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0. 토


요즘 비가 오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텃밭에 물주러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자주 오면서 농사일에 게을러졌다. 사실은 날씨 탓만이 아니라, 상추를 앙상하게 만들고 있는 달팽이들의 왕성한 식욕이 우리 부부의 농사 의지 마저 갉아 먹고 있다. 새로운 씨와 모종들을 심으려고 밭을 고르던 것도 중단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어쩌면 곧 이사를 가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이 요즘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주인의 마음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이 토마토 열매들은 하나 둘씩 영글면서 우리가 밭에 나가는 기쁨이 되어 주었다. 지난 번에 병든 잎과 가지들을 제거하고 난 뒤 새 잎사귀들이 제법 돋아나고 있지만 그것들 역시 하나둘 병에 걸려가고 있어서 안스럽다.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호박 열매를 땄다.마지막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밭을 인수 받은 이후의 유일한 호박 열매이다. 그동안 몇 개의 열매들이 열렸지만 병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너구리의 습격에 채 익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낸 녀석이 제법 대견하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제법 묵직한 것이 마음을 부요하게 한다. 그래, 열매란 크기와 모양보다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결과보다 성장 이야기가 더 감동을 준다. 오늘 점심은 호박을 넣고 칼국수를 끓여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감동이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지. 땅만 보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이마에 와닿는 바람이 느껴진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