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23. 금



추수감사절 휴일을 맞아 인근의 Pacifica 해변으로 게 (Dungeness Crab) 낚시를 갔다. 날씨도 정말 푸르고, 파도소리도 마음을 시원하게 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게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아쉬움에 다른 사람이 잡아 놓은 녀석들이라도 사려고 활어 센터(fish market)로 갔지만 비싼 가격에 그냥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신 집에 돌아 오는 길에 Half Moon Bay에서 석양을 낚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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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10. 토


요즘 비가 오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텃밭에 물주러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온이 떨어지고 비가 자주 오면서 농사일에 게을러졌다. 사실은 날씨 탓만이 아니라, 상추를 앙상하게 만들고 있는 달팽이들의 왕성한 식욕이 우리 부부의 농사 의지 마저 갉아 먹고 있다. 새로운 씨와 모종들을 심으려고 밭을 고르던 것도 중단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어쩌면 곧 이사를 가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이 요즘의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주인의 마음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이 토마토 열매들은 하나 둘씩 영글면서 우리가 밭에 나가는 기쁨이 되어 주었다. 지난 번에 병든 잎과 가지들을 제거하고 난 뒤 새 잎사귀들이 제법 돋아나고 있지만 그것들 역시 하나둘 병에 걸려가고 있어서 안스럽다. 유기농으로 농작물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드디어 마지막 호박 열매를 땄다.마지막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밭을 인수 받은 이후의 유일한 호박 열매이다. 그동안 몇 개의 열매들이 열렸지만 병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너구리의 습격에 채 익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낸 녀석이 제법 대견하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제법 묵직한 것이 마음을 부요하게 한다. 그래, 열매란 크기와 모양보다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결과보다 성장 이야기가 더 감동을 준다. 오늘 점심은 호박을 넣고 칼국수를 끓여 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감동이 있는 열매를 맺기 위해 공부를 해야겠지. 땅만 보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니 이마에 와닿는 바람이 느껴진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하다.

낙엽


낙엽은 오지랖이 참 넓기도 하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연인들이 몰래 입맞추는 공원 벤치 위에도

부부 사이가 서먹서먹한 남의집 앞마당에도

배우자를 보내고 쓸쓸히 나서는 장례식장 입구에도


낙옆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슬며시 끼어든다.

도르르 도르르


해맑게 웃다가도 금새 눈물 콧물 짜내는 아이들의 놀이터에도

자동차들이 서로를 비집고 달리는 도로에도

아버지께서 세월을 낚는 공원의 장기판 위에도 


낙엽은 눈치 없는 이웃처럼 참견한다.

사각사각


아무도 알아 채지 못해도

낙엽은 바람을 타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인생을 말한다.

그네들을 동정한다.



2012.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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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번역한 책이 나왔다. 아직 손에 쥐어보지는 못했지만, 고생해서 맺은 열매를 인터넷으로라도 볼 수 있으니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라는 캐나다 출신의 한국 선교사의 글 모음집이다. 게일은 선교사로서 활약 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에 한영사전을 편찬하고, 《구운몽》 등의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등 한국 문화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다. 게일은 당시 서구에서는 일종의 '동양 전문가'로 불리웠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극동은 이제 자신들의 이닝(inning)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주도권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려 하고 있다]. 그때가 왔다. 극동은 수 많은 인류를 위해 세계를 이끌고 있다. 만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공공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면, 그 대통령은 황인종이 될 것이다. 극동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 일단 동양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보다 적은 비용으로 쉽게 해낼 수 있다. 극동은 오늘날 사상계 전체에서 가장 커다란 질문 그 자체이다. 극동에 대한 두려움이 일고 있으며, 말로 다할 수 없는 희망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한국인이 유엔 사무 총장으로 재선되고 한중일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활약있는 지금은 이러한 글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19세기말 그리고 20세기 초 전쟁과 혼돈, 가난 가운데 있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생각한다면 게일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권의 차별적인 대기업 지원정책과 노동자들의 희생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고, 그로 인해 부의 양극화가 극도로 심각해진 결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평론가는 게일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타파해야 할 미신으로 낮게 평가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일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비교해서 한글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등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가치를 알아 보기도 하였다. 어쨌든 한 외국인 선교사가 20세기 초반 한국의 민간 종교와 풍습, 문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를 읽으면서, 한국인인 우리도 일종의 거리두기(distanciation)를 통해 조국의 문화와 사람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KIATS(한국고등신학연구원)에서 영문과 한글번역이 한 권으로 묶여져서 나왔다. 독자들에게는 게일의 문체를 직접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번역자에게는 모자란 실력이 탄로나는 단점이 있다. 시간에 쫓기어 한글 문장을 세심하게 '조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기존 번역의 오류와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들을 상당히 바로 잡고 보충하였다. 읽다가 번역이 흡족하지 않은 부분은 영문과 대조해서 보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참조로 게일의 밴가드(The Vanguard)라는 단행본도 키아츠에서 함께 나왔다. 아마 선집만 읽고 아쉬움을 느낄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 밴가드》와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게일의 다른 책들과 번역본들도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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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9. 월


