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9. 화.


저녁을 일찍 먹고 아내와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저녁에도 산책을 다닐 수가 있다. 로즈 가든으로 가서 일몰을 보았다. 유배 생활 같았던 유학 첫 학기, 금문교 뒤 태평양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은 진한 노을 만큼이나 내게 진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저 태평양을 넘어 가면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는 고향이 있는데…….' 그렇게 로즈 가든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그리운 가족 생각을 하곤 했다. 


해가 넘어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주위가 캄캄해지기 전에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오며, 아내에게 말했다. "난 아직 아버지를 보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아내는 뜬금 없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오늘은 바로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병원에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시는 날이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위내시경을 하셨는데, 그 휴유증인지 한 달 가까이 고생을 하신 적이 있다. 지금은 좀 회복되긴 하였지만, 누님이 권유하여 집에서 가까운 해운대의 한 대학병원에서 '실버종합검진'이라는 것을 받으셨다. 그리고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하셨는데, 병원에서 예정보다 이틀 빨리 오라고 해서 오늘 병원에 가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가능한 빨리 전화를 달라는 동생의 연락이 와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검사 결과 아버지의 폐에 있는 종양이 악성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밀 검사를 통해 전이 여부와 수술 가능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려  준다. 눈 앞에 단단한 철문이 놓여진 느낌이다. 이 와중에서도 아버지는 내가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될까봐 내게는 이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전화드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았다.



2013. 4. 10. 수.


주변의 한 교회의 수요일 예배에 가서 설교를 하였다. 마태복음 5장 3절의 말씀으로 가난한 마음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였다. 이 본문을 "It will be well with those who are poor in spirit."이라는 번역을 토대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설교문의 가장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원고에 썼다가, 실제로 설교 때는 말하지 못했다.  


어제 한국에 있는 제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종합검진을 받으셨는데 폐암으로 판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 저의 마음도 상당히 가난해졌습니다. 아마 제 아버지의 마음도 매우 가난해지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치료가 되어서 생명이 연장되든지, 그러하지 못하든지 간에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이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 볼 때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잘 될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일이 잘 되게 하실 것이다.



2013. 4. 11. 수.


오늘은 아버지가 병원에서 수술 가능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정밀 검사를 받고 오셨다. 제수씨가 직장에서 일찍 나와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처음에 암진단을 받고 마음이 많이 무거우셨던 아버지도 이제 마음이 좀 좋아지셨는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셔츠를 사러 가자고 하셨단다. 착한 제수씨가 아버지를 백화점으로 모시고 가서 셔츠를 두 벌 사드렸다고 한다. 나와 누나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모님 가까이서 살고 있는 동생 내외가 참 고생이 많다. 불평이나 싫은 내색 전혀 없이 정성껏 부모님을 모시는 동생 내외가 참 고맙고 미안하다.


혹시 수술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서 어머니와 동생이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가 보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 친척분이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는가보다. 부모님은 일단 검사는 부산에서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수술을 어디에서 할 것이지를 결정하시겠다고 한다. 


아버지가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보내준) 사진 보니까 바람이 부는 것 같구나. 한국도 요즘 봄이 아닌 것 같이 일기가 매우 불순하다. 그리고 검진은 4월 17일날 결과가 나올 것 같다.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버지는 암진단을 받으시고도 자신의 몸보다 멀리 있는 아들이 걱정하는 것을 더 신경쓰시나보다. 아내가 키우기 시작한 깻잎 사진을 보내드렸더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작물은 키우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키우는 재미 또한 있는 것이다. 그래 매일 좋은 생각을 가질 것이다."


'네, 아버지 매일 매일 좋은 생각을 가지세요. 모든 것이 잘 될 거예요.'



2013. 4. 16. 화.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동생이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담당 교수가 아버지의 암이 1기말 정도로 그리 심하지 않고, 전이도 되지 않았으며, 폐도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 후 따로 항암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퇴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최상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께 암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서는, 왜 내게 이야기했냐며 괜히 어머니를 나무라셨다고 한다. 



2013. 4. 17. 수.


