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5:8 

제목 : 정결한 마음 

주후 2009년 8월 8일


1. 앗차!

제가 한국에서 교회를 섬길 때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맡은 사역 중의 하나는 주일저녁예배 전에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찬양팀에서 드럼과 기타 등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이 사정이 있어 한꺼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잘 치지는 못하지만 저라도 기타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기타를 가지고 평소보다 좀 빨리 교회에 와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절대 늦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저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아내는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차를 몰아 교회로 달려왔습니다. 한편 저는 교회에서 시계를 보며 아내가 기타를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교회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시간에 맞추려고 신경을 쓰다가 기타를 빠뜨리고 왔어요.”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아주 열심히 준비해서 무언가를 준비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경험은 없으십니까? 물건을 사러 가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을 빠뜨리고 간 경우는 없으십니까?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빠뜨린 경험이 아마 한두 번쯤은 다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매주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그들이 십일조와 각종 종교적 의무들을 열심히 행하고 있지만, 율법의 본질인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꾸짖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율법의 전문가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었지만, 그것이 행위일 뿐 진작 율법의 본질은 버렸다는 말씀이지요. 그리고 에베소 교회 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하여 각종 논쟁과 다툼이 있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것을 비단 성경 속 초대교회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도 아이러니하게 ‘말씀을 가지고’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5절 말씀입니다. 

딤전 1:5.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이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본질적인 목적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냥 감정적인 어떤 상태가 아니라, 특별히 세 가지 덕목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청결한 마음, (2)선한 양심, (3)거짓 없는 믿음입니다. 나무도 자라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흙과 물과 햇볕이 필요합니다. 그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주 주일, 또는 새벽기도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배우는 목적은 그저 하늘나라 출석부에 도장을 찍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교인들과의 친교모임에 동참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매주 우리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말씀을 듣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고, 우리가 그 사랑 안에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거짓 없는 믿음을 우리 안에 키워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때에, 그리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정직하게 질문해봅시다. 나는 이 세 가지 덕목 곧,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 그리고 진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 노력은 고사하고, 이 세 가지가 내 안에 자라나기를 전혀 바라고 있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그 세 가지 중 청결한 마음에 대하여 보다 깊이 듣기를 원합니다. 


2. 마음이 청결한 자는?

여러분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보통 마음이라고 하면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내면의 어떤 심리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의미하는 마음은 그저 심리적인 기능을 하는 인간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은 사람의 기억, 감정, 생각, 그리고 의지가 활동하는 인간의 존재의 가장 깊은 내적 중심입니다. 사람의 외적인 말과 행동도 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사진기를 생각해봅시다. 선명하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카메라 렌즈입니다. 만약 사진기 렌즈에 먼지나 얼룩이 묻어 있다면, 사진에도 그 먼지나 얼룩이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정결하지 못하고, 죄나 부정적인 감정의 얼룩이 묻어 있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에도 자연히 그 부정적인 것들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고, 어떤 구체적인 형체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맑은 물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바닷물이나 계곡 또는 맑은 샘물을 상상해봅시다. 그 물이 맑다는 것은 그 안에 물을 더럽히는 다른 오염물질이나 쓰레기가 들어있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물이 더럽다는 것은 바다에 기름이 유출되었거나 갖가지 쓰레기나 폐수 등이 물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마음을 오염시키는 불순물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말 간단하지요?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죄의 소원

먼저, 죄입니다. 죄의 소원입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짓는 죄는 쉽게 깨닫습니다. 어떤 도덕이나 윤리, 규범에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예의에 어긋난 행동, 또는 거짓말 등을 하게 되면, 보통 대부분의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잘못을 행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짓는 죄는 잘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죄로도 잘 여기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비록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하지만, 그를 향해 욕설이나 험담을 하지 않아. 오히려 항상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하지. 이만하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르게 살고 있는 거라구.’ 그러나 굳이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미 마음에 악한 생각이나 감정을 품으면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성경은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며, 남을 마음으로 미워한 자는 이미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다른 이들에 대해서 정중하게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에 나쁜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죄로 더러워져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자기 마음속의 미움과 질투심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손으로 동생 아벨을 쳐죽였고, 다윗은 자기 마음속에 음욕이 일어났을 때에 그것을 정결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으로 밧세바와 간음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지요. 이처럼 마음속에 숨겨진 은밀한 죄는 우리의 마음을 치명적으로 더럽히고, 나아가 우리의 삶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파괴합니다. 


(2) 두 마음

다음으로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것은 ‘두 마음’입니다. 모든 분들이 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우리교회는 지난 두어 달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야고보서를 공부하였습니다. 그중 야고보서 4장 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이 말씀은 바꾸어 말하면 두 마음을 품으면 마음이 더럽혀진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두 마음은 무엇입니까? 

요즘 한국 드라마 중에 “두 아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한 남자가 바람이 나서 10여년을 같이 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새로 아내로 맞이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두 아내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일부일처제인 나라에서 한 남자에게 아내가 둘일 수는 없지요. 그래서 그 드라마에는 좋은 내용이 별로 안 나옵니다. 드라마 스토리에는 갈등과 아픔, 상처, 그리고 다툼이 가득합니다. 두 마음도 마찬 가지입니다. 두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나의 욕심을 함께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과 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이 공존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두 아내가 공존하지 못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은 공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21절 에서 주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시지요.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 마음에는 항상 내적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정결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정결한 마음이란 두 마음이 아닌 한 마음입니다. 정결한 마음이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나의 소원으로 삼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이란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한 것처럼 무화과나무에 잎이 마르고, 포도열매가 없으며, 우리에 가축이 없어도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순전한 마음입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지금 나의 마음은 얼마나 정결합니까? 내 안에는 마음을 더럽히는 은밀한 죄와 두 마음이 전혀 없이 깨끗하십니까? 사실 저도 이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아주 긍정적으로 대답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정결한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요?


