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2월입니다. 매년 새 달력을 받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다 보면, 맨 마지막에 나오는 달이 12월이지요. 그래서 ‘마지막 달’이라는 점 때문에 아쉬움이나 조급함, 또는 서글픔이나 회한 등의 감정들로 마음이 복잡해지는 때가 바로 12월입니다.

 

그런데 교회력에서 12월은 마지막 달이 아니라 첫 달입니다. 보통 11월 마지막 주일이나 12월 첫째 주일에 시작되는 대림절(the Advent)이 전례력상 첫 번째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12월은 마지막과 시작이 공존하는 신비한 달입니다.

 

이런 점에서 12월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시기 때문입니다(계 22:13). 논리적으로는 전혀 성립되지 않는 이 문장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험할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탄, 곧 성육신(incarnation)은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시간을 뚫고 인간이 되어, 스스로를 시간과 육체의 한계 속에 가두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처음과 마지막이 공존하며, 신성과 인성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인간인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영원을 누리고(요 3:16), 신의 성품의 참예할 수 있습니다(벧후 1:4).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과 시작이 공존하는 이 신비한 12월에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깊이 생각합시다. 특히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천천히 반복해서 읽고, 깊이 묵상해 봅시다. 깊은 묵상은 우리를 깊은 앎으로 인도하고, 깊은 앎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사랑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곳은 마지막과 처음의 구분이 없어지고, 나와 그분의 구분도 필요가 없어지는 깊은 사랑의 바다입니다. 그곳에 이르면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곳이 고작 얕은 물가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락교회 제2여전도회 월례회보 〈비전〉 2020년 12월호에 실은 권두언을 옮겨 놓는다.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 매우 압축적으로 글을 써서, 읽는 분들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기가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적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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