드디어 종합시험 프로포절이 통과 되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이 되기를 기다려, 카카오톡으로 아버지와 누나, 동생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과정이 무엇인지도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는 종합시험 프로포절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시지만 그래도 내 공부가 한 단계 진보하였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셨다. 내친 김에 올해에는 미국의 영문 저널에 내가 쓴 글이 세 편 게재 된다는 사실도 알려드렸다. 아버지는 "아침에 좋은 소식이 많아 아버지가 참 기쁘구나"라며 즐거워하셨다. 동생도 미국 저널이 수준이 낮은가보다라며 겉으로는 '과소평가'하면서도 기뻐하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따로 대화창을 열어서 종합시험 프로포절이 뭔지 아버지가 잘 모르시니까 쉽게 설명해 드리라면서 따로 팁을 준다. 동생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내 마음보다 훨씬 깊다.



2013. 4. 19. 금.


아버지와 짧게 통화했다. 이전에는 내가 아버지의 병을 알고 있는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젠 '들통난' 김에 좀더 직설적으로 말씀드렸다. 


"아버지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가 땅에서 오래 살면 하늘에서 좀 더 짧게 사는 거고, 땅에서 좀 짧게 살면 하늘에서 더 길게 사는 거니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당연한 듯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래,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린 것 아니가!" 


아버지의 쉰 목소리가 오늘따라 매우 씩씩하게 들렸다. 수술을 앞두고 겁이 나실 만도 한데, 아버지는 내 생각보다도 더 담대하게 마음을 준비하고 계신 듯하다. 감사하다.   



2013. 4. 21. 주일.


오늘따라 교회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느라 늦게 나왔다. 오늘은 아버지께서 폐암 수술을 받으시는 날인데 전화가 늦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수술을 받으시기 전에 통화를 하고 용기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틀 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집에 들어와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없다. 어머니와 함께 수술실 앞을 지키고 있는 동생이 가끔씩 카카오톡으로 상황을 전해 주는데, 다른 환자들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는 듯하다. 어머니는 긴장이 되시는지 화장실을 여러번 다녀오셨다고 한다. 


초조하게 수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내일 만나기로 한 목사님인데, 사모님이 오늘 유산을 하셨다고 한다. 아이를 가진 소식도 알지 못했는데, 유산을 하셨다니 더 충격적이고 너무 마음이 안타깝다. 평소와는 달리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사님의 음성이 떨린다. 


드디어 거의 여섯시간에 걸쳐 수술이 끝났는데, 수술 전과 달리 의사의 말이 그리 시원하지 못하다. 가슴을 열어보니 생각보다 폐에 굳어진 곳과 구멍이 난 곳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어려운 수술이었다고 한다. 수술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예후를 지켜봐야 한단다. 아버지께서 중환자실로 이송되셨고,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회복을 기다린다. 



2013. 4. 22. 월.


부르심을 받고서 대학을 졸업한 뒤에 또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유학길에까지 올라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이것이 부모님께 불효를 하고, 누나 동생에게 걱정과 부담을 끼치고, 그리고 아내를 고생시키고만 있는 것이 아닌지. 남들보다 더 어려운 길을 가는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거나, 세상과 하나님 나라에 더 큰 기여를 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만은 아닌지. (사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선택과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소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많이 무너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보고 있는 것일까?

 

오늘 점심 읽은 말씀. 부르심을 따라 그 아버지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른 야고보와 요한. 부르심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면, 그래서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소망하고 기대해야 할까? 나 한 사람이라면 '순종'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되지만, 나 혼자의 힘으로 공부하고 는 게 아닌데, 이 길을 가는 것을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것, 그들의 사랑과 후원과 섬김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성직자에 대한 자부심? 교회와 성직자가 타락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자부심이 아직도 남아 을까? 그리고 마르틴 루터에 의하면 목사(신학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명을 따르는 성직자이지 않은가?


유산을 하신 사모님을 찾아뵈었다. 지금은 많이 안정되 보이셔서 다행이다. 유산을 하면 출산한 것과 같이 몸조리를 해야한다고 한다. 한 어린 생명이 다 자라지도 못하고  그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한 노인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이웃이 우리가 상심에 빠져 있을까봐 저녁식사 초대를 했는데,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계신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아서이다.



2013. 4. 23. 화.


이틀 전 수술을 받으신 아버지의 회복이 더디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기력이 없으시고, 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걱정 되는 것은 간호하시는 어머니와 홀로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 동생이다. 어머니는 염려와 피로로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지신듯 하다. 전화 통화를 하면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가라 앉아 있다. 그리고 눈물도 흘리시는 듯하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께서 버티시지 못할까봐 걱정이시다. 동생도 원래 직장 일도 힘들고 몸이 그리 튼튼하지 못한데, 혼자서 부모님 두 분을 챙기느라 많이 힘든가 보다. 그런데 장남인 나는 먼 곳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다. 한두 주라도 한국에 가서 부모님과 동생에게 힘이 되고 싶은데, 시간보다 비행기표를 마련한 재정이 없어서 갈 수가 없다. 신용카드를 긁어 표를 장만할 수는 있지만, 그러면  그걸 갚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손을 벌려야하니 가지 않는 것만 못하리라. 


