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13. 수.
 
연일 발생한 올해 스물여섯 번째 장례와, 스물일곱 번째 장례를 마치고 교구 상례부 권사님들과 함께 책방을 겸한 까페에 가서 여유롭게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스물여덟 번째 장례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입관을 가는데, 이어서 스물아홉 번째 장례 소식이 들려왔다. 교구목사의 기도가 부족하여 올해 성도들을 많이 잃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교구 성탄의 밤이 예정되어 있는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그 땅에도 연일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번 성탄은 기뻐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2023. 12. 18. 월.
 
지난 토요일, 남양주에서 새벽 일찍 발인하여 눈길을 달려 춘천안식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화장을 마치고 다시 남양주 영락동산으로 가서 고인을 모셔드렸다. 그렇게 올해 스물아홉 번째 장례를 마치고, 곧바로 교구 성탄의 밤을 위해 교회로 갔다가, 행사가 끝난 뒤 밤에는 다시 서른 번째 장례를 위해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새벽 일찍 발인함으로써 지난 열흘 동안의 연속된 다섯 분의 장례를 모두 마쳤다.
 
그동안 교구 상례부원들과 조가대원들께서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함께 하는 교구 전도사님(김OO 목사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김OO 목사님이 어제 임기를 마치고 사임을 하여서, 마지막 장례는 혼자 갔다. 고인이 등록교인이 아니셔서 이번에는 상례부와 조가대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도 김 목사님이 장례순서지는 준비해 주었다.
 
그는 마지막 주일인 어제 1-5부 예배 시간마다 사임 인사를 하면서도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였다. 하루가 끝나고 종례 후에 김OO 목사님이 준비한 장례순서지를 내밀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울컥하였다. 순서지가 잘 접혀져서 담겨있는 봉투가 마치 작별 선물처럼 느껴졌다. 순서지 1면 교구목사 이름 옆에 그의 이름이 항상 있었는데 비워져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는 지난 일 년 동안 함께 교구를 섬기면서 내가 맡기는 일을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잘 해내었다. 그는 이제 교구전도사의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의엿한 목사님이 되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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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몸을 한껏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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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곡은 어떠세요?” 

 

그녀가 내민 악보에는 “Liebster Jesu, Wir Sind Hier”(BWV 731)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음악에 별다른 조예가 없는 내게는 생소한 곡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해 보았더니 위키피디아에 곡에 대한 설명과 가사가 나와있었다. 재빠르게 훑어보고 대답했다.

 

“네, 권사님, 아주 좋은데요.”

 

필자가 섬기는 영락수련원에는 매주 화요일 낮 11시에 성찬이 포함된 정기예배가 있다. 이른바 ‘화요예배’이다. 보통 매년 3월 첫 주에 시작하여, 여름에 잠시 쉬었다가 11월 마지막주에 마친다. 그 중에서도 한 해의 마지막 화요예배는 좀 특별하게 드린다. 이때가 마침 대림절이 시작되는 즈음이기도 하여 마지막 예배는 ‘떼제 찬양으로 드리는 성탄목장식예배’로 드리고 있다. 올해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서 벌써 성탄목장식예배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

 

봉사자들이 창고에서 성탄 트리를 꺼내어 와서 예배실에 세우는 동안 수련원 반주자와 함께 작년에 사용했던 예배 순서지를 살펴보았다. 떼제 찬양 외에도 올해도 작년처럼 오르간 연주가 한 곡 있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하자, 반주자께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악보를 하나 내밀었다. 바흐의 프렐류드(Prelude)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랑하는 예수님,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곡은 원래 같은 제목을 가진 17세기 루터교 찬송을 편곡한 전주곡이다. 

