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한국기독교신학논총> 영문판에 게재한 글의 한글초록만을 옮겨 놓는다. 전문은 한국기독교학회 웹사이트(www.kacs.or.kr)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아래에도 파일을 첨부한다.

Remembrance Nonidentity and Lament- A Reading of Psalm 137.pdf




Hyeokil Kwon. Remembrance, Nonidentity, and Lament: A Reading of Psalm 137 for the Liberation from the Unfinished Suffering of Colonization. Korean Journal of Christian Studies Vol. 81 (April 2012): 59-78.



한글초록

 

기억, 비정체성, 그리고 서사 : 끝나지 않은 식민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시편 137편 읽기

 

이 연구는 국내와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 식민의 고통과 분노로부터 해방되는 데에 시편137편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자는 역사적, 문학적,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본문을 읽는다. 시편137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에 쓰여진 집단 비탄시로서, 나라를 잃고 타국에 끌려간 이들의 고통과 비정체성의 경험,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위한 투쟁을 서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편에는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망각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기억의 역동이 교차하며, 집단적인 시적화자들은 하나님의 기억 안에서 원수를 저주하는 것을 통해 고통과 정체성의 위협을 이겨내기를 시도한다. 한국인과 해외동포들은 역사적으로 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해외이주로 인해 비정체성의 고통을 경험하였다. 또한 그러한 고통을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비탄을 통해서 극복해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시편137편의 시적화자들과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러므로 시편137편은 오늘날 아직도 식민의 상처로 고통 받는 한국인들과 재외동포들에게 해방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 되어준다. 그 길은 고통을 망각하거나 비역사적으로 승화시키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생생한 고통의 기억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이야기를 담은 우리의 노래는 비탄이다.

2012. 12. 24. 월.


생각보다 빨리 이사하게 되었다. 일주일 후에 짐을 빼기로 했고, 자연히 텃밭 가꾸기도 마무리 해야할 때가 되었다.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텃밭에 나갔다. 최근 한 달 동안 비가 많이 와서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고, 밭에는 물이 고여서 논과 같이 된 곳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많이 쏟았던 상추들은 달팽이들의 희생양이 되어 이제 그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잡초들과 달팽이 알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겨울 작물이라는 부추과의 leak는 꾸준히 자라고 있어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건 브로콜리들이 달팽이들에게 잎을 먹혀 가면서도 어느새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이었다. 3개월 전에 심었던 묘종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마치 간난 아기의 사진과 이삼십대의 장성한 청년의 사진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심은 브로콜리는 일반적으로 식료품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Broccoli Crown이 아니고, Broccoli Marathon이라는 품종인데, 그 이름처럼 지난 3개월 동안 참 오랫동안 끈질기게 달린 끝에 드디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실 아무리 기다려도 잎만 커질 뿐 내가 아는 브로콜리 열매가 보이지 않아서, 브로콜리 마라톤이라는 품종은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인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들은 보란듯이 열매를 맺고 자신들이 '브로콜리'임을 당당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래, 나도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으면 시간을 걸려도 내 정체성에 맞는 열매를 끝내는 맺게 되겠지. 마라톤과 같은 유학생활, 공부가 아직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매일 매일 하늘에서 주시는 물과 땅에서 주는 양분을 받아 먹고, 어려운 문제들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결국에는 주님과 이웃들과 내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열매를 맺게 되리라 희망을 가져 본다.


아직은 브로콜리 열매를 따먹기에는 좀 이른 느낌이 있어서 어떡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웃의 서연이네에게 아그들을 드리기로 하고 주변 정리만 좀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원예일기도 이제 끝이다. 언제 다시 농사일을 시작하게 될까? 글쎄다. 보람도 있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브로콜리 마라톤 묘종 (2012. 9. 27)브로콜리 마라톤 열매 (2012. 12. 24.)


<산책길>에 게재한 글을 옮겨 놓는다. 이 시는 지난 9월 1일 겟세마니 수도원에 있는 머튼의 첫 번째 은수처를 방문한 날에 쓴 것이다. 인생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이 때의 집은 이 땅의 어떤 지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그리고 다시 돌아갈 그분의 품이다. 그분 안에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여정이 아닐까? 그래서 영적 갈망은 곧 향수이며 그리움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다.



집으로 가는  안나의 

(A Way to Home: Saint Anns)

 


1.

들판을 가로질러

낮은 숲으로 향하는

호젓한 시골길

 

발밑에서 돌멩이 형제들이

자글자글

나무 위에서 참새 자매들이

쫑알쫑알

한낮의 뜨거운 땡볕에

삭발한 정수리가 익어가도

길옆의 들꽃도 덩달아

설레는 즐거운 

 

낮은 담장 옆으로 마차의 행렬이 지나가고

대문 앞에서 엄마가 손짓하고

나도 모르게 어린 아이가 되어

아장아장 서섹스(Sussex) 걷는 

어제를 걷는 

 


2.

세상과 갈라진 샛길

마침내 발견한

외딴 판잣집

평생 찾아온 그곳

페인트로 흰색의 튜닉과

검은색의 스카풀라를 입히고

붉은 색의 십자가를 다니

대리석이 빛나는 대저택보다

호화스런 침묵이 찬연한 

 


3.

