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이 없을 때

 


부산에 있는 우리집은 수영구 수영동에 있고, 아내가 살던 처가는 해운대구 재송동에 있다. 비록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수영동과 재송동은 중간에 강을 하나 두고 맞닿아 있다. 더욱이 우리집과 처가는 중간의 높은 건물만 없다면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인데, 문제는 강을 건너는 다리가 한참 아래쪽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집에서 처가로 가려면 버스를 타러나가는 시간 10, 잘 안 오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평균 10, 돌아서 가는 버스 10, 내려서 걷는 시간 5분 이렇게 평균 35분이 걸린다. 그래서 부산에서 연애를 하던 시절, 중간에 다리가 하나 더 생겼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랬던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나보다. 드디어 그 강에 다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물론 그 다리가 개통된 것은 우리가 부산을 떠나고 2-3년이 흐른 뒤라서 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어째든 그 다리의 개통으로 인해 우리집과 처가는 자동차로, 모든 신호가 다 걸려도 5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 ! ! (너무 팔불출 같이 웃었나 ^^; )

 

이처럼 지름길이라는 것은 정말 좋다. 지금길이 있으면, 원래 들여야 할 노력과 힘에 훨씬 못 미치는 양으로도 같은 성과를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지름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호 목사님께서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시간보다 많이 걸린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 영등포-의정부간 구간이 그렇다. (물론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서울-부산은 KTX3시간 30, 그리고 영등포-의정부는 1호선과 도보포함해서 1시간 40분으로 영등포-의정부 구간이 훨씬 가깝다. 그러나 체감시간으로는 부산 가는 길은 금방이고 의정부 가는 길은 한참이다) 결혼하기 전, 의정부에 집을 얻을 때만해도 ‘1시간 40분쯤이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매일 왕복 3시간 이상, 다른 볼 일이 있으면 4시간 정도를 차타고 다니다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버스를 타고 다닌다면 차가 막히지 않는다면 좀 시간이 단축되겠지라는 기대를 할 수 있지만, 웬걸 전철은 신호대기로 지연되는 법은 있어도 빨리 도착하는 법은 절대 없다. 아무리 급하게 마음을 먹고 전철을 타기 전에, 또는 전철에서 내려서 뛰어도 꼬박 3시간을 투자해야만 영등포-의정부를 오갈 수 있다. 물론 승용차로 오가면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승용차로도 보통 왕복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이다. 앞으로 서울시 지하철에도 고속전철이 도입되거나, 영등포-의정부 직통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리지 않는다면 이 시간은 줄어들기 힘들 것 같다.

 

이처럼, 우리 삶에는 지름길이 없는 경우도 많다. 만약 지름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서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지만, 지름길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한 때는 의정부에서 교회로 올 때 좋다! 이 틈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리라마음을 먹고 작정하고 않아서 잠을 잔 때도 있다. 하지만 한참 잠을 잤다고 생각하고 눈을 떠보면 청량리이고, 조금 더 자면 시청’, 더 이상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신문을 읽어도, 1면부터 32면까지 다 봐야 겨우 반 정도 밖에 가지 않는다. 무언가 전철 안에서 시간을 보람 있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보내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아무래도 먼 길을 오가는 지용이나, 보라에게 그 노하우를 좀 전수 받아야 할 것 같다.)


어째든 이것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지름길이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내 삶에서도 지름길이 없는 때가 꽤 있었다. 특히 대학이나, 신대원 시험을 준비하던 기간이 그랬고, 군복무 기간이 그랬다. 물론 좀더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만, 힘들고 지친다고 해서 정해진 시험날짜를 앞당길 수도, 군복무 기간을 단축시킬 수도 없었다. 등산을 할 때도 그랬다. 정해진 등산로 외에 지름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할 일이었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묵묵히 정해진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새로운 지름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름길이 없는 그 길을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등산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잘 알겠지만 등산에는 노하우가 있다. 배낭을 싸는 법부터 시작해서, 복장과 신발의 선택방법, 그리고 걷는 방법과 적당한 휴식시간과 방법이 있다. 이러한 등산의 노하우를 알게 되면, 무작정 배낭을 싸짊어지고, 막무가내로 올라가는 것에 비하여 훨씬 효율적으로 산을 오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시험을 준비하거나, 군복무를 하거나 또는 다른 지름길이 없는 길을 걸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혹시 지금 지름길이 없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매일매일 억지로 걸음을 옮기고 있으며, 한 숨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지름길이 없는 것을 한탄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그 길을 좀더 쉽고 효율적으로 걸어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구하라. 물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권하는 것은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걸으라. 혼자서 끙끙대지 말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라!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시며,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시는 분이시다. 혹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이 있다면, 로또나 경품행사들과 같은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것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지 말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과 함께 오늘의 길을 걸으라. 그분은 우리가 넘어질 때 일으켜 주시며, 일어나지 못할 때 업어주시는 분이시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모든 감정과 생각을 그분께 말씀드리라. 그러면 매일매일 억지로 옮기던 무거운 발걸음이 어느덧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옮기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바뀔 것이다


주후 2004 4 24

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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