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토마스 머튼의 《냉전 편지》(Cold War Letters)에 관한 글 한 편을 잡지사에 보냈습니다. 그러고 몇 시간 뒤,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종(敎宗)이 의회 연설에서 머튼을 언급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이 큰 이슈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미국이 갖고 있는 위대한 유산으로 네 명의 인물을 언급했는데, 그들은 에이브러험 링컨,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도로시 데이, 그리고 토마스 머튼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머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머튼은 무엇보다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시대의 확신들에 도전하였고, 영혼들과 교회를 위한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그는 또한 대화의 사람이었으며, 사람들과 종교들 사이의 평화를 고무시키는 사람(prompter)이었습니다." (2015. 9. 24. 미국의회 연설)


이렇게 교종이 머튼을 언급한 것은 50여 년 전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냉전 시대였던 1960년대 초반에, 머튼은 여러 잡지들에 (대표적으로 도로시 데이가 이끌던 '가톨릭 노동자'가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글들을 열정적으로 기고하였고, 독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반향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런데 머튼이 속한 트라피스트회의 당시 지도자들은 머튼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1962년 4월에는 수도회의 총장이 머튼에게 더 이상 전쟁과 평화에 관해서는 출판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머튼의 《냉전 편지》와 《기독교 이후 시대의 평화》(Peace in the Post-Christian Ear, 국내 번역서 제목 : 머튼의 평화론)는 정식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등사되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읽혔습니다. 그리고 머튼의 사후 2000년 대 초반에서야 정식으로 출판되었지요. 그런데 이제 교종이 머튼을 평화를 촉진시키는 사람으로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머튼이 "자신의 시대의 확신들에 도전하였"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인 같습니다. 머튼의 시대는 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 특히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선과 악의 구분이 확실했습니다. '선'은 자본주의이고, '악'은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악한 공산주의에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당시 공산주의 진영의 최고 강대국이었던 러시아를 선제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일어났습니다. 호전론자들은 전쟁이 곧 평화를 위한 길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이기기 위해서는 핵무기 사용도 불사해야 한다는 사고가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고,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로 비난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확신'에 머튼이 도전한 것이지요.


제가 쓴 원고에서도 언급했지만, 머튼의 《냉전 편지》에는 머튼이 도로시 데이에게 보낸 편지가 실려 있는데, 거기서 그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악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하여 그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끔찍한 위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곧,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아니라, '육체를 입은 악마'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평화를 언급하는 것의 모순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영화 〈어벤져스 2〉의 예고편에 나오는 울트론의 대사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인류의 멸종이다." 머튼은 적을 핵무기로 대량학살함으로써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은 철저히 비기독교적이며, 비인간적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정치가와 선동가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통념'을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올바른 이성과 분별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머튼은 〈평화를 위한 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위협하는 무기들을 우리가 지배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과학을 전쟁과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와 풍요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우리의 힘에 걸맞는 분별력을, 우리의 과학에 걸맞는 지혜를, 우리의 부와 능력에 걸맞는 자비심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의 진지한 의지를 축복하시어 모든 민족과 사람들이 정의와 자유와 영속적인 평화로 향하는 길을 따라 우정을 나누며 가도록 도울 수 있게 하소서." (《침묵 속에 만남》, 성바오로, 175-177).


이 기도는 1962년 4월 12일 고난주간 수요일에 미국 하원에서 드려졌습니다. 당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극도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 속에서 냉전(cold war)이 실제 무력을 사용하는 열전(hot war)으로 번지지 않은 것은, 머튼과 같은 사상가의 외침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 후 토마스 머튼의 이름이 미국 의회에서 다시 언급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사상이 오늘날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머튼이 태어난 지 10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 여전히 세계는 전쟁의 위기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수많은 난민과 희생자를 양산하는 시리아 내전은 세계 열강들의 대리전을 수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까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에서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무력 충돌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군비확장과 평화헌법 개정 추진으로 인해 전쟁의 긴장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 무기는 머튼의 시대보다 더욱 '위대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행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도전해야 할 "시대의 확신들"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교회와 영혼들을 위해서 열어야 할 "새로운 지평"은 무엇일까요? 머튼의 영성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더욱 깊어 지는 날입니다.


2015.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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