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



그는 어린 시절 얼굴을 뺏겼다

이미 얼굴을 뺏긴 비딱한 형들이

그의 얼굴을 공처럼 차고 놀다가

잘 자라라고 낄낄거리며

도봉산 어두운 산기슭에 심었다

그때부터 그의 얼굴은 자라지 않았다

몇 년 후 고아원을 벗어나도

산 그림자는 늘 그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러던 그의 얼굴이 세 번 변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아들의 얼굴이 되었고

아내를 만나고 남편의 얼굴이 되었으며

딸을 만나고 아빠의 얼굴이 되었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변한다

어느새 눈물로 하얘진 억새가 자라고

바람이 지나가는 오솔길들이 생긴다

아무도 모르게 꿈꾸는 낮달이 뜬다


그는 이제 또 누구를 만나 

누구의 얼굴이 될까?


201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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