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교회 청년1부 <로고스>

2004년 12월 4일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거나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사람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나 사상, 가치와 같은 무형의 것에도 애착을 가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우리는 ‘식탐(食貪)’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애착은 우리 삶에 의욕과 활기를 불러 넣어주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는 우리가 주님을 뒤 따라 가는 삶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 그것에 대한 마음이 애착을 넘어서 집착으로 이어지면,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그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영성훈련’ 또는 ‘경건훈련’이 필요하다. ‘영성훈련’의 목적은 바로 “모든 부적합한 애착(inordinate attachment)을 제거하고, 그 후에 자신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개선하는데 있어서 날카로운 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기 위하여 영혼을 준비시키고 대비하는” 데에 있다. 즉, 자기 안의 부적합한 애착을 발견하고,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것이 영성훈련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때에 자신의 애착을 발견한 뒤의 반응에 따라서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세의 영성가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는 그의 책 『영신수련(The Spiritual Exercises)』에서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했다. 첫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애착물을 버리기를 원하나 죽는 순간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둘째 사람은 애착물을 버리려고는 하나 가장 좋은 대안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즉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결단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에게로 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셋째 종류의 사람은 일체의 애착물에서 떠나는 사람이다.


  즉 첫 번째 사람은 애착물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하여서 죽기까지 그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애착물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끝까지 자기 손에 꽉 쥐고 있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우유부단하여 그 애착물을 버리려고는 하지만, 당장 실천하지 못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결단하여 환경을 넘어 헌신된 삶을 살지 못하고, 그저 환경이 변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 사람은 그 즉시 결단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이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당장 모든 집착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에 해당할 것이다. 이럴 때는 자신이 집착하는 것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마음을 두고 있다면 결코 그것에서 떠날 수 없다. 나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세상의 안락과 영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출 때에 과감히 모든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2000년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장차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고 있다. 이 때에 우리의 시선을 더욱 주님께 고정시키자. 그러할 때에 우리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영적 자유를 누리고, 오직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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