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 종기와 전염병



우리 식구 엉덩이 

붙일 조그만 집 얻으려고

여기저기 빚을 얻어 

새집에 들어 갔는데 

나만 모르게 엉덩이에 

붉은 종기가 볼록


하루하루 불어나는 이자처럼

조금씩 자라더니 

크림빵처럼 노오랗게 익어

방바닥에 편히 앉을 수가 없네


가뜩이나 사는 게 팍팍해서

그 옛날 할머니 젖가슴처럼

심장이 조금씩 쪼그라드는

듣도 보도 못한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네


요즘 전염병은 신식이라

낙타 대신 고속열차 타고

재빠르게 퍼져서

마침내 멀고 먼 우리 동네까지


대범하신 나랏님과 달리

소심한 동네사람들은 

재빨리 마스크를 사다 나르고

경계의 눈초리로 서로를 훑으며

여기저기 수군수군


집에 들어 앉아 있는 것도

밖에 나가 숨쉬는 것도 

불안하고 꺼림칙한

웃음 잃은 사람들

희망에 종기 난

불쌍한 사람들


2015. 6. 8.

'시와 수필 > 멸치 똥-습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식  (0) 2015.07.10
미스터 랜디  (0) 2015.05.21
햇볕을 사랑하는 어머니  (0)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