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으로 드리는 기도 : 내가 깨어나

시편 139편

 

〈레주렉시(Resurrexi)는 시편 139편의 구절들을 편집해서 만든 오래된 라틴어 찬송이자 기도다. 누가 언제 이 찬송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7-8세기에 비잔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고대 로만 챈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문서상으로는 《트렌트 사본》(Trent codices)으로 불리는 15세기 악보집에 이 곡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가톨릭에서는 이 챈트를 부활절 미사 때 입당송으로 부르고 있고, 다른 전통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아래에 이 곡의 라틴어 가사와 한국어 번역을 소개한다. 참고로, 시편 139편 18절 하반절을 대부분의 번역본에서는 “내가 깰 때에도(when I awake)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로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의 의미는 내가 깨어났다. 그리고(I awake and ...) 또는 내가 일어났다. 그리고(I am risen and...)에 더 가깝다. 그래서 〈레주렉시는 시편 139편을 부활의 관점에서 읽고 노래한다. 

 

Resurrexi 

 

(The Introit for Easter Day)

Resurrexi, et adhuc tecum sum, alleluia.

posuisti super me manum tuam, alleluia.

mirabilis facta est scientia tua, alleluia.

 

Domine, probasti me, et cognovisti me;

tu cognovisti sessionem meam, et resurrectionem meam.

 

제가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알렐루야!

당신께서 제게 안수하셨습니다, 알렐루야!

당신의 지식은 가장 기이합니다, 알렐루야!

 

오, 주님, 당신은 저를 찾으시고, 저를 아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앉는 것도 아시고, 제가 일어나는 것도 아십니다.

 

from 시편 139:18, 5-6, 1-2.

 

상상력을 좀 더하여 가사를 묵상하면, 주님께서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나를 찾아 내시어, 내 위에 손을 얹으심으로 나를 깨우신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어, 나와 언제나 함께 하시는 장면이 떠오른다. 깜깜한 무덤 속에 누워 있는데, 무덤을 막은 커다란 돌이 굴려지고, 빛이 들어와 흑암이 사라지며, 그 빛이 죽어 있던 나를 깨운다. 주님의 부활 이야기가 나의 부활 이야기가 된다.

 

매일 아침 맞는 새벽은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맞게 될 부활의 새벽을 맛보게 한다. 밤새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가 아침에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 오는 순간, 창을 통해서 빛이 방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 시편 기자의 말을 빌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주님, 지금 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빛이신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신 것을 발견합니다.” 아침 빛은 단지 내 눈으로 들어와 시각적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시는 것이(시 139:5) 직관적으로 인식된다. 이렇게 매일 아침 빛 속에서 나를 깨우시고 현존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때 부활이 그저 먼 미래에 일어날 가능태(可能態)가 아니라, 지금 나를 살리는 현실태(現實態)로 경험된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먼 미래에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다.

 

혹시 지금 내 삶이 흑암 속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는 밤과 낮이 같고, 흑암과 빛이 같아서(시 139:11-12), 흑암 속에 있는 나를 찾아내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기쁘게 노래할 수 있다.

 

여기에 공유하는 영상은 미국 켄터키에 소재한 겟세마니 수도원(The Abbey of Gethsemani)의 수도자들의 노래와 수도원 풍경이 담긴 영상이다. 이곳은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 : 1915-1968)이 살던 곳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풍경들은 수도자들이 부르는 〈레주렉시와 함께 겨울을 이기고 찾아온 봄처럼 죽음을 이기고 찾아오는 부활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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