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6. 금.


새벽 네 시경, 이메일이 왔다는 알림 소리에 잠이 깼다.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고 폰을 열어 확인해보니 한국에 있는 사촌 형으로부터 영어 번역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거절할 수 없기도 하지만, 도와 주고 싶기도 하다. 더구나 최근에 형수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멀리 있다는 핑계로 가보지도 못했지 않은가. 그리고 두어 달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친척들과 마음의 정이 더 끈끈해진 차이기도 하다. 며칠 내로 해주겠다 답장하고 다시 눈을 붙였다. 밀린 일들이 많아 한두 시간만 더 자려했는데 일어나 보니 벌써 여덟 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뭔가 도움을 요청한다. 내 영어 실력이 아내보다 조금 더 나은 탓에, 미국 생활을 하며 영어를 사용해야 할 일들은 거의 다 내 차지다. 가라 앉은 목소리로 전화기를 붙잡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었더니, 전화상담원이 내가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 듣겠다고 한다.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설명했더니 다행히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다. 


이런 일들은 종종 발생한다. 간단한 일들도 있지만,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하는 일들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내가 뭔가 도움을 요청해와서 일기 쓰기를 잠깐 멈추고 먼저 그 일을 처리해 주었다.) 그래서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들, 특히 공부가 뒤로 밀릴 때가 많다. 이번 여름이 특히 그렇다. 이럴 때는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고, 속이 상할 때도 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는 아내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잘 못하면서 유독 아내에게, 까칠하게 대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아내는 날 돕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의 5년을 타국에서 유학생의 아내로 보내고 있는데, 사소한 도움을 요청하는 아내의 맘을 불편하게 하는 내가 참 속이 좁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 동행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기도 하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인생인데 말이다. 사실 아내는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돕는 인생이란 게 무엇인지를 잘 실천하는 사람이다. 마흔이 되었지만 아직 인생에 대해 배울 것이 더 많고, 내 자신에게도 다듬어야 할 모난 부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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