약 한 달 전이었나 보다. 토마토 하나가 빠알갛게 익어가고 있어서 딸까 말까 망설이다가 좀더 익도록 그대로 놓아 두었는데 다음날 아침 밭에 나가보니 밤사이에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마치 흙장난을 하는 아이의 얼굴에 흙이 묻은 것 마냥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토마토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열매를 꾸준히 선물해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한 달 전만 해도 토마토가 이렇게까지 열매를 계속 맺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푸른 색의 크고 작은 알맹이들이 십여 개 달려 있기는 했지만, 잎은 갈수록 말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렇게 변해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말라버리는 잎들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물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매번 다른 작물들보다도 물을 더 흠뻑 주었다. 우리는 이것 말고는 토마토를 살릴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말라가면서도 날마다 열매를 키우고 있는 토마토를 보면 정말 안스럽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다행히 새로운 가지들이 뻗어나오고 푸른 빛의 싱싱한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꽃도 피웠다. 아내와 나는 새롭게 자라는 가지와 잎들을 보면서 토마토가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난 잎들에도 누런 반점들이 생기고 끝부분이 말라가는 것이 보였다. 안타까웠지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그저 완전히 마른 잎들을 몇 개 떼어 줄 뿐이었다. 손을 갖다대고 약간만 힘을 주어도 가지째 툭툭 떨어졌다. 우리의 희망도 그렇게 툭툭 떨어져 나갔다.


그러다가 며칠 전 '그제서야' 토마토가 물이 부족해서 마른 것이 아니라 병이 들어서 시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둔해도 '너~무' 둔하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종류의 토마토 병을 알아보니,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이 '점무늬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 주로 발병하는 온도도 최근의 날씨와 일치하고, 습도가 많은 곳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심증을 더해 주었다. 사진으로 본 증상도 거의 비슷해 보였다. 잎에 생기는 반점은 일종의 곰팡이인데 전염이 되기 때문에 병에 걸린 가지와 잎들은 가능한 빨리 제거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괜히 물을 많이 주고 병에 걸린 잎들을 방치해 두어서 병을 더 키운 것 같다. 순식간에 토마토에 대한 안스러운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경험없는 주인이 병을 키웠지만, 아이들은 원망 없이 날마다 최선을 다하여 열매를 키워냈다.


오늘은 날을 잡아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아내가 가위를 들고 집도하였다. 토마토의 병든 잎과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었다. 나는 주위의 잡초도 뽑아내고 흙도 좀 보충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남은 가지와 잎이 거의 없다. 과연 이 아이들이 다시 살아 날 수 있을까? 


토마토의 부상 투혼은 요즘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가 맺어야 할 열매들을 거의 키우지도 못했는데 벌써 시월 한 달이 저물어 간다. 이번 가을 제출해야 할 원고 마감일들이 다가온다. 오늘은 토마토를 넣은 된장찌개를 끓여 먹었다. 병든 중에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토마토의 성실함도 내 마음에 흡수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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