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미가서 6:6~8, 마태복음 5:6 

제목 :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

2013년 7월 28일

 

1.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표현 그대로 배와 등이 달라붙는 것과 같은 배고픔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또는 목이 탄다는 표현처럼 물을 마시지 못해서 목구멍이 타는 것과 같은 갈증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마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겪어 보신 분들은 그런 배고픔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신 분들 중에서도 정말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말라서 괴로웠던 기억이 한두 번 정도는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설교를 경청하시면서 그 때 허기와 갈증으로 허덕였던 느낌을 떠올려 보신다면 오늘 말씀을 더 잘 이해하시고,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인 미가서에서도 극도의 허기와 갈증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가서는 현재 심각한 배고픔과 목마름 가운데 있는 사람들 또는 장차 허기와 갈증에 처하게 될 사람들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해 봅시다. 미가서 614-15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항상 속이 빌 것이며 네가 감추어도 보존되지 못하겠고, 보존된 것은 내가 칼에 붙일 것이며, 네가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감람 열매를 밟아도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하리라.(미가 6:14-15)

 

새번역 성경에서는 너희는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을 것이며, 먹어도 허기만 질 것이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각자 앞에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한 번 상상해봅시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각각의 취향에 따라 음식을 한 가지씩 상상력을 통해서 자신 앞에 차려 놓아 보십시오. 저는 제 앞에 제 아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차려 놓겠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으면 아마도 가장 먼저 즐거운 것은 눈일 것 같습니다. 정말 맛있게 보이는 음식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지 않습니까? 그리고 눈과 거의 동시에 맛있는 음식 냄새 또한 우리의 코를 즐겁게 합니다. 그 다음으로 음식을 입 안에 넣어서 씹으면 우리의 혀를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씹는 그 느낌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여러분 충분히 상상이 되시지요?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느끼는 즐거움은 포만감일 것입니다. 음식이 부족하면 아쉽고, 너무 많이 먹으면 부담스럽지만, 적당한 양의 음식을 먹으면 뱃속에서 포만감이 느껴져서 긴장도 풀리고 마음도 아주 편해지지요.

 

이렇게 음식을 먹으면 당연히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음식을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허기질 것이다라고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셔도 목이 마를 지경인데, 곡식을 거두지 못해서 먹을 것도 없고, 포도주를 빚어도 마시지 못할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심한 허기와 갈증에 처하게 될 것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배고픔과 목마름 가운데 있게 되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 지는 눈앞의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신가요? 공중을 나는 참새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신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먹을 것을 주시고, 바위에서 물이 솟게 하여 마실 물을 주신 분이 아니시던가요? 그런 하나님이 왜 이렇게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시는 것일까요?

 

2. 지도자들의 악행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죄악은 구체적으로 어떤 죄악일까요? 구체적인 내용을 몇 구절 함께 찾아봅시다.

 

부패한 경제 지도자들

먼저 조금 전에 읽었던 미가서 614절의 바로 앞부분인 610-12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땅에 널리 퍼진 경제적인 불의를 고발하십니다.

 

악인의 집에 아직도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그 부자들은 강포가 가득하였고, 그 주민들은 거짓을 말하니, 그 혀가 입에서 거짓되도다. (미가 6:10-12)

 

여기서 에바는 곡식과 같은 고체를 계량하는 도구입니다. 우리 민족이 사용해온 과 비슷한 용도인데 약 22리터의 곡식을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한 상인들은 에바를 정해진 크기보다 작게 만들거나, 곡물을 계량하는 저울추를 가볍게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속여 불의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일부 주유소에서 주유기를 조작하여 실제보다 적은 양의 Gas를 공급하거나, 유사 휘발유를 섞어서 부정한 이득을 취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래서 가진 자는 더 부유해지고,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경제적인 불균형과 불의가 당시 이스라엘 땅에 팽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그 부자들은 강포(强暴)가 가득하였다고 개탄하시고 있습니다.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미가서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더 많은 이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넘어가서 미가서 21-3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 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미가서 2:1-3)

 