내가 가족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그 길을 충실히 따라 가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내가  뭔가 보답할 수는 없다. 다만 주기철 목사님이 간구하신 것처럼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주님께서 가족들을 돌보아 주시기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  어제 낮에 읽었던 말씀. 주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그의 병든 장모를 치료하셨던 일을 묵상해본다. 장남으로서 나의 책임을 넘치도록 다 감당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다. 주님께 가족들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중증환자실로 옮기셨다. 일반 병실이 아니라 중증환자실이라 조금 염려스럽기는 했지만, 수술 전 담당 교수가 한 말, 곧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만 입원하면 된다는 말을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한다.



2013. 4. 24. 수.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새벽에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가셨다고 한다. 마음이 무너진다. 급히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편을 알아 보았으나 인터넷으로 카드결제가 여의치 않다. 그러던 중에 자형이 연락이 와서 현재 위중하시만 위급한 상황은 아니므로 주변 정리를 하고 한국에 장기간 있을 준비를 하고 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아내가 동반 휴직 중이라 한국에 오래 체류할 수도 없는데, 상황이 복잡하다. 그보다 마음이 더 복잡하다. 


내 기도가 끊어지면 아버지의 호흡도 끊어 질 것 같아 마음으로 기도를 멈출 수가 없다.



2014. 4. 25. 목. 


교회 담임 목사님의 양해를 얻어 내일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했다. 자형이 통장으로 비행기표를 끊기에 충분한 금액을 송금해주었다. 그런데 표를 끊자마자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한국시간 새벽 4시 26분. 어머니다. 지금 막 중환자실에서 보호자를 호출했다고 한다. 아내랑 당장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주님 아버지의 호흡을 붙들어 주세요."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기도할 수가 없다. 그저 "주님 붙들어 주세요"를 반복할 뿐이다.


한 시간 뒤 동생과 통화를 하니 이번엔 일시적인 심정지에 뇌손상까지 왔다고 한다. 그리고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기계에 의존해서 산소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건강이 더 악화되어 가고 있다.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면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힘을 내시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이젠 아버지께서 나를 알아 보실 지도 모르겠다. 지방의 신생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대체요법을 찾아 보거나, 서울의 좋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하실 걸이라는 후회도 든다.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 정말 가난한 맘으로 주님을 본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잘 될 것이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된다고 해도, 상황이 악화된다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길 바라고 믿으니까. 


폐이식에 대해서 생각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아버지의 장례를 어떻게 치뤄야 하나라는 생각도 한다. 소식을 들은 여러 분들이 전화로 위로를 전하고, 기도하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들을 대신 맡아 줄 테니 염려 말고 다녀오라고 하신다. 


수년째 암투병을 하고 있는 어린 딸을 두고 계신 한 목사님께 전화로 기적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기를 기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기적! 그래, 기적! 왜 기적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을까? 이미 아버지의 삶에 기적이 일어난 적도 있지 않은가? 참 완고하셨던 아버지께서 내가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할 때 말리지 않으시고 후원해 주시며, 나아가 당신께서도 직접 교회에 나가시고 신앙을 갖게 되신 일은 내게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제 다시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아버지가 다시 회복되는 기적! 죽어가는 아버지의 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


한국 갈 짐을 싸기 위해 이것저것 챙기는데 갑자기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짐을 싸다가 무릎을 꿇고 주님께 아버지께서 왜 살아나셔야 하는지 내가 생각하는 이유들을 간절히 말씀드렸다. 내가 주님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서 내 생각이 주님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에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국 시간으로 점심 면회가 끝난 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병중에 계신 큰아버지를 비롯해서 큰집 식구들이 여러 명 다녀가셨다고 한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오늘 오전 아버지의 기관지를 절개해서 호수를 삽입한 뒤에 새벽보다는 각종 수치들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지난 화요일 이후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이것이 처음인 것 같다. 한국에서 전화가 올 때마다, 또는 전화를 할 때마다 악화되었다는 이야기 밖에 없었다. 수치가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인데도, 그것도 금방 다시 나빠질지도 모르는 위험 속에 있는데도, 적지않게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중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일희일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