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돌돌



봄이 되면 얼굴 만나 인사드릴게요. ^^”

! 봄이 오긴 오겠죠? ㅎㅎ

 

입춘이 며칠 지난 어느 날, 지인과 SNS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입춘이 지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봄이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겨울 날씨가 혹독하여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이러한 진리를 누군가 믿든지 믿지 않든지 말입니다.


언젠가 집 근처의 강변을 산책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어도 몸이 잔뜩 움츠러드는 추운 날이었는데, 앙상한 벚꽃나무 가지에 아무도 모르게 새순이 돋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너무나 긴 겨울 속에서 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가의 벚꽃나무는 봄을 잊지 않았고, 새봄이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게지요. 이처럼 꽃들과 나무들은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봄을 느끼나 봅니다. 그리고 시인들도 그런 꽃과 나무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길고 매서운 겨울과 같은 시기를 보내면서도 봄을 희망하고 노래하는 사람, 그리고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자신의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노래하는 사람이 봄의 시인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 ,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란 배추꽃,

 

삼동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여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처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1연에서 시인은 겨우내 얼었던 시내가 봄을 맞아 스르르 녹아 흐르는 것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돌돌 흐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싱그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입니다. 우리 몸의 경우, 혈관을 통해 흐르는 피가 온몸에 산소와 영양분, 곧 생명을 공급해 주지요. 이처럼 시인은 시내가 대지(大地) 속에 혈관처럼 흘러 온 땅에 봄의 생명력을 전달해 준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이렇게 시냇물이 흘러 시냇가의 언덕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예쁜 봄꽃들이 피어납니다.


흥미롭게도 윤동주 시인은 이 작품에서 새봄을 맞아 소생하는 자연을 묘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봄을 맞은 자연과 동화된 자신의 시적 경험을 표현합니다. 봄은 마치 시냇물처럼 자신의 혈관을 통해 흐르고, 자신은 푸른 풀포기처럼 피어난다는 것이지요. 또한 3연에서는 종달새처럼 즐겁게 이랑에서 솟구쳐 올라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인이 봄의 생명력과 생동감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대자연과 동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삼동을 참아 왔기 때문입니다. ‘삼동(三冬)’은 석 달의 겨울, 또는 세 해의 겨울을 뜻하는 단어인데, 그만큼 겨울이 길고 지내기가 힘들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삼동, 곧 오랜 겨울을 인내하며 견디어 왔기 때문에 새봄이 그만큼 반갑고 즐거운 것이지요. 나아가 그는 자연세계와 동화되어 봄이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자신이 풀처럼 파릇파릇 피어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에서 삼동’, 곧 춥고 긴 겨울과 같은 시기를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지라도, 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잘 견디어 낸다면 새봄을 맞아 풀포기처럼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때인 19426월 무렵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는 정치·사회적으로 일본강점기 말이라는 매우 혹독하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머지않아 봄, 곧 해방이 오리라는 것을 온몸으로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 연에 보면 시인은 푸른 하늘로 완전히 날아 오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아래에서 아른아른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계절에 빗대어 말하면, 이제 막 초봄이 오기 시작한 것일 뿐 아직 완연한 봄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지요. 너무나 안타깝게도 윤동주 시인은 우리 민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새봄, 곧 광복이 오기 불과 6개월 전에 일본 후쿠오카의 차가운 감방에서 요절하였지만, 그가 부른 봄의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삼동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돌돌 흐르고 있습니다.


Magazine Hub 59 (2018년 3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