여기서 하나님께서 고발하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리의 좀도둑들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들은 밤에 잠자리에 누워서 머릿속에 악한 계획을 세웠다가,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당장 그 계획을 실현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강탈할 정도로 손에 힘이 있는 사람, 곧 권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예로 딱 맞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지요. 열왕기상 21에 보면 아합이 나봇이란 사람의 포도원을 매우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나봇이 자기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아합이 집으로 돌아가 매우 근심했지요. 그것을 본 그의 아내 이세벨이 다음날 음모를 꾸며서 나봇이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모함하였습니다. 그렇게 이세벨과 아합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비록 아합과 이세벨은 시대적으로 미가 선지자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들입니다만, 미가의 시대에도 이런 식으로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의 재산을 강탈하는 악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다른 이들의 지갑을 터는 좀도둑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큰 도둑들입니다. 미가서 3장에서는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죄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먼저 31-3에서는 정치지도자들의 거짓과 만행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가 3:1-3)

 

굳이 성경의 가르침을 들이대지 않아도, 세상적인 도덕과 법에서도 정치 지도자들이 정의롭게 행하며, 백성을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불의했으며, 백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백성을 착취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서 사용한 표현이 얼마나 신랄한지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먹고 그 뼈를 다져서 냄비와 솥에 담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존중하고 고귀하게 여기며,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섬긴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재, 희생물 정도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통치 속에서 인권은 철저히 유리되고, 많은 이들이 학대와 착취로 고통당했습니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

여러분 이럴 때 종교 지도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에서 떠나서 악행을 저지를 때 종교지도자들은 과연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들의 정책과 통치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이 너무나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곧 선지자들까지도 이런 부패와 타락에 동참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미가서 35절 상반부를 읽어봅시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미가 3:5)

 

이 선지자들은, 자신에게 뇌물을 주는 자의 편을 들고, 자신에게 아무런 경제적 유익도 줄 수 없는 자에게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지자들은, 만약 이들을 선지자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들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었을까요? 이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자들, 또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선지자들은 소위 권력의 시녀들이 되어서 부패한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축복하고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저주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또 다른 종교지도자 그룹인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였고, 재판관들도 뇌물을 받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계속해서 미가서 39-12을 함께 읽어 봅시다.

 

야곱 족속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 곧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원하노니 이 말을 들을지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에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 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하시더라. (미가 3:9-12)

 

여기서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부패하고 타락한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권력자들의 죄악의 심각성

그런데 이런 권력을 가진 도둑들, 타락한 지도자들이 더 무서운 이유는 이들은 법적으로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없는 좀도둑들은 불법적으로 악을 행하고, 그래서 붙잡히면 법에 의해서 판결을 받고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아합과 이세벨의 경우에서와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악행을 합법적으로 만듭니다. 그들에게는 법을 만들과 시행하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요. 악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또는 자신들에게 정치 헌금을 하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법을 만들고, 고치고, 자신들의 이익에 방해가 되는 법은 휴지통에 던져 버립니다. 오늘날 국회에서 많은 법들이 만들어지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슨 법이 만들어지고 폐기 되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이들, 타락한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합법정의란 그들의 이익이나 탐욕에 부합하는 것들이 합법이며, 정의입니다. 반대로 그들에게 불법부정의란 그들의 이익과 탐욕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 불법이며, 부정의입니다. 하지만 힘이 없는 이들은 법적으로’, 또는 정의의 이름으로판결 받고 억울하게 처벌을 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나봇이 죽은 죄목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신성모독죄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나봇과 아합, 이세벨 중에 과연 누가 하나님을 모독했을까요? 사실 하나님을 모독한 것은 나봇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힘없는 자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더러운 이득을 챙긴 아합과 이세벨이었지요.

 

