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 기념으로 제주도를 찾은 것은 단지 그곳이 20년 전 아내와 함께 갔던 신혼여행지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주도의 바다, 제주도의 바람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제주도 동북쪽에 자리잡은 한 어촌 마을 펜션에 짐을 풀고 곧바로 해변으로 나갔다. 해질녘이 되니 까페도 일찍 문 닫고, 겨울날 올레길을 걷는 사람도 없었다. 한적한 포구에는 나와 아내와 아이와 바람과 파도와 새들만 있었다.

 

여행은 짧았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남는 것은 사진이라고,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 속에 저장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 보았다. 즐거운 모습이 담긴 사진들 사이에는 숙소 앞 해변에서 촬영한 짧은 동영상도 있었다. 잿빛 구름이 잔뜩 낀 해변에는 파도소리를 압도하는 바람소리가 가득했고, 지구가 만들어 내는 그 소리들과 함께 거센 바람에 밀려 힘겹게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의 울음소리와 방파제를 뛰어 다니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 소리가 섞여 간간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다시 나를 제주 바다로 데려가 주었다.

 

그렇게 잠시 추억 속에 머무는데, 문득 여행 중 어디선가 받았던 기념 엽서가 생각이 났다. ‘사운드 컬러링’(Sound Coloring)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혔 있는 엽서 세트였다. 찾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제주 곳곳의 소리풍경을 녹음하고, 각각의 장소에 서식하는 특징적인 동물들을 그려 두어 사용자가 색연필로 칠할 수 있도록 한 엽서들이다. 엽서에 인쇄된 큐알(QR) 코드를 스캔하니 제주도의 풍경 사진과 함께 그곳에서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웹사이트로 연결되었다. 비록 이번 여행 중에 내가 직접 가본 곳들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듣고 있으면, 사진 속의 풍경이 마음속에 떠오르며 마치 제주도의 구석구석까지 이끌려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엽서와 풍경 소리를 통해 영어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말은 소리를 뜻하는 ‘sound’와 풍경을 뜻하는 ‘landscape’를 합성한 단어로서 소리로 경험되는 풍경을 의미하는 말이다. 랜드스케이프가 확실히 시각을 통해서 경험되는 경치라면,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통해서 경험되는 풍경이다. 그래서 우리 말로는 ‘소리풍경’으로 번역된다. ‘아, 이런 말도 있구나!’ 소리풍경이라는 개념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말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곱씹는데, 나의 의식은 어느새 작년 영성 순례 때 다녀온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가의 몽생미쉘 수도원으로 가 있었다. ‘몽생미쉘’(Mont-Saint-Michel)은 문자적으로 ‘성 미가엘의 산’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이다. 이곳에 709년 생 오베르(Saint Aubert) 주교가 꿈에 천사장 미가엘의 지시를 받아 예배당을 세웠고, 그것이 11세기에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으로 발전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은 섬 위에 세워진 웅장한 중세의 건축물과 조수간만의 차가 큰 노르망디 해안의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답게 조화되어서 ‘서구의 경이’(Wonder of the West)라고 불리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고, 매 년 수백 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사실 수도원들을 순회하는 영성 순례를 준비하며 몽생미쉘을 여정에 꼭 포함시켜야 할지 고민했다. 이곳은 근대 이후에는 수도원이 아니라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또 현재는 너무 관광지화되어서 수도원 본래의 맛을 느끼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을 다녀오신 한 영성학 교수님께서 꼭 가보라고 권면해 주셔서 먼 길을 달려 갔는데, 함께 간 거의 모든 분들이 정말 이곳에 오기 잘했다고 입을 모을 정도로 잊지 못할 추억이 남는 곳이 되었다. 많은 여행 안내 자료에 소개된 것처럼 건축물과 환경이 정말 아름답기도 했지만, 나에게 있어서 몽생미쉘에서 체험한 경이(wonder)의 절정은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원의 회랑(回廊)에 있을 때 찾아왔다.

 

회랑(cloister)은 건축물의 주요 부분을 둘러싸거나 연결하는 지붕이 있는 복도로서, 일반적으로 아치를 사용한 사각형의 회랑은 수도원 건축물을 특징짓는 공간이기도 하다. 몽생미셸 수도원 성당의 북쪽 날개 부분(transept) 바깥에는 사각형의 회랑이 자리잡고 있는데, 한쪽 면은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서 아치 너머로 보이는 바다 조망이 매우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이 그곳에 들어 섰을 때에는 이미 해질녘이었고, 중년의 한 여성이 청소년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프랑스어로 이것저것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 일행의 목소리가 방해가 된다는 듯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떠나갔다.

