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26. 주일.


가슴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깨었다. 꿈에 아버지와 함께 병원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아버지를 담당했던 의사가 그 옆을 지나갔고, 그를 본 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셨다. 의사는 매우 당황해했고, 난 아버지를 진정시켜 드리려고 하다가 깨어났다. 너무 생생했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서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참 동안 마음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꿈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오늘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기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서둘러야 한다. 


어머니와 함께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고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부산에서는 미국까지 직항이 없기 때문에 인천으로 가서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동생 가족이 김해공항까지 배웅을 나와서 한국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라며 점심을 사준다. 약 5년 전 처음 유학을 나올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중에 아버지도 계셨다. 내가 탑승을 위해 들어갈 때 뒤에서 슬쩍 눈물을 닦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리고 지난 1월 내가 비자 갱신을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 왔을 때 아버지는 다시 살짝 젖은 눈으로 나를 맞아 주셨다. 그래 또 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그때도 아버지는 눈물을 훔치셨다.



설 전날 밤

 

 

이젠 아버지의 키를 훨씬 넘어버린

아들에 대한 대견함인가.

아들의 대학 합격 발표를 듣고

평소엔 손 한 번 잡지 않던

아들 몸뚱아리 와락 끌어 안으며

잘했다 잘했다 외엔

더 이상 말 잇지 못 하시던 아버지.

 

어릴 적

지붕에 메주만 매어 달아도

쓰러질 것 같던 찌들린 집안살림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가난한

촌사람의 설움이

지난 50년 동안 가슴 아팠던 절절한 사연이

모두 씻기어 눈물로 녹아 내리고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도

어느덧 깊게 패여진

눈가의 주름살 사이로

눈물 흘러 내리는데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 아들의 가슴에 되살아나

잠 못 이루고 괜히 뒤척거리는

오늘은

자면 눈썹 하얗게 센다는

///

 

1994년 구정


아주 오래 전에 쓴 시인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잘못된 부분이 있다. '경상도 사내'였던 아버지는 평소에 자녀들 손을 잡아 주시는 것은 거의 하시지 않으셨지만, 한 번씩 약주를 하고 오시면 우리 남매들에게 다정하게 말씀하시며 애정 표현을 많이 하시곤 했다. 사실 난 스물 살까지는 아버지에 대하여 불만도 있었고, 아버지와 그리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아주 엄하신 편이었기 때문에 눈치를 많이 보기도 했고, 허락을 받을 일이 있을 때는 거의 어머니를 통해서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가 대학  1학년 때 "네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해 준 교회 선배 성훈이 형과의 대화를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점점 이해하게 되었고, 또 이해가 깊어지자 아버지에 대한 사랑도 점점 깊어져 갔다. 그러나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난 지금까지도 따라잡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결코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며 어디로 가야할까?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대문 앞에 홀로 서서 차를 타고 떠나는 우리 부부를 향해 손을 흔드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물론 동생 가족이 가까이에서 최선을 다해 모시긴 하겠지만, 어머니를 홀로 남겨 두고 떠나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신 것처럼, 혹시 어머니도 갑자기 돌아가시게 될까 두렵다. 또한 공항에서 헤어진 동생의 어깨가 참 무거워 보인다. 몸을 비행기에 싣고 태평양을 건너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한국에 있다. 한 달 전 아버지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며 한국으로 건너갔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돌아 가니 마음이 참 복잡하다. 그때와 상황은 다르지만 이번에도 역시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가 없다. 노트북을 꺼내서 지난 일들을 정리한다. 병원과의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한다. 아마도 꿈에서 느낀 아버지의 분노는 아직도 바다에 버리지 못한 나의 분노일 것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