태초부터 속해 있던

고독

나를 반기고

 

헛간 구석까지 가득 채운

바람

열망을 태워 하늘을 내달리고

 

묵묵히 주위를 둘러싼

나무

함께 교회를 이루고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하늘

통해 세상 모든 나라 하나가 되는 사막

 


4.

 낮의 짧은 

낭만 속에 안주하게 될까봐

고독을 소유하려 할까봐

 

과묵한 트랙터 수사가

굉음으로  떠밀어

 다시 여행에 오르는

집으로 가는 



2012. 9. 1.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하나님과 고독에 대한 열망으로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에도 더 깊은 고독을 찾아 공동생활을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회가 아닌 은둔생활을 하는 다른 수도회로 옮기고 싶어했다. 이러한 그를 위해 수도원장은 그가 겟세마니 수도원 안에서 은둔자(hermit)으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1953년 머튼은 숲속에 버려진 헛간에서 하루의 낮 동안 몇 시간을 머물러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것은 머튼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는 그곳을 '성 안나의 집'(St. Ann's)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옷과 같은 검은색과 흰색의 페인트로 칠했다. 그는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 안나의 은수처는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고 내 일생 동안 바라던 것이었던 것 같다 …… 나는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자리를 찾은 느낌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 안에 있는 서섹스(Sussex)를 온통 걸어 다녔던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나는 이 오두막집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또는 언젠가 그것을 찾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하늘 아래 하나이다."


"나는 이 집을 알지 못했던 11년 전부터 이 은자의 집으로 옷 입혀졌다. 이 희고 검은 집은 실제로 일종의 확장된 수도복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여행할 필요가 없다 …… 성 안나의 집의 조용한 경치는 다른 어떤 세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를 허락하기만 한다면 나는 계속해서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기도인 "나의 주님 나는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릅니다"가 쓰여졌다. 그러나 머튼은 성 안나의 집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수도원 경내의 각종 공사를 위해 동원된 트랙터의 굉음이 그의 고독을 방해했다. 그는 1965년 수도원 내의 에큐메니컬 대화 위해 마련된 장소를 새로운 은수처로 사용하도록 허락받는다. 


성 안나의 집과 관련된 이야기와 위의 인용문은 《고요한 등불: 토마스 머튼의 이야기》윌리엄 셰논 지음, 오방식 옮김 (서울: 은성, 2008), 304-309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바람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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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4. 토. Berkeley Marina




백로가 얕은 물 속을 사뿐 사뿐 걷는 것은 고고해서일까? 아니면 그저 물고기들이 놀라서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이날 백로는 산책을 하며 저녁을 먹었고, 나는 백로가 산책하는 것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버클리 마리나에서. 


먹을 것을 쌓아 두지 않아도, 통장 잔고가 없어도, 창조주를 믿고 한 끼의 식사에 감사하자. 그리고 조급한 마음에 쫒기지 말고 사뿐 사뿐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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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27. <산책길> 게재글


역사를 통틀어 (성서 기자들을 제외하고)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 만큼이나 유명한 기독교 저자가 또 있을까? 진리 찾아가는 한 영혼의 영적 여정을 담은 그고백록은 약 1600여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을 자신과 같이 영적 여정에 오르도록 격려해왔고, 서구 문학에서 '자서전'(Autobiography)이라는 장르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에 관한 좋은 평전이 최근에 한국에서 새롭게 번역 출간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서전이 자신의 내적 여정과 회심 과정을 1인칭으로 이야기한 고백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피터 브라운의 평전은 어거스틴의 삶과 사상을 후기 로마시대라는 사회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제3자의 관점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한 글이. "아우구스티누스는 급속하고 극단적인 변화의 시대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 또한 계속적으로 변화했다"는 피터 브라운의 서문처럼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변화를 그의 시대의 변화 속에서 연대기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Society and the Holy in Late AntiquityBody and Society 등 후기 로마시대와 고대 기독교 연구에 관한 중요한 글들을 저술한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이 저자라는 사실이 이 책을 주저 없이 선택하게 만든다. 


원래 미국에서 초판은 1967년에 나왔고, 2000년에 그간의 아우구스티누스 연구 동향과 새롭게 발견된 자료들을 반영한 개정판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1998년에 호남신학교 차종순 교수가 초판을 번역하여 《어거스틴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장로교 출판사에서 출간하였고, 최근에 개정판이 새롭게 번역되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제목으로 새물결에서 나왔다. 해외에 있으면서 번역본을 재빠르게 구해서 읽고 비교할 형편이 되지 못해서 현재로서는 새로운 번역본에 대한 평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신학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옮긴이가 기독교 사상과 영적 경험에 대한 내용을 어떤 식으로 옮겼는지가 궁금하다. 만만치 않은 책 가격이 부담스럽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혼자서 읽다가 어려움을 겪은 이들이나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하기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피상적으로나마 정보를 제공한다. / 바람연필



아우구스티누스

저자
피터 브라운 지음
출판사
새물결 | 2012-10-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제국은 몰락하고, 야만족은 침입하고, 교회는 분열의 고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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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 생애와 사상

저자
피터 브라운 지음
출판사
한국장로교출판사(재) | 1992-07-3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을 기독교적 시각으로 분석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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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ine of Hippo : A Biography

저자
Brown, Peter 지음
출판사
California | 2008-03-06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A new expanded edition of Peter Bro...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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