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수련원에서 제공하는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거룩한 독서'의 본문과 묵상 안내를 옮겨 놓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실제 안내를 받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와 실천 방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공유하는 유투브 동영상의 설명란에 기록된  안내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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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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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 시간이 가장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는 아마도 해질녘일 것입니다. 해가 서산(西山)으로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지만, 그것도 잠시, 금새 어둑어둑해집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신 후, 예수님은 서둘러 무리를 집으로 돌려 보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십니다. 이제 곧 어두워지면 돌아가는 길이 위험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다 떠나 보낸 후 주님은 홀로 기도하기 위해 산으로 가셨습니다. 

 

보통 세상의 리더들은 늘 많은 사람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이적을 행하심으로 당신의 인기와 영광이 매우 높아졌을 때 사람들을 모두 흩어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떡을 먹고 배가 부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갈 것을 주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보통 사람들은 마음과 힘을 쏟았던 큰 일을 마치고 나면, 커다란 공허를 느낍니다. 그래서 일을 마친 후 수고했던 이들이 함께 모여 회식이나 뒤풀이를 하면서 그 허전함을 채우려고 하지요. 그러나 주님은 ‘오병이어’의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 뒤에 제자들과 둘러 앉아 후일담을 이야기하며 공허감을 채우기보다 홀로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것은 내면의 깊은 곳까지 온전히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밖에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481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때 저물어서 날이 어두니 구주여 나와 함께 하소서. 내 친구 나를 위로 못 할 때 날 돕는 주여 함께 하소서.” 날이 저물어 어두울 때 주님은, 무리들 속에서 영광을 누리지도,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모두 떠나보내시고, 홀로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혹시 내가 떠나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나는 마음의 공허를 채울 위로를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주님과 함께 마음을 살피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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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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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었습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예수님은 허기진 영혼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느라 여념이 없으시고,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제자들이 한쪽 편에 모여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현실적인 안을 마련하여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사람들을 흩어 보내시지요. 둘레의 농장과 마을들로 나가서 저마다 먹을 것을 살 수 있게 하시지요.” 그러나 주님은 매우 비현실적인 대답을 하십니다. “그대들이 주세요.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그대들이요.” 그러자 다시 한 제자가 매우 현실적인 반문을 합니다. “저희가 나가서 200 데나리온어치 빵을 사서 그들이 먹도록 주라는 말씀입니까?” 2백 데나리온은 2백 명의 노동자가 하룻 동안 함께 일해야 받을 수 있는 품삯에 해당하는 매우 큰 금액입니다. 제자들의 이 대답은 단순히 주님의 의도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볼 것을 명령하셨고,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찾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드리면서도 어떤 제자들의 마음에는 “거봐, 우리말이 맞다니까, 먹을 것이라고는 이것 밖에 없으니 사람들을 흩어 보내는 수밖에 없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떡 다섯 개와 물고리 두 마리를 보시고, 다른 상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상대로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것을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거두었습니다. 


주님은 종종 우리가 전혀 할 수 없는 상상을 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 거하시던 하나님은, 아침이면 만나가 지면에 이슬 같이 내리고, 저녁이면 땅거미를 배경으로 메추라기가 공중을 가득 채우는 상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저문 빈 들에서 당신을 찾아온 허기진 영혼들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배부른 상상을 하셨고, 그것을 당신과 제자들의 손을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대에게는 무엇이 있느냐고, 그리고 그것을 보며 무엇을 상상하느냐고.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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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 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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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피곤하고 허기진 제자들은 잠시 쉬기 위해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외딴 곳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육로를 달려 배보다 더 빨리 그곳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멀리서도 예수님의 일행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안목은 있었지만, 그들이 지치고 허기져서 잠시 쉬어야 한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타인의 필요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의 필요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제자들의 허기는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예수님을 보고 배보다 더 빨리 달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필요보다 무리들의 필요를 더 우선시 하셨습니다. 외딴 해변에 도착하신 주님은 그곳에 이미 큰 무리가 달려와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시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영혼에 큰 통증을 느낀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주님은 허기진 무리를 단순히 머리로 동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시고 그 마음 중심에 큰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은 위험과 굶주림에 노출된 채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가련한 사람들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말씀들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기도하실 때에 상상력을 활용하여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제자 중 한 사람이 되어 보십시오. 잠시 배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가지다가 외딴 해변에 도착하였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 많은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려보십시오.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일어납니까? 그리고 그 무리를 보시고 매우 마음 아파하시며, 원래 잠시 쉬려던 계획은 뒤로 하시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 마음에 대해 주님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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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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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둘씩 여러 마을로 파송되었던(6:7-13)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주님께 보고하였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제자들은 보람과 성취감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감으로 어깨가 쳐져 있거나 아쉬움 속에 있는 사람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보고한 일이 아니라, 제자들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알아차리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명을 수행하느라 밥을 먹을 여유도 없어서 매우 허기지고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깐 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한적한 곳’으로 번역된 말은 사람들이 없는 외딴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쉬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군인이나 땅이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일을 그치고 쉬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된 제자들은 새 힘을 얻기 위해 잠시 일을 그치고, 사람들을 떠나 외딴 곳으로 가서 고독 가운데 쉴 필요가 있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곳까지 따라 와서 결과적으로 제자들이 쉴 수 있었던 시간은 배를 타고 가는 동안뿐이었지만, 이 이야기에서 제자들을 생각하시고 아끼시는 주님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시고 기도하실 때, 상상력을 활용하여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장면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예수님께 나아가 그동안 주님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주님의 명령을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말씀 드리고, 그에 대해 주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잠깐 쉬라”는 주님의 명령과 초대를 따라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떠나며, 주님께서 주시는 쉼 속에 머물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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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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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안디바는 사람 됨됨이가 가볍고 신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에 헤로디아의 딸이 자신을 위해 춤을 추어 잔치의 흥을 돋구자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소녀에게 원하는 것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단단히 맹세하였습니다. 그는 어쩌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호탕함을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가서 물었고, 마음에 독기를 품은 여인은 그것을 평소 자신이 미워하던 세례 요한을 죽일 좋은 기회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쁘게 춤을 추던 소녀는 섬뜩한 소원으로 대답했고, 정의는 무시해도 체면은 중시하던 헤롯은 마지 못해 세례 요한의 머리를 칼로 베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사람”의 머리는 마치 잔칫상의 음식처럼 소반에 담겨져 잔인한 모녀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여자가 낳은 사람들 중에 가장 큰 이라고 칭찬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하라 외쳤고, 그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괴로워하며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소녀의 춤 사위와 불량한 통치자의 경솔한 맹세에, 잔칫상에 올려지는 짐승처럼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였다.”는 매우 짧은 기록으로 마무리되는데, 이 짧은 구절에는 큰 충격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제자들의 절망과 비통이 반영되어 있는 듯합니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허무한 일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사람에 의해 희생당하고,  매우 중요한 일들이 너무나 가벼운 장난과 조롱에 무시당하거나 무산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고, 예수님도 요한처럼 악한 이들에게 희생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이 말씀으로 묵상하고 기도하실 때에 요한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 지낸 제자들이 얼마나 비통한 심정이었을지를 생각해보고, 그 심정으로 주님께 나아가 보십시오. 그리고 그와 같이 억울하고 원통한 일, 허무하고 한탄스러운 일이 생각나신다면, 그것을 주님께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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