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번역한 책이 나왔다. 아직 손에 쥐어보지는 못했지만, 고생해서 맺은 열매를 인터넷으로라도 볼 수 있으니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이라는 캐나다 출신의 한국 선교사의 글 모음집이다. 게일은 선교사로서 활약 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에 한영사전을 편찬하고, 《구운몽》 등의 한국문학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등 한국 문화 발전에도 기여한 바가 큰 인물이다. 게일은 당시 서구에서는 일종의 '동양 전문가'로 불리웠다.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


"극동은 이제 자신들의 이닝(inning)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주도권을 가지고 세계를 이끌려 하고 있다]. 그때가 왔다. 극동은 수 많은 인류를 위해 세계를 이끌고 있다. 만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공공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면, 그 대통령은 황인종이 될 것이다. 극동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 일단 동양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만 하면 그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보다 적은 비용으로 쉽게 해낼 수 있다. 극동은 오늘날 사상계 전체에서 가장 커다란 질문 그 자체이다. 극동에 대한 두려움이 일고 있으며, 말로 다할 수 없는 희망이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한국인이 유엔 사무 총장으로 재선되고 한중일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활약있는 지금은 이러한 글이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19세기말 그리고 20세기 초 전쟁과 혼돈, 가난 가운데 있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을 생각한다면 게일의 통찰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치권의 차별적인 대기업 지원정책과 노동자들의 희생 등의 어두운 면이 있었고, 그로 인해 부의 양극화가 극도로 심각해진 결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평론가는 게일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타파해야 할 미신으로 낮게 평가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게일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비교해서 한글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등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가치를 알아 보기도 하였다. 어쨌든 한 외국인 선교사가 20세기 초반 한국의 민간 종교와 풍습, 문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를 읽으면서, 한국인인 우리도 일종의 거리두기(distanciation)를 통해 조국의 문화와 사람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KIATS(한국고등신학연구원)에서 영문과 한글번역이 한 권으로 묶여져서 나왔다. 독자들에게는 게일의 문체를 직접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번역자에게는 모자란 실력이 탄로나는 단점이 있다. 시간에 쫓기어 한글 문장을 세심하게 '조탁'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기존 번역의 오류와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들을 상당히 바로 잡고 보충하였다. 읽다가 번역이 흡족하지 않은 부분은 영문과 대조해서 보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참조로 게일의 밴가드(The Vanguard)라는 단행본도 키아츠에서 함께 나왔다. 아마 선집만 읽고 아쉬움을 느낄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 밴가드》와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게일의 다른 책들과 번역본들도 함께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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