3. 어떻게 하면 마음의 깨끗함을 얻을 수 있는가?

(1)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마음이 깨끗해지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관심과 무감각입니다. 일단 먹고 사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깨끗한지 더럽혀져 있는지에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설령 자신의 마음에 소위 말해서 어떤 일로 인해 양심을 가책을 느낀다고 해도 매일 매일의 급한 일에 그것을 그냥 무시하거나, 마음 한 구석에 내팽겨쳐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정결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것들에 비해 우선순위는 아주 낮아져 있습니다. 이렇게 정결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마음은 마음의 문을 꼭 닫아놓는 것과 같아서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와 더러운 죄와 다른 마음들을 치우시도록 하지 못하게 합니다. 앞서 설교를 시작하며 말씀 드린 것과 같이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정작 중요한 신앙의 본질, 그리고 삶의 본질은 빠뜨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지갑을 갖고 가지 않았음에도 마트에서 카트에다 열심히 물건을 주워 담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경우 아무리 내가 발품을 팔아서 좋은 물건들을 카트에 주워담았다고 해도 그 물건들은 결코 내 것이 되지 못합니다.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건들은 계산대 너머로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오직 몸만 나와야 하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통해 다윗은 마음의 정결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강성한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많은 나라들을 정복했지만 정작 그 마음의 정결함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로 인해 자기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고 그는 그의 나라의 통치권을 일시적으로 잃고 도망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시편 51편 10절에서 하나님께 무엇보다 정결한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는 것은 다윗이 그의 삶에서 뼈저린 실패를 통해 마음의 정결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뒤늦게 후회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합니다. 


(2) 두 번째로 마음의 정결함을 얻는 길은 사막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사막의 교부들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후 4세기에 메마른 사막으로 나아가 살면서 기도하고, 금식을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사막으로 나아간 이유는 마음의 정결함을 찾아서입니다. 사막은 세상의 도시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이지요. 사막의 교부들은 메마른 사막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음의 순수함을 얻어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도 마음의 순수함을 얻기 위해서 도시를 버리고 지리적인 사막으로 가야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20세기의 영성가 토머스 머튼은 사막은 우리 안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막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인간적인 지원과 도움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마음의 장소가 바로 사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사막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내가 의지하는 다른 모든 것들, 나의 건강, 지식, 재물, 능력, 경험, 다른 이들과의 관계 등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막은 자신의 욕망, 불안, 상처, 죄의 소원, 거짓 자아와 만나는 곳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의 금언록을 읽어 보면 특히 그들이 사막에서 악한 영들의 유혹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우리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날 때,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 생각, 욕망들이 정체를 드러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들이 밝히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사막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정화시킬 때에 우리는 마음의 정결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라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드라마틱하게 개입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책들과 설교, 간증 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가 어려움과 외로움 가운데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셔서 우리 삶 가운데 기적을 행하시고 우리를 고통 가운데서 구해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쉽게 실망하고 다시 사막을 벗어나 도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내가 쓰레기통에 버렸던 나의 경험과 능력, 지식과 재물, 업적과 사람들의 평가 등을 다시 꺼내다가 그것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우리가 두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무일도 하시지 않고, 아무런 도움을 주시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때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막 속에서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절망과 어둠이 가득차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시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온갖 은밀한 죄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철저하게 벗겨내시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마음의 정결함이란, 세탁기와 세제로 빨래해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그런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인고(忍苦)의 시간을 거쳐 얻어지는 정금과 같은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은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8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 여러분들도 하나님이 보고 싶으십니까? 혹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복인지 실감이 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지는 않는지요?  상식적으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은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이시므로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눈으로 볼 수는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종말에 천국에서는 그분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마주 볼 날이 올 것입니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도 신비적으로 기도 가운데 그 분을 볼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의 심령 속에서 그들을 볼 수 있으며, 자연과 역사 가운데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현세에서 보는 하나님은 희미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누구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가졌던 모세도,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등만 보고 그분의 얼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34장 10절은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명기 5장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백성들과도 얼굴을 마주보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이 물리적으로 하나님과 백성들이 얼굴을 마주대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모세와 아주 깊은 친밀함을 누리셨다는 표현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종말에 천국에서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고 볼 수 있겠지만, 이 땅에서는 실존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임재 가운데서 그분을 뵐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은 그리스도인에게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복이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며 사시길 원하십니까? 정말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과 같은 깊은 친밀함을 누리고 싶으십니까? 정말 주님이 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킵니다. 아무리 우리 삶이 바쁘고 힘들더라고, 아무리 할 일이 많더라도, 마음의 정결함만은 빠뜨리지 맙시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합시다. 내 마음 속의 은밀한 죄가 철저하게 발견 되서 씻겨 지고, 내 속에 있는 불순물과 같은 두 마음이 사라지도록 하나님께 매일매일 나 자신을 온전히 맡깁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라고 말한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의 한 구절처럼, 날마다 주님의 말씀의 거울, 양심의 거울에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봅시다. 하나님은 잠언 4:23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잠언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