 

그것을 보고 나는 우리 순례단원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침묵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회랑의 한쪽 모퉁이 벽으로 붙어 일렬로 앉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 속에 앉아 있으니 주위의 소리들이 마음에 들리기 시작했다. 지붕과 정원 바닥에 떨어지는 차분한 빗소리와 마음을 깨우는 바닷바람 소리, 그리고 회랑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정겨운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다를 향하여 난 아치의 빈 공간에서는 해질녘의 하늘이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침묵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소리들과 풍경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심을,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린 잘 알 수 있었다.

 

마침 그때의 장면을 담아 둔 영상이 있어서 찾아 보았더니 그 침묵의 시간이 다시 경험되며 마음이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 차 오른다. 이렇게 소리풍경은(soundscape)은 시각적인 풍경(landscape)과 더불어 우리로 하여금 그 시간과 공간 안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한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어떤 세계를 추억이나 기대 속에서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소리풍경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은 이유는 단순히 과거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내가 그 한 부분에 몸담고 있는 한국 교회에 대한 현재적인 고민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들은 각각 어떠한 소리풍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이들은 강단에서 전해는 메시지의 내용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어떠한 소리풍경을 그 마음에 담아갈까? 그리고 그 소리풍경에 대한 기억과 울림들이 그들이 엿새 동안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어떻게 하면 소리풍경이 성도들의 영성을 깊게 하는 교회,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여행을 다녀온 사진과 영상을 보다가 괜히 엉뚱한 고민만 깊어진다.

 

 


 

〈월간 문화목회〉45(2024년 3월호), 19-23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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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받으면, 몇 번이고 꺼내어 다시 읽어보게 되는 편지가 있다. H 자매님의 편지가 그렇다.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아직 마음이 살짝 들떠 있던 어느 날,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교회로 돌아가니 내 책상 위에 그림 엽서 세트와 함께 오렌지 색 편지 봉투가 올려져 있었다.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은 두툼한 봉투 안에는 네 장에 걸쳐 쓴 장문의 편지가 있었고, 마지막 장 마지막 줄에 가서야 H 자매님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보기 전에 잘 익은 오렌지 같은 그 문장만 보아도 말투와 문체가 별로 다르지 않은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편지는 전시회를 다녀온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지난 겨울 끝자락에 친구와 모네 전시회를 보러 갔어요그런데 일반 작품 전시회가 아니라 디지털 전시회더라구요··· 사방 벽면이 갤러리고 관람객은 중간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보는 방식이더라고요그때   가슴이 두근 했어요그림 속에 파묻혀 그림을 본다는  얼마나 근사한지관람시간이 되기도 전에 가슴이 벅차 올랐어요 눈앞에 끌로드 모네의 〈양산을  여인〉이 펼쳐져 있었거든요털외투에 목도리까지 칭칭 감고 벌벌 떨면서 전시회에 왔는데 〈양산을  여인〉을 보자 전시장에 봄이 가득   같았어요화가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 하늘이  얼마나 순하고 맑던지다른 그림을 보지 않고 그저  그림 안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정도였어요생각해 보세요목사님향긋한 햇살이 어깨 위에 내려 낮고살랑살랑한 바람이 가슴에 스며드는데 어떻게 설레지 않을  있겠어요게다가  여인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으면  행복했었노라 말할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련하고도 애틋하게 그려졌잖아요. ··· 그렇게 모네의 “눈에 들어온 그대로의 색과 모양”들 속에서 “마음을 깨우는 형형색색의 고요함”을 만끽하고 하니 마음에 한가득 바람을 머금고 있는  같았어요답답했던 마음이  뚫리는  같았죠암튼 너무 좋았어요.

 

이전에 나도 디지털 그림 전시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여러 해가 지나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흐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작품들이 입체적으로, 또는 동적으로 구현되어 있어 마치 판타지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그래서 편지 속에 기록된 H 자매님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아니, 내가 그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며 직접 경험했던 것보다 H 자매님의 글을 읽으며 더 깊은 경험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편지와 함께 놓여 있던 작은 상자에는 끌로드 모네(Claude Oscar Monet: 1840~1926)의 작품들이 인쇄된 엽서들이 들어 있었고, 상자의 앞면에서는 〈양산을 든 여인〉(Madame Monet and Her Son, 1875)과 그의 아들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한동안 그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H 자매님이 본 것과 같이 그 그림이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파아란 하늘 위의 새하얀 새털 구름이 바람에 천천히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H 자매님이 아니라 내가 모네의 그림이 가득한 방 안에, 그녀의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인용하자면, “그림 안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졌다.

