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똥



시인이 되고픈 헛된 욕망은

과감하게 우체통에 버렸지만

시는 여전히 끊지 못해서

오늘도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향기처럼 퍼지는 시구를 음미한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처럼

가장 팔팔한 청춘을

어둔 방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가방끈을 늘리는 데 다 써버리고

벌써 중년에 접어들고 나니

숭고한 소명과 열정은

냉장고 안에서 잊혀진 

차가운 냄비가 되고 말았다


밥벌이도 하지 못하는

한량이 하는 일이란

기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입에 넣다 뱉어 버릴 

쓸모 없는 멸치 똥만

톡톡 따다 모으는 것이구나


아, 사랑은 어떻게 나를

다시 뜨겁게 하여

달리는 증기기관차처럼

오늘도 재봉틀을 돌리게 할까

바느질로 이것저것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는 

정 많은 장모님처럼

슬픈 사람 눈물 닦아주는

손수건 한 장 만들게 할까 


201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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