 

원곡은 토비아스 클라우스니체어(Tobias Clausnitzer)가 1663년에 작시하였고, 그 이듬해에 요한 루돌프 알레(Johann Rudolph Ahle)가 곡을 붙였다. 이후 여러 찬송가집에 실렸으며, 또한 J. S.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곡조를 약간 단순화하여 4성부 합창곡으로 만들기도 하였고(BWV 373), 같은 곡조를 사용하여 코랄 프렐류드(BWV 706, 730, 731)로도 만들었다. 또한 그의 전주곡 모음집(Orgelbüchlein)에도 또 다른 프렐류드(BWV 633)와 변주곡(BWV 634)으로도 실려 있다. 원래 프렐류드가 즉흥 연주곡이었다고는 하지만, 바흐는 이 곡을 왜 그렇게 여러 번 다른 버전으로 연주했을까? 그만큼 원곡의 가사나 곡조가 그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원래 클라우스니체어가 지은 찬송시는 성령의 조명을 위한 기도로서 이 찬송은 주로 예배 시작 때나 설교 전에 불리어졌다고 한다. 독일어 가사를 한국어로 옮기면 이렇다. 

 

1. 

사랑하는 예수님,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님을 듣기 위해.

저희의 마음과 영혼을 이끄소서

기쁨 가득한 하늘의 가르침으로.

그래서 저희가 이 땅으로부터

주님께로 온전히 이끌리게 하소서. 

 

1절에는 이렇게 주님의 말씀 앞에 모여 주께 귀를 기울이니,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깨워 하늘의 가르침으로 이끌어 달라는 간구가 표현되어 있다. 여기에는 주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몸으로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종교개혁 전통의 예배에 나타나는 특징일 것이다.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하고 강론하던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찬을 중심으로 하는 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간주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언어로 예배를 드리던 17세기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이 하늘의 기쁨이 가득한 말씀으로 자신들을 가르치셔서, 주님께로 온전히 이끌어 달라고 간구하였다. 비록 우리는 땅 위에 살고 있지만, 예배는 하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로 온전히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2. 

저희의 지식과 이해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곳에는 당신의 성령의 손이 아직

명징한 빛으로 저희를 채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생각하고, 행하고, 쓰십시오.

주께서 이 일을 저희 안에서 하셔야 합니다.

 

이어서 2절에는 성령의 조명을 위한 구체적인 간구가 담겨져 있다. 먼저 시인은 우리의 지식과 이해가 가장 깊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다. 그 어둠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은 주님의 진리의 광선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 밤을 깨뜨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성령이시다. 그러나 거기에는 주님의 영이 채우시는 밝고 깨끗한 빛이 아직 없다. 아직 성령께서는 빛을 채워주지 않고 계시다. 이렇게 어둠이 깊으니 빛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진다. 그래서 시인은 주님께 촉구한다. 선한 일을 생각하고 행하여 달라고. 이러한 정황 가운데서 선한 일이 무엇인지는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하다. 그것은 주님의 빛으로 내면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이 일을 저희 안에서 하셔야 합니다.”라고 촉구한다.

 

3. 

오,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빛 중의 빛이신 주님,

저희 모두를 준비시켜 주소서.

저희의 마음과 입과 귀를 열어 주소서.

주 예수님, 

저희의 기도와 간구와 찬양을 들으시어

잘 되게 하소서.

 

드디어 3절에서 가장 밝고 찬란한 빛이 나타난다. 그 빛은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빛 중의 빛” 또는 “빛에서 나오신 빛”(Licht vom Licht)이신 주님이시다. 빛이신 주님의 등장과 더불어 찬송시는 이제 정점에 이른다. 이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은 주님께 이제 우리 모두를 준비시켜 달라고 청한다. 아마도 이것은 말씀을 들을 준비를 뜻할 것이다. 비유적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을 준비(마 25:1-13; 계 19:7)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시작할 때 불렀던 주님의 이름을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외친다. “주 예수님”이라고, 그 이름을 사랑과 확신을 담아 부르며, 우리가 주님께 바치는 기도와 간구와 찬양을 들으시어 성취되게 하시길(wohl gelingen) 기원하며 찬송을 끝낸다.