 

사실 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떠오른 것은 ‘복음서 묵상’이었다. 기독교 영성 전통 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영성 훈련 중 ‘복음서 묵상’(Gospel contemplation)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것은 복음서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나 자신을 등장 인물들 중 하나로 간주하여 직접 그 이야기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어린아이들도 잘 아는 ‘오병이어’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본문을 하나 택하여 두세 번 반복해서 읽으며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 본다. 그렇게 해서 본문의 내용이 충분히 파악되면, 상상력을 활용해서 장면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를 테면, 시각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저녁 무렵 빈들에서 자신을 찾아 몰려온 가여운 사람들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고치시기도 하는 예수님을 그려본다. 또한 청각적 상상력을 사용하여 들판에 울려 퍼지는 예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수도 있다. 또는 촉각을 활용하여 바람을 느껴보아도 좋고, 후각을 활용하여 들판의 풀냄새를 맡아 보아도 좋다. 그리고 지각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장면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느껴본다. 밝고 평화롭거나 기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우울하거나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장면을 구성한 다음에는 이야기 속의 인물 중 하나가 되어 장면 속으로 들어간다. 이때는 가능한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이 좋다. 곧, 많은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예수님 곁의 제자나,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리는 소년이 되는 것이 예수님과 직접적인 만남을 갖고 교제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되어 사건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주님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 원래 이야기 속의 소년과 달리, 주님께 자신이 가져온 물고기는 너무 작고 맛이 없는 것이어서 드리기가 민망하다며 주저하거나, 가진 것의 일부는 주머니에 감추어 두고 나머지만 드리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때의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 반응은 매우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미술 작품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복음서의 이야기를 배우고, 묵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성경을 직접 읽거나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책을 읽고 묵상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의 벽면에 걸리거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또는 벽면과 기둥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부조나 조각들 보면서 성경의 이야기와 관계를 맺고 그 속으로 들어가 묵상하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비슷하게 내가 모네의 〈양산을 든 여인〉 속으로 빠져 들어가 그 그림 속의 여인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H 자매님이 편지에서 소개해 준 이 그림의 배경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모네의 첫 번째 아내로, 그가 평생 가장 사랑한 여인이래요. 재능은 있지만 가난했던 모네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지지해 준, 단 한 명의 우군이었죠.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모네는 물감을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해요. 정말 그런 것 같죠? 그림을 보면 아내와 아들에 대한 모네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러한 이야기를 읽고서 다시 그림을 바라 보고 있으니, 유학시절의 아련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는 학비를 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어느 날 큰 마음을 먹고 저가형 DSLR 카메라를 중고로 하나 샀다. 그리고 산책을 다닐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석양이나 거리 풍경을 찍곤 하였다. 그것이 유학생활의 고달픔과 버거움을 잠시나마 흘려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그리고 그 때 찍은 사진 속에는 종종 아내가 있었다. 

 

그랬다.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 당시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아내가 나의 유일한 모델이었다. 그녀는 때로는 귀찮아 하면서도, 내가 요청할 때면 언제나 나의 모델이 되어,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자신을 바라 보고 있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시절의 젊은 아내가 지금 ‘양산을 든 여인’이 되어 그림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스러운 어린 아들과 함께 말이다. 마치 영화 속에서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 두 개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처럼 ···.

 

H 자매님은 편지에서 봄이 되면 내가 아내와 아이와 함께 공원에라도 가서 그림과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네의 그림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공원에 나가 봄을 누리기 위해 굳이 삼월을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편지를 읽고, 그 “그림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동안 이미 봄이 와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사진 속에서 아내와 함께 웃고 있던 봄이, 지금 그림 속에서 되살아나 산듯한 봄바람으로 내게 불어 온다. 봄바람에 구름이 아득하게 흩어져 가고, 풀밭은 기분 좋게 출렁인다. 아내는 봄햇살에 눈을 살짝 찡그리며 사진을 빨리 찍으라고 재촉하고, 잠시 멈춰 서서 포즈를 잡아주던 아이는 이내 여기저기 즐겁게 뛰어 다닌다.

 


 

〈월간 문화목회〉44(2024년 2월호), 17-21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짙은 녹두색 글자로 된 두 문단은 원고 분량이 길어서 잡지에 송고할 때 삭제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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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보드게임이라네요. 목사님, 아이가 좋아하지 않을까요?”

