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학원 수업 과제로 아래의 책의 일부를 번역하였다. 이글은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The Inner Experience에 관한 윌리엄 쉐넌의 해설과 요약의 일부분이다. 번역이 서투르지만 수도원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관상 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지금은 책의 일부만 번역하여 올리지만, 이 책 전부가 번역되어 정식 출간될 날이 오길 기대한다.

William H. Shannon, "Ch.5 The Inner Experience" in Thomas Merton's Paradise Journey(Cincinnati, OH: St. Anthony Messenger, 1981), 143-47.


세상 속에서의 관상 생활

Contemplative Life in the World


      수도원에서 사는 수사는 관상적인 추구에 있어서, 관상에 맞게 조정된 제도적 조직의 지원을 받는다. 그는 또한 고독의 분위기 속에 있게 되는데, 그것은 얼마간 최소한은 세속 생활의 압박들과 혼란들로부터 그를 지켜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살면서] 내면 생활에 열심인 평신도는 영적 추구에 도움이 되는 조직도, 분위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그가 초보적인 기도 생활을 즐기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끝없는 투쟁을 기꺼이 직면해야한다. 그것은 세상의 영(spirit)에 그를 넘겨주고, 하나님의 영에 대한 민감함을 무디게 만드는 집단적인 압박으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 번째는 세상과의 접촉과 세속적 관심에의 종속을 끊음으로써 그의 생활에서의 갈등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쁨과 위로, 명성과 성공을 향한 요구를 줄이는 것과 상대적으로 빈곤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과 초연함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로 그 투쟁은 잔존하는 갈등들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갈등들은, 곧 소음과 동요, 시간의 부족, 그리고 세속 정신과의 지속적인 접촉이다. 그 세속 정신은 사방에서 우리를 집어 삼키는 듯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세속 정신으로부터 결코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평신도는 어떤 종류의 조직을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비형식적인 조직이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비슷한 의지를 가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도록 할 것이다. 아마도 관상에 진정으로 관심있는 사제의 도움도 함께 있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관상적 공동체와 접촉할 것이다. 머튼은 관상적인 시토회나 카르투지오회에 속한 제3회(Third Order)의 가능성을 마음에 그린다. 이와 같은 평신도 그룹은 그들의 구성원들에게 서적들과 회의들, 영적 지도를 공급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짧은 기간 동안 기도와 고독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갈만한 시골의 조용한 장소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조직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영적 성장에 본질적인 조용한 분위기와 고독 또한 창출할 필요도 있다. 머튼은 이 목표를 향해서 세 가지 안을 제공한다. 나는 독자들이 그의 제안들이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지 여부를 곰곰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먼저, 내면 생활에 관심이 있는 평신도는 반드시 살 장소와 종사할 직업을 추구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그것은 그들에게 고독을 위한 기회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어떤 경제적 희생을 수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생각하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은 시골이나 조그마한 마을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생기는 상대적 빈곤은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준의 생활 기준을 지키기 위한 냉혹한 투쟁으로부터 그들을 자유하게 해 줄 것이다. 직업에 관해서는 아마도 모든 사람이 산림관리원이나 등대지기, 또는 야간 경비원의 생활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머튼은 질문한다. “농사를 짓는 일에 잘못된 일이 뭐가 있는가?” 우리는 일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때에 머튼의 제안이 순진하고 비현실적이지는 않은지 반드시 물어 보아야만 한다. 분명히 그가 진술한 기본 원칙들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의 예들은 수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실제적이거나 심지어 가능한 것으로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아마도 독자들은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열려져 있는 어떤 장소와 직업이 관상적인 생활방식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숙고하기 원할 것이다.

     두 번째로 그들은 아마도 그 날의 조용한 시간들을 즐기기 위해서, 자신들의 매일의 활동계획을 다시 정리하기를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 시간들을 가치 있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이른 아침의 시간들은 당신이 고독의 평화를 맛볼 수 있도록 전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 준다. 새벽녘은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신비한 관상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시작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생활의 특징이 되어야만 하는 지속적인 내면의 영적 갱신을 상징화하는 데에 아주 적합하다.

     세 번째로 그들은 주일을 관상의 날로 지키기 위해서 특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주일은 부활의 신비가 있는 날이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것, 특별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관상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그저 한 주의 쉬는 날만인 것은 아니다. 주일은 세속 시간의 다른 끊임없는 라운드로 들어가는 “신성한 영원으로부터 나오는 빛의 발산(a burst of light out of a sacred eternity)”(133)이다. 

     우리는 주일에는 일하는 것과 성급하게 뛰어다니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월요일에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을 차리고, 한 주의 다른 육 일을 채우고 있는 세속적인 일에서 비교적 의미없는 부분을 깨닫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주일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의 만족스러움을 맛볼 수 있다. 그 평화는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일을 그곳으로 향하게 맞춘다면, 남은 한 주를 여과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주일은 우리의 일이 적절하게 방향지워질 때 일주일 전체를 여과하는 평화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134).