 

이 찬송시가 내 마음 깊은 곳을 휘저었다. 그것은 아마도 요즈음 개인적으로 내면의 어두움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유튜브에서 알레의 원곡과 바흐의 곡들을 찾아서 들었다. 원래 알레가 작곡한 회중 찬송은 밝고 경쾌한 느낌인데, 바흐의 프렐류드는 차분하면서도 간절함이 묻어 나오는 듯하였다. 반주자께서 제안한 프렐류드(BWV 731)를 설교 전에 연주하도록 배치하고, 예배 순서지에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원곡의 가사도 번역해서 실었다. 그리고 누가복음 11장 34-36절을 읽고 “그대 안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몸의 등잔불은 그대의 눈입니다. 그대의 눈이 건강할 때는 온몸도 환합니다. 그러나 눈이 병들면 그대의 몸도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살피세요. 그대 안에 있는 빛이 어두움이 아닌지를요. 그러므로 그대의 온몸이 환하고 어두운 부분이 조금도 없으면 온통 환할 것입니다. 등잔불이 그대를 불빛으로 비추어 때처럼요누가복음 11:34-36 (새한글)

 

오늘날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시대가 어두운 것은 외부에 원인이 있기보다는 우리의 내면이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도 어두운 것처럼, 마음이 어두우면 그 삶도 어둡다. 이렇게 어두운 때는, 그래서 지금처럼 눈앞이 보이지 않는 때는 오히려 눈을 감고 가야한다. 일제강점기말 윤동주가 눈 감고 가라라는 시에서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라고 권한 것처럼, 어두운 시대에는 빛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가야 한다. 외부에서 빛을 찾으려 헛되이 애쓰기보다는, 눈을 감고 내면의 빛을 구하고 의지해서 가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는 예수여, 저희가 여기 있나이다.” 이 기도와 찬송을 이번 대림절 나의 기도와 찬송으로 삼으려 한다. 말씀 앞에 고요히 앉아,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이미 빛으로 존재하고 계신 주님을 향해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그러면 마구간과 같이 가난하고 지저분한 나의 내면에 환한 빛으로 탄생하시는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월간 문화목회〉42(2023년 12월호), 24-28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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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요.

다 찌질한 이야기들뿐이에요.”

 

화장(火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미망인이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지금 불에 타 재가 되어 가고 있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며 자신을 자책했다.

 

그녀의 남편은 평생 연극배우로 살았다. 그리고 남자와 손을 잡고 입맞추면 반드시 결혼해야 하는 줄로 생각했던 그녀는 평생 가난한 연극배우의 아내로 살아왔다. 고인(故人)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국립극단 창단 멤버였으며, 연극계에서는 메소드 연기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던 원로배우였다. 60년이 훌쩍 넘는 생애를 연극과 뮤지컬과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였으나 대부분의 연극배우들이 그렇듯이 가난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생계는 오롯이 배우의 아내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요구르트 배달을 했어요. 그런데 그걸로는 아이들을 키우기가 어려워 조그만 손수레를 하나 장만하여 대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팔았습니다. 그러다 분식점을 내었고, 그게 좀 잘 되어서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건물 청소를 하고 있지요.”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단 몇 마디의 문장으로 요약하였다. 그리고 찌질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제목을 붙였다. 그녀의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지나온 세월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듯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회한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바로 위대한 이야기이지요.”

 

그녀의 짧은 이야기가 멈춘 것을 보고, 내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금 편해진 얼굴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때는 밥을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을 키울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족했어요. 부끄러운 것도 없었고, 더 바라는 것도 없었지요.”

 

그랬다. 하루하루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 그것이 그녀의 인생 목표였다. 배우라는 천명(天命)을 받은 남편이 대본에 적힌 인생의 희로애락을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에, 아내는 그 희로애락을 자신의 삶으로 묵묵히 살아내었다. 고된 일, 허드렛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그것으로 매일 가족들의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나이 들어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자리에만 누워 있는 남편을 봉양하였다.

