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 한국실천신학회 학술대회 (2017년 5월 27일, 연세대학교)에서 한 논평을 옮겨 놓는다. 논문을 쓰는 것보다 논평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고 조심스럽다. 논평은 좋은 글(대상)의 진가가 잘 나타나도록 해야 하는데, 논평 원고를 보내고 나니 논문 속에 담긴 좋은 내용들을 너무 간단하고 투박하게 소개한 것 같다. 반성.


김경은의 “기독교 화해사역을 위한 화해공동체 연구: 

북아일랜드 코리밀라 공동체(Corrymeela Community)를 중심으로”에 대한 논찬


     김경은 박사는 ‘화해의 영성’ 또는 ‘화해의 사역’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수년간 연구해왔다. 그래서 이번 연구는 발표자의 화해에 대한 천착이 맺은 또 하나의 결실이자, 앞선 연구들을 바탕으로 화해의 영성과 사역의 공동체적 측면에 대한 논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귀한 작업이다. 구체적으로 앞선 논문들은 “하나님의 화해사역의 대리자로서의 공동체”[각주:1]와 “화해사역의 궁극적 목적”으로서의 “새로운 공동체의 창조”[각주:2]의 필요성을 논하였는데, 이번 연구는 코리밀라 공동체라는 실제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서 한국에서의 화해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이 연구는 오늘날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화해’라는 주제와 기독교 영성이 형성되고 실천되는 ‘공동체’라는 장을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흥미롭다. 또한 연구자가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공동체를 문서로만 조사하지 않고, 현장방문을 통한 질적 연구(qualitative research)를 수행함으로써 코리밀라의 현황과 영성을 직접 확인하였다는 사실은 이 연구의 가치를 더욱 높여 준다.

     이 연구의 핵심은 결론에 담긴 다음과 같은 문장들 속에 요약되어 있다. “상호이해와 용납, 진실과 정의, 용서와 회개, 개방과 환대, 배려와 긍휼의 마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넓은 정체성으로 타자를 포용하는 화해의 영성이 필요하다. 또한 ‘화해사역의 대리자’로서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화해의 영성을 화해를 배우는 공간이 필요하다. …… 화해의 영성을 형성하고 고양하여 일상 속의 삶의 방식이 화해가 되어야 한다.” 발표자는 이러한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먼저 기독교 화해 사역의 필요성과 토대를 논한 뒤에, 왜 실천신학에서 화해 사역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코리밀라 공동체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분석하였다. 발표자가 비교적 친절하고 세밀하게 글을 풀어 나갔기 때문에, 크게 비평할 내용은 없지만, 토론을 위해 몇 가지 사소한 제안들과 질문들을 드린다. 

     (1) 먼저, 발표자는 화해의 영성을 화해 사역의 토대로 제시하며 영성과 사역을 구별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으로 인해 영성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인간 내면의 영적인 측면으로만 한정되어 버린 듯하다. 발표자에 의하면, “화해의 영적인 면이 화해의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화해의 영성은 관계의 변형에 대한 열망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되어 모든 방향에서의 관계성 회복과 재창조에 대한 의식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의 화해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제자도의 표현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의 방향에서 회복과 새로운 관계 형성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화해의 영성은 화해에 대한 내적 열망과 의식이고, 화해 사역은 외적 실천이다. 화해의 영성에 대한 이러한 분리된 이해는 이전의 연구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많은 영성학자들이 인용하는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Schneiders)의 유명한 정의에 의하면, 영성은 궁극적인 가치를 향한 자기 초월은 물론, 그것을 의식적으로 삶으로 통합하는 경험까지 포함한다.[각주:3] 또한 기독교 영성사에서도 베네딕트 영성이나 예수회 영성처럼 내적 경험과 외적 경험(실천)이 통합된 형태의 영성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영성의 통합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화해의 외적 실천 또한 화해의 영성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것은 슈나이더스의 개념이 모든 연구자들이 받아들여야하는 보편적인 정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영성을 내적 열망이나 의식으로 국한시킴으로써 외적 실천과 구별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영성과 일상의 삶이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이러한 분리, 또는 이원론적 사고로 인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발표자가 화해의 영성을 화해 사역의 토대로 제시할 때에, 그 방점은 이 둘의 분리가 아니라 연결에 찍혀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화해의 영성을 실천을 포함하는 통합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둘 사이의 연결이 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발표자가 “화해의 영성”이라는 용어로 지칭하는 개념들은 문맥에 따라 ‘의식’ 또는 ‘열망’ 등과 같은 단어들로 치환해도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발표자에 의하면, “코리밀라의 영성은 창조의 선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찾는 켈트영성을 기본으로 한다. 켈트영성은 모든 창조세계 안에서 하나님과 소통하며 일상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영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화해의 영성의 개념을 화해 사역을 포괄하는 통합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발표자가 화해 공동체의 모델로 제시한 코리밀라 공동체의 영성과도 더 잘 공명을 이룰 것이며, 실천과 분리될 수 없는 ‘화해’라는 주제를 논하는 데에 훨씬 더 적합할 것이라 생각된다.