지도자들의 죄악의 확장

지도자들의 죄는 자신들만 타락하고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공동체와 나라에 그 영향을 끼친다는 데에서 더욱 심각합니다. 이제 미가서 71-4로 넘어가 봅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는 경건하고 정직한 자가 모두 끊어졌다고 탄식하고 계십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미가 7:1-4)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지도자들 중에 가장 정직한 자도 찔레 울타리보다도 더 많은 가시를 품고 있으며, 백성들은 모두 형제가 형제에게, 자매가 자매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악을 행하였습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인륜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악행은 연약한 여자와 아이들도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미가 2:8-9). 이제 그들에게는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을 고치고, 상처를 싸맬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3. 정의, 사랑, 겸손이 사라지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소위 종교적인 죄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죄라는 점들입니다. 물론 미가서 5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우상숭배에 대한 지적이 있습니다.[각주:1]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가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의 목록은 대부분 그들이 행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악행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설교 본문 미가서 66-8에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도 이런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미가서 6:6-8을 다시 한 번 들으시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6-8)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더러운 죄악이 용서를 받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일 년 된 정갈한 송아지를 들고 나아오라고 요구하십니까? 아닙니다. 수천 마리의 숫양이나 수만 통의 고운 기름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까? 아닙니다. 우리 몸의 열매를, 우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맏아들을, 자녀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면 주님께서 흡족해 하십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수많은 액수의 헌금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가장 아끼는 소유물을 헌물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존중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과 겸손에 관해서는 교회에서 많이 강조합니다. 그러나 정의 또는 공의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지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정의에 대한 우리 영혼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서 미가서를 1장부터 7장까지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인해, 그들 가운데 흘러넘치는 부정의와 불법과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는지를 느껴보십시오. 미가 선지자가 얼마나 가슴을 치며 호소하고 있는지를 들어 보십시오. 미가서 18-9에서 미가 선지자는 자신이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미가 1:8-9)

 

18, 짧은 한 절에 애통한다또는 애곡한다는 말이 4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이토록 애통하는 이유는 자신의 몸이 아프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이 재산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기 때문도 아니고, 간절히 바라던 일에 실패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 정의와 공의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교만이 판을 치기 때문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사람들

여러분,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비단 미가 선지자의 시대에만 해당합니까? 정의와 공의가 권력자의 손에 의해서 왜곡되는 일이 과거의 일입니까?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가 부패하고 타락한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책, 또는 역사책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까? 북한이나 중동, 저 먼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일입니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우리의 조국인 남한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눈을 열고 살펴본다면 지금, 미국과 남한에서도 지도자들과 권력자들에 의한 불법과 부정의가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애플을 비롯한 많은 거대 기업들이 버진 아일랜드와 같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 거액을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부자들이 행하는 경제적 불법과 부정의 전반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워싱턴의 유대계 단체(AIPAC)는 미국의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들,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학살하는 것을 묵과하고 심지어 엄청난 경제적 지원까지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국가기관이 국민이 부여한 권력과 재정을 가지고 선거에 개입하고서도 이를 숨기고 거짓으로만 일관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 등의 국가에서 원자력 마피아라고 불리는 원자력 관련 기업과 학자, 기술자들은 원자력 발전이 인류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아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에게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는지를 숨기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속여 가며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한데도,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의 교회 안에서 높은 울타리를 치고 기득권을 놓고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목회자들은 교회 위에 제왕적으로 군림하려고 하면서 사회의 불법과 부정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정치인들에 압력을 넣자는 캠페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국 땅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동성애자들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자연적인 법을 거스르고, 가정 제도를 왜곡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현재 이들 동성애자들보다 더 세상에 더 큰 피해를 입히는 존재는 자신과 자신의 속한 정당, 그리고 자신을 지지하는 이익단체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입니다. 이라크 전쟁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이라크의 군인과 민간인은 물론 미국의 군인들도 수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되었던 핵무기는 이라크에서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지요. 결국엔 무기제조 업자들의 로비와 궤계,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부패한 정치인들이 수많은 생명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 관련 법 철회를 위해서 서명 운동하고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넣던 그 때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몇 년 전 교회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서 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삭발까지 하며 투쟁을 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팔복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태복음 56)

 

미가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음식으로 배를 불리고, 많은 포도주로 목을 축였지만, 그들에게는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육체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주셔서, 의에 굶주리도록, 의에 목마르도록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일 우리의 육체적인 배부름, 개인적인 안일과 편안함에 만족하여, 이 세상의 정의에 대한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육체가 배고프고 목마르도록 만드실 지도 모릅니다. 더 늦기 전에 정의에 배고파야 합니다. 공의에 목말라야 합니다. 사랑을 간절히 찾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세상에서 걸어야 합니다. 그러한 허기를 주시기를, 목이 타는 갈증을 주시도록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1. “네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내가 또 네 아세라 목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빼버리고 네 성읍들을 멸할 것이며, 내가 또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셨느니라.” (미가 5:12-1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