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오랜 골목길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아스팔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그러자 SNS에는 여행을 떠나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저 역시, 지금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며 좁아진 마음을 넓히고 싶은 바람에 슬슬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늘 오가는 길목들만 매일 지나다닐 뿐입니다. 이런 저의 갑갑한 처지에 대한 핑계와 위로거리로 삼고자 몇 년 전 읽었던 신경림 시인의 시 〈정릉에서 서른해를〉을 다시 펴듭니다.  

 

© 한경숙, "내 사랑 창신동, 다시 그곳으로"

 이 시는 “정릉에”와 “서른해”라는 비슷한 소리가 반복되며 리듬을 형성하는 재미있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처럼 시인은 정릉에서 자그마치 서른 해를 살았다고 말합니다. 결혼하고 정릉에서 자리 잡아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에, “눈에 익지 않은 거리가 없고 / 길들지 않은 골목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시인에게 있어서 정릉은 매우 익숙한 동네입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매일 아침 열정을 가지고 동네를 골목골목 돌아다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아침

이 골목 저 거리를 훑고 다닌다

어제까지 못 보던 것 새로 볼 것 같아서

 

- 신경림, 〈정릉에서 서른해를〉 부분


   이처럼 시인은 어제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 보기 위해서 매일 아침 부지런히 익숙한 동네 골목길들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 눈에 익지 않은 거리, 길들지 않은 골목이 없다는 말과는 모순되지요. 낯선 외지가 아니라 서른 해 동안 다닌 낯익은 동네 골목에서 새로운 것을 볼 가능성은 사실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안 맞는 이런 시적 모순은 이 시가 실린 시집, 《사진관집 이층》(2014)에 함께 수록된 다른 작품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에서

내가 볼 수 없었던 많은 것을

어쩌면 어머니가 보고 갔다는 걸 비로소 안다.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서른해 동안 어머니가 오간 길은 이곳뿐이지만


- 신경림,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부분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정릉에서 서른 해를 살면서 오간 길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가 전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시인은 어머님이 다니시던 길을 걸으면서,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자신보다도 평생 동네를 오가신 어머니께서 훨씬 많은 것을 보고 가셨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 한경숙, "서촌, 그곳은 이제 내 그림 속에"


   이쯤 되면, 도대체 시인이 말하는 ‘새로운 것’, 또는 ‘많은 것’이라는 볼 거리들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시간적으로 새롭거나 양적으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원래 ‘보다’라는 말은 ‘깨닫다’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까요. 시인은 이렇게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를 부지런히 다녀도 자신이 새로 본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 위해서 다음 날 다시 활기차게 집을 나섭니다. 오늘의 깨달음은 시간을 넘어서 어제의 일을 새롭게 보게도 해주고, 새로운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게도 해주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다시 

활기차게 집을 나온다

입때까지 못 보던 것 무언가

어제 보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게 무언지 오늘

찾아야겠다 생각하면서

정릉에서 서른해를 넘게 살면서

 

- 신경림, 〈정릉에서 서른해를〉 부분



© 한경숙, "내사랑 창신동,리나가 잡혀있는 이상한 나라로"(2017)

   그래서 시인에게는 익숙한 길도 ‘새로운 길’입니다. 이런 점에서 방금 소개한 신경림 시인의 시들을 읽다가 보면, 자연스레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이라고 노래한 밝고 힘찬 시가 생각납니다. 실제로 신경림은 6·25 다음 해, 전쟁과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에 틀어 박혀 있던 시절, 윤동주의 〈새로운 길〉을 읽고 마을을 돌아다닐 힘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6·25 다음해 봄, 마을마다 장티푸스가 돌아 뒷산에 매일처럼 새 무덤이 생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이 시를 읽고 나니 문득 마을과 마을 앞으로 난 길과 길가에 핀 민들레와 길가의 미루나무에서 우짖는 까치가 밝고 환하게만 느껴졌다. 전쟁과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가 죽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밖으로 나다니게 되었고 활기를 되찾았다. …… 이 시를 읽으면서 신작로와 논둑길을 가면 절로 힘이 났고, 길가의 작은 들풀이며 돌멩이 하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 신경림,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서울: 우리교육, 1998), 214-215.



   간혹 TV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만 틀어 박혀 지내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윤동주의 시를 읽고, 신경림의 시를 읽고, 방문을 열고 나와 골목길을 걸으며, 들풀과 돌멩이에서도 아름다움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힘과 열정을 조금이라도 얻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남들 다 가는’ 여행 한 번 제대로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매일 걷는 길에서도 새로운 것,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건이 되어서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 새로운 것을 보러 가는 이들에게도 지식과 정보보다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오시라고 골목길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합니다.


Magazine Hub 51 (2017년 7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