우리 인생의 설계자이신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함은 당연한 진리이다.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오늘도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모두다 무엇을 심고 있는가? 혹시 뜨거운 불 속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할 것들을 위해 헛되이 애쓰고 수고하고 있지는 않은가? 또 다시 무언가를 심기 위해 허리를 굽히기 전에 잠깐 숨을 돌리며, 내가 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자. 그리하여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트랙터로 밭을 뒤엎고 있는 농부처럼, 잘못된 씨와 생산물로 인해 애통해하며 인생의 밭을 뒤엎는 안타까운 농부가 되지 않도록 하자. 이를 위해 창조주 주님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 시간을 심자, 열정을 심자. 나의 삶을 향한 주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성령을 위하여 심자! 더 늦기 전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8)


2002년 7월 21일

화평교회 청년부 주보 '이슬칼럼'

Tag 죽음,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