 

프랑스 떼제(Taizé) 공동체를 떠나기 전 전시실”(Salle d’Exposition)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념품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분이 상자 하나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정사각형의 황토색 종이 상자 위에는 켈리아”(Kellia)라는 제목과 함께 사막의 위험”(The Risk of the Desert)이라는 부제가 적혀 있었다. 순간 눈이 번쩍 크게 뜨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보드게임에 꽂혀 있는어린 아들에게 최적의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2주 동안의 영성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선물 상자를 내밀자, 아이는 받아 들고서 연신 대박을 외치며 기뻐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의 고난(?)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게임 설명서가 영어와 독어로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 겨우 한글을 읽는 아이는 내게 게임 방법을 알려 달라고 졸라 대었다. 그러나 난 시차와 밀린 일들로 너무 피곤하여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바빴다.

 

아빠가 내일 공부해서 알려 줄게.”

, 내일은 꼭 알려줘.”

 

그래도 착한 아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충혈된 눈으로 집에 돌아온 아빠를 이해해주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난 늦은 시각에 집에 돌아와 긴 설명서를 읽다가 꾸벅꾸벅 졸곤 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토요일 저녁 게임판을 펴 놓고 아들과 마주 앉았다.

 

켈리아는 여타 보드게임들과 게임 방식이 매우 달랐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참여자들이 경쟁하여 그 중에서 한 사람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인데 반해, 켈리아는 게임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협동해야 하는 게임(cooperative game)이었다. 이러한 낯선 방식 때문에 게임 규칙을 익히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 것 같기도 하다.

 

이 게임은 고대 이집트 사막의 수도자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4세기 초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중단되자,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인들은 점차 세상과 타협하며 방종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이들이 진정한 신앙 생활을 추구하며 사막으로 갔는데, 역사는 그들을 사막의 수도자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주로 이집트,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지의 사막에 거주하면서 기도와 노동과 금욕의 삶을 살았다. 이들의 지도자들은 사막 교부들과 교모들(the desert fathers and mothers)이라고 불리며, 이들의 가르침과 삶을 모아 놓은 금언집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켈리아(Kellia 또는 Cellia)는 사막의 수도자들이 모여 살던 나일강 삼각지 서쪽에 위치한 마을들 중 하나이다. 원래 그리스어로 켈리아’(kellia)는 수도자들이 기거하던 독방, 또는 오두막을 뜻하는 켈리온’(kellion)의 복수형이다. 그래서 원래는 특별한 이름조차 없던 사막에 수도자들의 오두막들이 세워지면서, ‘켈리아’(오두막들)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기록과 발굴을 통해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마을의 중앙에는 교회가 위치했고 그 주위에는 수도자들의 오두막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는데, 한 때는 약 600명의 수도자들이 모이면서, 켈리아는 직경이 6km에 달하는 거대한 도시와 같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적 아버지(Abba)와 영적 어머니(Amma)의 지도 아래서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였다. 수도자들은 보통 각자의 오두막에서 홀로 기도하고 노동하였지만, 주기적으로 마을 중앙에 위치한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하였고, 생존 자체가 어려운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가진 자원들을 나누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보드게임 켈리아는 두 명에서 네 명의 수도자들(플레이어들)이 하루하루 생존하고, 주어진 기간 안에 각자의 켈리온(오두막)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수도자들은 내적 생활(기도), 자연묵상, 노동 등의 활동을 하는데, 중도에 한 사람이라도 매일 먹을 물과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전체가 게임에서 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많은 자원들을 독점해서는 안 되고, 서로를 위해 양보하고 나누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견제하고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임무를 함께 완수하기 위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소통해야 한다.

 

게임 방식이 생소하고, 규칙이 다소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서에는 모든 카드들과 옵션들을 다 사용하는 버전(full version) 외에도 조금 단순화된 버전(introductory version)의 두 가지 게임 방법이 안내되어 있었다. 나는 먼저 간략한 버전을 익혀서 아이와 함께 해보았다. 원래 권장 연령 12세 이상의 게임이어서 어린 아들이 좀 어려워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재미있어 하며 게임이 한 판 끝나자마자 곧바로 나를 재촉했다. “아빠, 어려운 건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 해보자!”