 

잠시 후 고인은 하얗게 타버린 유골로 가족들 앞으로 돌아왔고, 가족들은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분골을 안고 가서 그를 영락동산[1]에 안장하였다. 고인의 교구목사인 나는 마지막 자연장예식을 집례하며 이사야 2619절을 읽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그리고 〈부활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제 집사님께서 이 땅에서 부르시던 노래는 그쳤습니다. 또한, 여기 모인 우리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아침이 되면 집사님께서는 깨어 일어나 다시 노래하실 것입니다. 신령한 몸을 입고서 모든 나라와 민족에서 나온 수많은 성도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7:10)라고 기쁨과 감격으로 노래하실 것입니다.

 

장례의 모든 순서가 다 끝나고, 고인을 흙 속에 남겨둔 채, 유가족들과 함께 버스로 돌아오며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께서 생전에 이곳 영락동산에 많이 와 보셨을 텐데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이곳에 묻히고 싶다고 노래를 했어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생각나는 듯 고인의 아내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내게 한 번 안아줄 수 있는지 묻고는 아들과 나이가 비슷한 목사의 품에 잠시 안겼다. 가련한 유가족들의 머리 위의 가을 하늘은 파아랗게 높았고, 동산의 나무 앞사귀들은 가을바람에 노래하듯 산들거렸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그날 밤 홀로 서재에 앉았는데, 낮에 미망인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다시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녀가 찌질한 이야기라고 말했던 그 인생이 말이다. “찌질한 이야기라는 말을 천천히 마음속으로 되뇌는데, 순간 한 사진이 그 이야기와 함께 오버랩되며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 사진은 며칠 전 사진 전시회에서 본 작품이다. 성우 겸 사진작가로 활동하시는 교회 집사님의 사진전이었는데, 아담한 갤러리에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 비교적 촘촘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집사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분의 지인이 안내를 해주었는데, 마침 그녀는 뮤지컬 배우라고 하였다. 하나하나 찬찬히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중에서도 한 건물 사진 앞에서 걸음이 멈추어졌다.

 

그것은 크로아티아의 로빈(Rovinj)이라는 도시의 한 공동주택이었다. 4층 정도 되어 보이는 조적식 건물의 중정(中庭)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인데, 사방의 벽들에 빼곡하게 달린 창문들은 그곳이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황톳빛의 벽들과 그 앞에 놓인 붉은 화분, 그리고 코발트색의 창문 덮개와 사각의 틀 속에 보이는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사진이 아름답게 보인 이유는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열린 창문들을 통해서 그곳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밖으로 들려 오는 듯했다.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특별할 것 없는 찌질한 이야기일 것이다. 먹고 사는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 가족들의 서로에 대한 애증이 묻어 있는 이야기…. 사진 속의 아파트 건물 안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살고 있었다.

 

오늘 장례를 지낸 고인은 배우라서 그런지 키가 훤칠하고 인물이 좋은 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그의 부인은 키가 작고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나의 기억 속에 남은 그녀는 사진 속의 붉은 색 벽과 파란 창의 건물처럼 소박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찌질한인생 이야기가 지금도 내 마음속에 울리며 그것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월간 문화목회〉41(2023년 11월호), 23-27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 사진 : reproduction of 이상헌 "Rovinj 6"



[1]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위치한 영락교회 공원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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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들리는 소리

 

 

시월이 점점 다가오자, 전도사님들의 얼굴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이번 가을 노회 때 목사 안수를 받기로 예정된 이들이다. 기대와 설레임일까, 아니면 긴장감이나 부담감일까? 어쩌면 둘 다 교차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안수받기 전에 기도 많이 하시고, 잘 생각해보세요. 정말 안수를 받을 건지.”

 

이것은 그들이 뭔가 부족해 보이거나 마음 바꾸기를 바라서 한 말이 결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에서,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한두 해 일하다가 스스로 목사 가운을 벗어버린 이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목사로서 경험한 교회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한 것 같다. 그렇게 목사가 된 후 그만두게 되면, 그것은 마치 결혼하였다가 이혼한 것과 같아서 () 목사라는 꼬리표가 평생 그를 따라 다닐 것이다.

