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5. 주일. 어린이 주일.


한국에 돌아 온 지 두 번째 주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도 역시 어머니와 함께 1부 예배를 드렸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라 아이 사무엘에 대한 말씀을 본문으로 자녀 교육에 대한 설교가 전해졌다. 사무엘의 이름 뜻이 하나님께 구하여 얻었다는 뜻이라며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몇 번 강조하신다. 자녀가 없는 나는 설교 내용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도 병원으로 가서 중환자실 문 앞에서 면회시간을 기다린다. 



멀리서 작은 이모님 내외가 면회를 오셨다. 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먼저 면회를 들어가고, 나와 아내는 이모님, 이모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후 면회를 마치고 나온 동생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버지 폐렴이 더 안 좋아졌다네." 어제 조금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오늘은 좀더 진전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오히려 어제보다 훨씬 나빠졌다는 것이다. 순서가 되어 들어가보니 아버지는 호흡을 거칠게 내쉬며 주무시고 계신다. 오랫동안 누워계셔서 그런지 손과 발도 퉁퉁부어 있고, 살이 빠지셔서 헤쳐진 상의 앞자락 사이로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보인다. 너무 안스럽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 손을 잡아 드리고 시편 18편 말씀을 읽어 드리고, '능력의 이름, 치유의 이름 예수'라는 찬양을 조용히 불러드리고, 기도하고 나왔다. 


어린이날 답게 오늘 날씨가 참 좋다. 면회를 마치고 나와서 어머니는 작은 이모님 내외가 모시고 바람을 쐬러 가셨고, 제수씨는 조카를 데리고 시장에 나갔다. 어린이날을 조촐하게 보내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수영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렇게 각자 바람을 쐬며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달랬다. 시원한 봄바람 속에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2013. 5. 6. 월.


점심 면회를 미치고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기 위해서 외래진료실에 가서 기다렸다. 중간에 아버지의 지인들이 전화를 주시고 꼬치꼬치 물으시며 병문안을 오시겠다고 하는데, 현재 아버지는 계속 수면 상태에 계시기 때문에 면회를 받으실 상황이 되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마침내 간호사가 우리를 부른다. 동생과 나이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의사는 이것저것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동생은 어젯밤 폐렴과 항생제에 대하여 열심히 공부했는지 자세하게 물어본다. 감사하게도 오늘은 어제보다는 아버지의 폐렴이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엑스레이 상 하얗게 변해버린 왼쪽 폐도 폐 내부에 물이 찬 것이 아니라 외부의 빈공간을 흉수가 채우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리 염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담당 의사는 앞으로의 치료계획을 대략적으로 말해준다. 그래도 담당 의사가 긍정적으로 설명해 주니 마음에 좀더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근원적인 희망은 사람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다. 하나님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오후에는 집에 돌아와 오전에 벌려 놓은 도배를 마무리 하였다. 지난 겨우내 아버지께서 주무시는 방과  붓글씨를 쓰시는 방구석에 곰팡이가 피었는데, 아버지께서 봄이 되면 부분도배를 하시려고 벽지를 준비를 해 놓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편찮아지시는 바람에 하지 못하고 병원에 들어 가셨다. 곰팡이는 보기에도 나쁘지만 호흡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도배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팔을 걷어 부친다. 곰팡이가 핀 벽지를 칼로 뜯어내고 곰팡이를 닦아 냈다. 곰팡이가 심하게 피었고 벽지도 생각보다 잘 벗겨지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아버지의 폐에 생겨난 염증들도 이 벽지처럼 깨끗하게 제거되기를 기도하며 열심히 벗겨낸다. 그리고 큰 효과는 없겠지만 곰팡이 제거제도 뿌리고 자투리 벽지를 잘라서 붙여 놓으니 깔끔하다. 아내가 도와주고, 중간에 집에 놀러 오신 어머님 친구께서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셔서 기대보다도 더 괜찮다. 깨끗하게 발라진 벽지를 보시고, 어머니는 마음이 시원해지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도 얼른 퇴원하셔서 쾌적한 환경에서 환경에서 지내실 수 있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눕는다.