     (2) 다음으로 발표자는 화해의 능력은 배움을 통해 길러지기 때문에, 화해의 영성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바르게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때의 배움은 단순히 지성적인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배움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큰 정체성을 품는 “의식의 전환”은 물론 “상대에 대한 적대적 정서를 감소시키는 것”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발표자가 말하는 배움은, 데이비드 스티븐스(David Stevens)의 표현을 빌리면, “생각(mind)과 마음(heart)의 회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발표자는 이러한 전인적 배움을 위한 공간의 모델로서 코리밀라 공동체를 소개한다. 

     구체적으로 발표자는 코리밀라 공동체의 역사와 지도자들의 정신과 그리고 코리밀라가 영성 센터로서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사역들, 곧 프로그램들을 열거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분량의 제약 때문에) 참여자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각과 마음의 회심을 얻어 화해를 배우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표자는 “화해를 위해서는 용서와 더불어 회개가 중요하다.”라고 언급하였지만, 코리밀라의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가해자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돕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영성 센터 이전에 생활 공동체로서의 코리밀라의 삶의 방식과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코리밀라 사례 연구의 많은 부분이 역사에 대한 서술이 아니면, 주로 추상적·도덕적 원리의 선언과, 다양한 프로그램 목록들에 할당되어져 있기 때문에, 물론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코리밀라의 모델이 한국적 상황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 가능한지에 대한 해석학적 전유(appropriation)가 결론에서만 매우 간략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서두에서 제시한 사례의 연구를 통해 현실에의 적용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연구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발표자가 열거한 코리밀라 프로그램들 중에 만약 화해의 영성 함양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 한두 가지를 예로 들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코리밀라의 영성훈련과 화해의 영성의 상관성을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적 상황에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영성 센터’의 프로그램들 외에, 혹시 코리밀라 공동체의 일상생활이 공동체 구성원들의 화해의 영성 형성과 화해 사역 실천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추가적으로 소개해 줄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화해 공동체를 구상하는 데에 보다 구체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3) 발표자는 시작 부분에서 기독교 화해사역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사회에 기여해야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서는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Peace Agreement) 이후에 코리밀라의 화해 사역이 “화해의 사회적 면보다 영적인 면을 위한 사역으로” 방황 전환한 것을 지적하면서, “사회의 갈등 구조가 개선되면서 교회의 사회적 영역에의 직접 참여보다는 영성 고양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사역에 집중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기독교화해사역에 요구되는 일로 보인다.”라며 서두와 다른 초점을 가진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하였다. 이 지점에서 마지막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면 북아일랜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의 변화와 코리밀라 사역의 방향 전환이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갈등이 극심하지 않은가? 그리고 갈등 해소와 화해를 위한 기독교인들의 직접적인 기여가 필요하지는 않은가? 만약 기독교의 화해 사역이 사회적 구조와 갈등에 대한 문제들은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에만 맡겨두고 소위 영적인 면에만 집중한다면, 교회와 세상, 성과 속, 영과 육의 이원화를 조장 또는 방치하는 것이 되지는 않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사회적 화해에 초점을 둔 1998년 이전의 코리밀라의 사역에 대한 소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마지막으로, ‘화해공동체’라는 비교적 생소한 개념과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아일랜드의 코리밀라 공동체를 소개함으로써, 한국에서의 화해의 영성 함양을 위한 실천신학적 토대를 놓아가시는 김경은 박사께 감사드리며, 논찬을 갈음한다.

  1. 김경은, “화해사역을 위한 화해의 영성,” 「신학과 실천」 36(2013/9), 448. [본문으로]
  2. 김경은, “사회적 화해를 위한 영성지도의 긍정적 역할,” 「신학과 실천」 43(2015/2), 271. [본문으로]
  3. 슈나이더스는 영성을 “한 사람이 자신이 인지하는 궁극적 가치의 지평을 향해 자기초월을 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Sandra Schneiders, “Approaches to the Study of Christian Spirituality,” in The Blackwell Companion to Christian Spirituality, ed. Arthur Holder (Malden, MA: Bleackwell, 2005), 1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