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늦가을의 어느 화창한 날

학교를 떠난 선배가 다시 찾아 왔다.

공부를 접고 새로운 길을 찾아 간 그가

휴일을 맞아 고향 같은 동네로 와서

사람들을 모아 밥을 사고 커피를 사고,

여전히 길게 늘어진 가방끈을 맨 채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사는 이들은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경험담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봄, 자목련이 예언처럼 피어나던 날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미련도 없이 낯선 곳으로 떠났던 그.

귀밑머리 새치와 눈가 주름은 여전한데

어딘가 모르게 그가 깊어져 가고 있다

어느 깊은 시골 뒷마당 장독 속에서

정좌하고 묵상에 잠긴 된장처럼.


날씨는 더없이 맑고 바람은 시원하고

얘기는 즐거워 웃음이 그치지 않는데

내일은 짙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각자의 시간과 가는 길은 다르지만

모두가 구름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

누구는 가방끈을 놓고, 누구는 쥐고

날마다 눈을 뜨고, 눈을 감지만

보장된 미래도, 부르는 소리도 없어.

어둡고 갑갑한 세상 이야기로

한숨과 한탄이 이따금 새어나오지만

그래도 파도처럼 어깨를 건 

도반들과 함께 창밖의 나무만 봐도

얼굴에 슬며시 번지는 아이 같은 미소.



20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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