 

언젠가 한 전도사님과 대화를 하다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런데 그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한 젊은이는 목사의 아들이다. 그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개척교회를 섬기시는 아버님을 도우며 자라났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목사가 되는 것을 아무런 의심이나 회의없이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듯하였다. 아마 그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만큼 자신의 소명이 확실하다는 뜻에서 한 대답이었겠지만, 그의 말을 듣고서 나의 마음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글 한 대목이 떠올랐다. 릴케는 1903 2 17일 파리에서 쓴 편지에서 시인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 프란츠 카푸스에게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당신 자신 속으로 들어가세요. 그럼으로써 당신에게 자꾸 쓰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 근거를 한 번 캐어 보세요. 그런 다음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가 뻗어 나오고 있다면, 또 쓰는 일을 그만두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조용한 밤중에, 정말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확인해 보십시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릴케는 젊은 시인 지망생에게 깊은 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만약 마음속에서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절실한 외침이 들려온다면, 그 필연(必然)으로 자신의 생애를 만들어 가라고 권한다. 심지어 일상의 쓸모 없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 절실한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게 하라고, 곧 자신의 삶의 매우 사소한 순간도 그 열망을 이루기 위한 시간으로 삼으라고 말이다.

 

깊은 밤은 고독 속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기에 매우 좋은 시간이다. 릴케를 사랑하고, 산책길에 릴케의 시집을 손에 들고 나서던 시인 윤동주도 그러했다. 그도 고요한 밤에 홀로 앉아 시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자신을 대면하곤 하였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가 194263일에 쓴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조선에서 건너온 한 젊은이가 일본 동경의 하숙방에 앉아 있다. 창밖에서 빗소리가 속살거리듯 들려오는 깊고 고요한 밤, 그는 세 평 남짓의 작은 다다미방에 홀로 앉아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天命)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바로 그 전해, 곧 그가 연희전문학교 졸업반이었던 1941, 당시 윤동주는 졸업 후 진로를 두고 많은 고민 가운데 있었다. 고향에 있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그가 유망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오로지 시인의 길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결국 이듬해 도쿄에 소재한 기독교 사립학교인 릿쿄대학 영문과로 진학했다. 그리고 쉽게 씨워진 시에 적힌 것처럼, 그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 포그니 품긴/ 보내 주신 학비봉투를 받어//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려다녔다.

 

윤동주가 이 작품을 쓸 때 릴케의 유작인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1929)를 읽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치 그 편지에서 릴케가 젊은 시인 지망생에게 조언한 것을 직접 읽은 것처럼, 동주는 깊은 밤 홀로 자신 속으로 침전하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동주는 동족들이 억압 가운데 있는 살기 어려운 시대에, 자신은 한가로이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있으며, 시도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깊은 밤의 고독 속에 결국 시인이라는 슬픈 천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등불 하나 밝히듯 시를 써내려 간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씨워진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그렇게 일본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우리말로 시를 쓰다가 그 다음해인 1943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일본의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광복 6개월 전인 1945216일에 비통한 죽음을 맞았다. 이렇게 식민지 청년 윤동주는 자신이 쓴 십자가의 한 구절과 같이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렸다. 마치 릴케의 권면을 염두에 둔 것처럼 윤동주는 자신의 천명을 따라 시인의 길을 걷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그 젊은 시인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맞게 될 비극적인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시인의 삶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은 목사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젊은 전도사님에게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강렬한 내적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리고 릴케와 윤동주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가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또는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미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그를 돌려 보내고 영락수련원의 상담실에 홀로 앉아 그와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돌아 보았다. ‘나는 왜 그렇게 꼰대와 같이 말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한 번씩 나의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한산성의 밤은 깊었고, 창밖 밤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천진하게 반짝거렸다.

그 별들을 보니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월간 문화목회〉40(2023년 10월호), 23-27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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