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만 담아 두고 차마 글로 옮기지 못했던 3주일 전의 일기를 오늘에서야 마무리한다. 그동안 이 일기를 쓰지 못했던 건 시간과 힘이 부족해서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용기가 없어서였다. / 2013년 6월 2일. 주일.





2013. 5. 11. 토.


새벽 6시 복도에서 만난 담당교수가 여전히 출혈이 있지만 아버지께서 많이 안정되셔서 당장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집에 와서 자리에 누웠지만 이따금 울리는 전화로 깊이 잠들지 못했다. 새벽에 들은 "많이 안정되셔서"라는 말이 우리에게 한 가닥의 거미줄보다 가늘고 약하며 잘 보이지 않는 희망을 주었지만, 점심 면회 때에 어제보다 더 부은 채 가쁜 숨을 내쉬고 계신 아버지를 보니 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보안요원이 면회시간 종료를 알려서 눈도 제대로 뜨시지 못하는 아버지의 귀에 제수씨가 "아버님 몇 시간 뒤에 다시 올게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바람이 들어간 고무장갑처럼 퉁퉁 부으신 손으로 제수씨의 손을 잡고 놓아 주시지 않는다. 하루에 이십 분씩 두 번 밖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는 중환자실에 계신 것이 너무나 한스럽다. 외로움과 고통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시는 아버지의 손만이라도 계속 잡고 있고 싶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대학 졸업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유학을 하느라 오랫동안 부모님 곁을 떠나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렇게 외롭고 힘든 순간에도 옆에 있어 드릴 수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중환자실을 나오는데 한 보호자가 어떤 의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들린다. "솔직히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습니까?" 또 다시 눈물 바이러스가 우리 가족을 비롯한 중환자실을 드나드는 보호자들을 공격한다. 갈수록 증상이 심하다.


저녁 면회 때 아버지를 뵈니 마지막 호흡을 내쉬실 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내 입으로는 정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담당 간호사에게 '이제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 목이 메여서 말을 잊기가 힘들다. 간신히 눈물을 억제하고 "보호자 중 한두 사람만이라도 계속 옆을 지키면서, 손이라도 잡아 드릴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간호사는 "계속은 어렵지만 정해진 면회 시간 외에 자주 면회시켜 드릴게요."라고 대답한다. 


집에서 가서 저녁을 먹고 밤늦게 다시 병원으로 왔다. 이제는 정말 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불이 꺼진 보호자 대기실에 아내와 단둘이 앉아 면회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진다. 아버지의 육체의 생명은 꺼져가고 있는데, '보호자'인 나에게는 아버지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아들로서도 나는 아버지께 제대로 해드린 게 없다. 그저 고통 속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는 것 밖에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철저히 무력한 아버지만큼이나 나 또한 철저히 무능력하다. 그렇게 어둠 속에 한참 앉아 있는데 중환자실에서 면회 준비가 되었다며 부른다. 눈을 감고 계시는 아버지는 주무시는 건지, 의식이 없으신 건지, 의식은 있으시나 눈이 너무 퉁퉁 부어 눈을 뜨시지 못하시는 건지 알 수 없다. 아내와 함께 그냥 옆에서 서서 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잡아 드린다. 지금까지는 면회를 하며 아버지 앞에서 울지 않고 늘 밝은 목소리로 용기를 드리려고 애썼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메이는 목소리로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 내가 아직 이뤄 드리지 못한 아버지의 바램들 꼭 이뤄 드리고, 언젠가는 아버지의 호 '청천(淸川, 맑은 시냇물)'을 따서 장학사업도 하겠다고 약속드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저희가 꼭 풀어 드릴게요."  



2013. 5. 12. 주일. 


오늘은 마침 어버이주일이다. 주일예배를 갔는데, 어버이의 사랑에 대한 평범한 영상물과 설교가 눈물샘을 자극한다. 누나도 눈물을 훔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데려 가시려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빨리 데려가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점심 면회를 위해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어머니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중환자실이다. 긴급한 일이 생기면 마음 약한 어머니가 아니라 동생에게 전화해 달라고 여러번 부탁해 두었는데도, 병원 중환자실은 다시 어머니 휴대전화로 긴박한 소식을 전한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단다. 곧 이런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연락을 받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다른 가족들은 말이 없어지고, 운전대를 잡은 난 엑셀을 밟는다. 


급히 중환자실로 달려가니 동생 내외와 제수씨의 친정 부모님이 먼저 와 있다. 사돈 어르신들께서 면회를 위해서 멀리서 달려 오신 것이다. 아버지의 병상 주변에 많은 의료진들이 모여 있다. 이미 심장이 또 한 번 멎었고, 심폐소생술과 약으로 간신히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심정지가 계속 되면 다시 심장이 돌아오게 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정리가 되면 가족을 다시 부르겠다는 의료진의 말에 이젠 더 이상 눈을 뜨지 못하시는 아버지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저희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씀을 드리고 대기실로 나왔다.


그새 점심 면회시간이 되어 다른 보호자들이 중환자실로 우르르 들어갔다가 눈물을 훔치며 하나둘 나왔다. 보호자들도 거의 다 돌아가버린 대기실에 앉아 우리 가족은 호출을 기다린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아버지께서 다시 눈을 뜨시고 우리와 눈을 맞추실 수 있기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이땅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걸까? 누나는 어머니 곁을 지키고, 제수씨는 침통한 얼굴로 앉아 계신 사돈 어른들과 함께 앉아 있다. 동생은 홀로 복도를 서성거리고, 아내는 눈물을 닦으며 기도하고 있다. 난 성경을 찾으며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한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을 때에 중환자실 간호사가 급히 우리를 찾는다. 서둘러 들어가보니 아버지 위에 인턴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올라가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 담당 교수는 벌써 여섯 번째 심정지가 왔다며 더 이상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난 불가항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온가족은 무너져 내린다. 수술 전엔 "일주일이면 끝!"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던 의사는, 이젠 낮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사망 선고를 내린다. "십삼 시 이십사 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26절)


눈물로 가득 찬 임종예배를 드린다. 아버지께서 하나님 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이 믿음, 우리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이 소망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큰 슬픔에 빠진 우리를 건져올리고, 하늘로 가신 아버지와 남아 있는 우리 가족을 하나로 묶어 준다. "아버지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평소 아버지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섬겼던 막내가 흐느끼며 아버지를 안아 드린다. 남편의 차가운 얼굴을 매만지시며 작별 인사를 하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 언제나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아버지에게 친근하게 대했던 딸이 "아빠, 사랑해요."라며 고백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자신들을 참 예뻐하셨던 시아버지를 잃은 며느리들의 눈물과 울음소리가 참 애처롭다.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내 중한 짐을 벗어 버렸네

죄중에 다시 방황할 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가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이 땅에서 맑은 시냇물처럼 살기를 원하시던 사랑하는 아버지

청천(淸川)이시여 이제는 모든 고통이 끝났으니 

저 생명 시냇가에서 편안히 쉬소서…….





짧은 임종예배를 마치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뵙고 나온 후, 누나가 아버지께서 평소 지으시던 것과 같은 미소를 짓고 계신 것 같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께서 2009년 수첩에 적어 놓으신 다음과 같은 글귀를 아내가 발견했다.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 혼자만 울고 있었고

당신 주위 모든 사람들은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 혼자만 미소 짓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울도록 그런 인생을 사십시오.


- 고(故) 김수환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