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4부예배 주보 목회칼럼

2003928

 

울타리를 넘어서

 

울타리 하나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지자, 사람들이 마을 입구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아니나다를까 곧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오셨고, 사람들은 삽시간에 예수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세리 삭개오도 주님을 만나고 싶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왔으나 가뜩이나 키가 작은 데다가 사람들이 끼워 주지 않아, 도무지 예수님 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길 앞쪽에 있는 뽕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울타리 둘

집 나간 동생이 돌아 왔다는 소식에 맏아들은 마음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 허랑방탕하게 탕진한 것도 모자라, 이제 자신이 상속 받을 몫까지 넘보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이다. 더욱더 성실히 일한 자신에게는 송아지 한 마리도 잡아 주시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망나니 같은 동생을 위해서 살진 소를 잡고, 잔치까지 벌였다는 이야기에 더욱 서운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위에 나오는 이야기들에는 높은 울타리가 존재한다. 먼저 정직하지 못하게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착취해 온 세리 삭개오와 그를 따돌리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도저히 넘기 힘들어 보이는 높은 울타리가 쳐져 있다. 다음으로 집나갔다 돌아온 작은 아들과 그를 반기지 않는 큰 아들 사이에도 허물기 힘든 튼튼한 울타리가 박혀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이런 울타리가 많이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집단따돌림은 이미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문제이며, 이 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집단과 집단 사이에도 이런 울타리가 수없이 존재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교회, 특히 청년부에도 이런 울타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들어 4부예배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 중에는 처음 온 지체들도 있으며,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지체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제법 훌륭하게 청년부에 잘 정착해서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 하고 주위를 맴돌거나 아예 떠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우리 청년부 안에도 위에서 말한 높고 튼튼한 울타리가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한 판단은 글을 읽는 각자에게 맡기겠지만, 높은 울타리가 존재하든지 아니면 그냥 경계만 그어 있든지 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경계를 넘어야 한다.

 

울타리를 넘어서

위에서 말한 울타리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사람들과 떨어져 뽕나무 위에 있던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다가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삭개오야 나무에서 내려오라. 내가 너희 집에 머물겠다.” 그래서 삭개오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가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모든 것을 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나무에서 내려 와야 한다. 비록 4부예배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청년부의 주위에서 맴도는 이들은 과감히 나무 위에서 내려와 지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의 공동체는 우리들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공동체에 속해 있는 기존의 지체들은 동생의 귀환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었던 맏아들의 모습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혹시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무관심하다면, 잃어버린 자녀가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이에 있는 울타리, 또는 경계는 양자가 함께 넘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한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한 성령 안에서 함께 예배하는 우리는 이렇게 울타리를 넘어 서로를 향해 달려 갈 때 진정한 하나됨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하나가 될 때 우리가 드리는 4부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진정 아름다운 예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