2013. 5. 7. 화.


오늘은 아버지가 달고 있는 체외순환기 제거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다. 아버지께서 기계의 도움 없이도 호흡하실 수 있으시면 그만큼 회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와 염려가 섞인 마음으로 점심 면회를 갔는데 간절히 바라던 변화가 없다. 아버지께서 테스트를 견디지 못하셔서 체외순환기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실망스러운 소식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변화가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아버지의 손발이 퉁퉁부어 오르고, 손가락과 발가락 끝이 검붉게 변해있다. 혀도 마찬가지고, 거기다 황달까지 와서 눈과 몸이 짙은 노란색으로 변해 있다. 아버지께서 회복되시는 것이 아니라 점차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병원 원무과에서는 중간정산을 독촉하는 문자메시지가 날라온다. 어머니는 이미 아버지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눈치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만약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데려가실 거면 오래 고통하시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다물고 있는 때가 많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이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셨던 때.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이었던 우리 삼 남매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골방에서 셋이서 함께 손을 잡고 무릎을 꿇고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고, 이후에도 몇 번의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지켜주셨다. 그때를 생각하며 다시 간절히 하나님께로 향한다.  지금도 우리 삼 남매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고, 한국과 미국에서 지인들이  기도에 동참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 가정에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운전을 하면서도 TV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을 계속해서 부른다.  



2013. 5. 8. 수. 어버이날.


어버이날에도 불쌍하신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누워계신다. 오늘이 몇일인지도 모른 채. 그 사이 매번 면회 시간 중환자실 앞에서 보이는 보호자들의 얼굴들도 많이 바뀌었다. 환자들이 중환자실을 나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회복되어 일반 병실로 가거나 숨을 거두고 시신이 되어 나가는 경우이다. 아버지는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안 좋아지시고 있는 듯하다. 아들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는데, 아버지의 중한 병환에 비해 내 기도는 너무 약하다. 




2013. 5. 9. 목.


아버지는 나날이 나빠지고 계시다. 원래 폐 외에 다른 장기들은 모두 건강하셨는데, 이젠 심장과 콩팥 등 다른 장기들도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급성 신부전증이 왔으며, 심장에도 물이 차고, 수술을 하지 않은 오른 쪽 폐에도 출혈이 생겼다. 담당 교수가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와서 체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긴박한 상황인가보다. 전공의는 체외순환기를 뗄 수 있도록 폐를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이 자꾸 생겨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오후에 중환자실에서 동생에게 전화가 몇 차례 와서 신장 투석기를 돌리며, 심장에서 물을 빼는 시술도 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리고 밤에는 출혈을 막기 위해서 혈관조영술을 시도할 것인데 성공률은 낮다고 말한다. 이 전화를 받고 동생이 직장에서 일하다 말고 집으로 달려와서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막 시술을 받기 위해 영상시술실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초조히 기다리며 말씀을 읽었다.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함이니이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시편 27:12-14


아버지께서 결국에서 "산 자들의 땅" 천국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뵙게 될 것임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병상에서 내려와 걸어서 병원을 나오시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시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새는 혈관을 막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얼마가 지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침내 환자용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아버지의 침대가 중환자실로 향하는 복도로 각종 기계들을 달고 돌아오고 있다. 지친 얼굴로 함께 오는 담당 교수는 일단 출혈이 의심이 되는 혈관을 막기는 했는데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아버지의 침상과 기계들이 다시 정리 되기를 한 참 기다렸다가 아버지를 잠깐 뵈러 들어갔다. 저녁 면회 때보다도 더 심해서 이젠 얼굴까지 퉁퉁 부어 있으시다. 차마 뵙기가 힘들 정도이다. 시술 결과가 성공적이길 간절히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2013. 5. 10. 금.