     네 번째로 내면 생활을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평신도는 반드시 세상에서 수사가 되기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그의 기도 생활은 순수한 관상이 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머튼이 “가면 쓴 관상가(masked contemplative)”라고 부른 것이 되는 데에 만족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능동적인 선과 선한 일들은 반드시 필수적으로 그의 “관상가”로서의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든지, 아니면 어떤 직장의 사원이든지, 또는 그의 나라의 시민이든지 간에 그의 삶의 상황에서 의무들을 반드시 신실하게 감당해야만 한다. 기혼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그들의 결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그들의 관상을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의 배우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은 하나님과 그분과의 일치를 향한 열망의 상징이다. 그리스 교부들은 타락 이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문자적으로 한 몸이었으며, 하나의 단일한 존재였다고 믿었다. 타락이 그들을 이후로 영원히 둘로 나누었으며, 성적인 사랑은 그 잃어버린 연합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와 결혼하고, 그 자신의 인격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성적인 연합은 성육신 안에서 효력있는, 인류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의 상징이지만 덧없고 불완전하다. 기혼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비록 희미하고 불완전하게나마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완성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상적인 영성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신비에 뿌리박혀야 하고 거기에 중심을 둬야 한다.



관상 생활의 미래

The Future of the Contemplative Life


   The Inner Experience의 마지막 장에서 머튼은 오늘날의 세상에서의 관상 생활의 미래에 관하여 논의한다. 오늘날의 관상은 단순히 세상을 향한 의무를 회피하는 주관적인 평화로의 물러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관상가는 결국은 세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관상가는 반드시 그의 물러남 안에서 그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독특한 공헌을 배워야 한다.

     관상가는 그저 자신을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시켜서 다른 이들이 살기 위해 투쟁할 때에 묵상하기 위해 떠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관상가들은 자신들 위 “공중에 폭격기가 벌떼처럼 모여드는 때에도”(143), 기도 가운데 깊이 들어가기 위해 세상과 그의 투쟁을 잊을 수 없다. 관상가는 연합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진정한 관상가들은 반드시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의 보통 활동들로부터 분리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외적 생활에 빠져 있는 한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는 내적 중심을 깊은 생각과 고독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관상은 영구적으로 물러나 있는 생활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관상가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덜 관심을 가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확히 그들이 관상가들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더욱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발생하는 일들에 그저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실제 이슈에 보다 더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진정한 마음의 순수함(true purity of heart)을 성취했다고 하면,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실재로 간주하는 외적 혼란에 덜 연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하고(real)” “실제적인(actual)”것을 보다 영적으로 파악할 것이며, 영구적이고, 인간적이며 참으로 영적인 가치들을 보다 깊이 감상할 것이다. 

     관상가가 세상에 이바지하는 공헌은 정치과학 또는 경제학 또는 어떤 다른 특정 분야에서 솜씨있는 전문가의 공헌과는 다를 것이다. 오히려 그 자신의 존재 안에서 전체성을 이루고, 통합된 사람, 그리고 전체성의 직관과 다른이들과의 연합을 전달하기를 추구하는 사람과 같은 형태의 공헌이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깊이 실제적인 것과 접촉하고 있으며, 그 자신의 시대의 이성(Logos)에 조화되어 있고, 사람들의 가장 깊은 고통들을 향한 동정과 그들의 가장 실현 가능한 희망들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연합, 곧 주님의 파루시아(the Parousia of the Lord)에서의 모든 것들의 최종적인 연합을 향하여 움직이는 인간성의 관상적인 관점을 통해서이다. 그는 반드시 수동적으로만 연합을 기대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그 자신의 창조적인 자유를 가지고 연합이 일어나도록 능동적으로 도와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기술들과 능력들로 자신을 신격화하려는 프로메테우스식의 투쟁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겸손하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자신의 창조적인 사랑으로 자유롭게 협력하는 것이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참된 부르심,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에로의 부르심을 성취하도록 이끌 것이다”(145)는 것을 깨달을 정도록 충분히 현명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관상가는 동시대인들에게 인간의 자유로 향한 통찰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 사람들은 해방과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추구함으로써 더 깊은 노예 상태로 빠지는 비극 속에 있다. 관상가는 자유는 우리 안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 박고 있음을 가르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자유에 동참할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로와지는 것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한 투쟁과 우리 자신의 욕구에 의해 지배받는 노예 상태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참되고 자유로운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우리의 거짓되고, 조작된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타락 이전의 낙원에서의 아담과 하와와 같이,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함께 자유로운 존재들로서 걸을 수가 있다. 저녁에 부는 시원한 산들바람 속에서 말이다.




Inner Experience : Notes on Contemplation

저자
Merton, Thomas/ Shannon, William H. (EDT)/ Shannon 지음
출판사
Harpercollins | 2004-06-01 출간
카테고리
인문/사회
책소개
A final work by the late Trappist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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