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4장 22-33절.


사회가 불안하고 불확실할수록 사람들은 보수적이고 근본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도 보수 세력이 득세하는 듯하다. 안정과 확실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불안정과 불확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안정과 확실함이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다. 잔잔한 파도 위에서 안정적으로 항해하는 듯하다가도, 바람이 거세지고 폭풍우가 몰려 오면 배는 금세 정신 없이 요동한다. 바다 위에서 안정과 확실함이란 영구적인 것도, 근원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럴 땐 베드로처럼 불확실성을 과감히 직면하고, 흔들리는 배를 떠나 바다 위로 발을 내딛는 급진적인 용기와 믿음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비록 그는 중도에 두려움에 물에 빠지기는 했지만, '유령처럼' 물 위를 걸어 오는 주님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물 위를 걸어오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초청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가 주님의 손을 잡고 다시 배에 올랐을 때 비로서 폭풍이 그치고 '안정과 평화'가 임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안정과 평화는 "나다(It is I)."(마14:27)라고 말씀하시며 다가오시는 주님의 '스스로 나타냄(self-revelation)'을 주목하고 받아들일 때 경험할 수 있다.


참된 안정을 원한다면, 불안과 어둠을 직면하자. 부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불확실하게도 '유령처럼' 보이는 주님이라 할지라도 그분께 질문하자. 거센 파도와 폭풍 소리 속에서도 명료하게 들리는 그분의 음성에 귀를 열자. 그리고 급진적인 용기를 가지고 그분의 초청에 응하자. 폭풍 중에 두려워하는 베드로를 향해 물 위로 걸어 오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초청을 나에게 향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그분이 내미신 손을 잡을 때, 그분과 함께 배에 오를 때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서 참된 평안과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바다 위에서 주님과 손을 잡고 하늘로 날아가서나 바다 위를 달려 사라지지 않고, 다시 배로, 곧 두려워하며 위기 속에 있던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주님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폭풍 이는 밤바다 위의 배처럼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요동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2013.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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