어젯밤 혈관조영술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갔다. 아침에 중환자실에 전화를 해보니 아버지의 폐의 출혈은 계속되고 있고, 소변도 조금씩 밖에 나오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가느다란 기대가 큰 낙심으로 바뀌는 일에 아직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침을 먹고 어머니와 장례식에 관해서 논의하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자연장을 하고 싶은데 부산에는 아직 자연장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아서 정말 안타깝다. 


낮에 찾아 뵈니 신장투석도 큰 효과가 없는지 온몸의 부종도 별로 빠지지 않았다. 점심 면회 때에 큰집 식구들이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가 큰 슬픔과 분노 속에서 돌아갔고, 저녁에는 누나가 서울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점심 때 아버지를 담당하는 전공의는 완전히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지만, 저녁 면회 때 담당 교수는 이제 기적을 바라는 것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께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을 불러 드렸는데, 목이 메여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내가 함께 불러 주고, 아내가 목이 메일 때는 내가 불러서 찬송이 끊기지는 않았다. 중환자실에는 악성 눈물 바이러스가 떠돌아 다니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눈물 없이 나올 수가 없다. 


저녁 8시 40분경 전주에 계신 아내의 외삼촌과 외숙모님이 오셔서 동생과 함께 담당 교수를 만났다. 동생은 메이는 목으로 담당 교수에게 수술 전 상담할 때에 수술 후 있을 위험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렇다. 마흔도 되어 보이지 않는 담당 교수는 수술 후 얼마나 입원해야 하나고 묻는 아버지의 질문에 "일주일이면 끝! 항암도 필요없고."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평생 자신에게 관리를 받으며 사셔야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었다. 의사는 자신이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을 거라고 했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동생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그때 교수가 위험이 있다고 살짝 '언급'하기만 했더라도 동생은 아버지를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모시거나 수술 없이 치료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교수는 수술동의서를 받을 때에 전공의가 수술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런데 우리 가족 중에는 아무도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한 적이 없다. 간호사가 찾아 놓은 서류를 보니 아버지 본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수술을 하기 하루 전 날에 입원하셨는데, 그날 밤에 전공의가 찾아가서 설명하고 사인을 받아 간 듯히다. 간호대학 교수이신 외숙모님은 수술 후 사망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따르는 큰 수술을 하면서 수술 전날 밤에야 위험을 설명한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셨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가 수술 후 하루만에 MRSA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신 것은 병원의 관리 소홀이며 폐렴에 대한 대처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고 항의하였다. 아버지가 수술 후 폐렴에 감염된 것은 4월 23일인데, 며칠 전 한 간호사가 폐렴균 규명을 위한 객담 검사와 균배양이 4월 29일과 5월 4일에서야 두 번 실시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의사는 그 균은 중환자실에 많기 때문에, 중환자실에 있으면 MRSA에 감염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중환자실에서 '당연히' MRSA에 감염될 것을 예상하면서 왜 원래 폐기종을 앓고 계시던 고위험군 환자인 아버지를 수술하고 아무런 격리 없이 중환자실에 보내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담당 교수도 얼굴이 빨개지며 우리들의 논리를 반박하며 자신도 사흘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있으며 보호자 다음으로 가슴 아픈 것은 자신이라고 말하였지만, 그 무엇도 원통한 우리를 납득시키거나 3주째 병상에서 사지가 묶이고 기관지가 뚫린 채 고통 받으시는 아버지를 회복시킬수 없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담당 교수가 나를 부르더니 아버지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서, 몇 시간을 못버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집에서 병원까지의 거리가 얼마냐 묻더니 위급하실 때  중환자실에서 전화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혹시나 아버지의 임종을 놓칠까봐 우리 가족은 모두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서 밤을 새운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를 보내 드릴 마음의 준비가 많이 되었다. 동생이 전화로 장례식장을 알아본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크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마가복음 9:26


면회를 온 많은 사람들이 이제 아버지는 가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며 편하게 보내드리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기적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새벽이 깊어 간다. 아니 밤이 깊어 가는 건지 새벽이 깊어 가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