 

하지만 바쁜 아빠는 그로부터 또 일주일 가량이 지나서야 풀 버전의 게임 방법을 익힐 수 있었고, 기대에 가득 찬 아이는 이번에는 엄마도 불러서 셋이 함께 게임판 주위에 둘러 앉았다. 서로서로 도와가면서 게임을 하니 서로 이기려고 경쟁할 필요도 없고, 졌다고 아쉬워 할 일도 없이 모두가 즐거웠다. 엄마는 아이가 오두막을 잘 지을 수 있도록 조언해 주었고, 아이는 자신이 습득한 물과 음식을 아빠에게 나눠주며 뿌듯해 했다. 그것은 일종의 공동체 경험이었다. 이처럼 켈리아 참여자들은 게임을 통해 기도와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며,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경험한다. 이런 게임이라면 공동체가 함께 하는 영성 수련 중에 시간을 배정하여 함께 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설명서에 의하면, 켈리아는 떼제 공동체의 형제들이 만든 게임이다. 아마도 맨 처음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었을 것이고, 공동체의 수사들과 그곳을 찾은 젊은이들이 함께 게임을 하며 조금씩 발전시켜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떼제 공동체 특유의 자유로운 소통과 영적 우정이라는 환경이 그들로 하여금 창의성과 협동심을 발휘하여 이런 게임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 게임에는 갈등과 분열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평화와 일치를 추구하는 떼제 공동체의 영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드게임 켈리아는 떼제 공동체라는 토양에서 자라고 맺힌 아름다운 열매들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수도 공동체 떼제의 기념품 가게에서 보드게임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오락(recreation) 또한 수도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스페인 갈멜 수도회 소속의 영성가이자 개혁가인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of Ávila: 1515-1582)는 공동체의 자매들이 우울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루 일과 중 기도 시간과 노동 시간은 물론 오락 시간도 배정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캐스터네츠를 치거나 탬버린을 흔들며 자매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또한 독방에서 엄격하게 침묵을 지키며 기도에 전념하는 카르투시오 수도회도 일주일에 한 번은 몇 시간씩 형제들이 함께 산책을 하며 즐겁게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날 교회는 세속 문화를 경계하며, 교인들에게 세상의 오락과 유흥에 빠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저 금지만 할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대안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더욱 건강해야 한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히는 법이다(7:17-18). 보드게임 켈리아는 그러한 일에 좋은 예가 된다. 이것은 이른바 갑툭튀’, 곧 한 사람의 머리에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산물이 아니라, 떼제라는 좋은 공동체에서 배태되고 자라난 즐거운 열매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떼제 찬양이 프랑스의 떼제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수도 공동체의 아름다움에서 울려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월간 문화목회〉43(2024년 1월호), 20-23에 게재된 글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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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는 가운데 올해의 마지막 수련이 끝났다. Y고등학교 교사, 교직원들께서 어제 오후 방학식을 마치고 영락수련원으로 올라와서 영성 수련을 하다가 오늘 남한산성의 ‘눈 맛’을 제대로 보고 즐겁게 내려 가셨다.

 

수련원 직원들께서도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는 눈을 치우느라 ‘눈 맛’을 제대로 보았다. 하루 종일 추위 속에서 ‘즐겁게’ 많은 고생을 하셨다. 수련을 마치고 잠시 지난 9년 동안 이곳에서 섬기시다가 사임하시는 직원 한 분을 송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분의 헌신이 수련원 곳곳에 배어 있는데 참 아쉬웠다. 수련원 직원분들은 직업 정신이 아니라 ’소명 의식‘으로 수련원을 지키는 기둥같은 분들이다.
 
나도 벌써 수련원에서 만 오 년을 보냈었다. 그 동안 여러 분의 교역자들과 직원들이 떠나기도 하고, 오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될 것이다.
 
 
2023.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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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3. 수.
 
연일 발생한 올해 스물여섯 번째 장례와, 스물일곱 번째 장례를 마치고 교구 상례부 권사님들과 함께 책방을 겸한 까페에 가서 여유롭게 책을 뒤적이고 있는데, 스물여덟 번째 장례가 났다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그 다음날 입관을 가는데, 이어서 스물아홉 번째 장례 소식이 들려왔다. 교구목사의 기도가 부족하여 올해 성도들을 많이 잃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는 교구 성탄의 밤이 예정되어 있는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그 땅에도 연일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으니 이번 성탄은 기뻐할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2023. 12. 18. 월.
 
지난 토요일, 남양주에서 새벽 일찍 발인하여 눈길을 달려 춘천안식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화장을 마치고 다시 남양주 영락동산으로 가서 고인을 모셔드렸다. 그렇게 올해 스물아홉 번째 장례를 마치고, 곧바로 교구 성탄의 밤을 위해 교회로 갔다가, 행사가 끝난 뒤 밤에는 다시 서른 번째 장례를 위해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 새벽 일찍 발인함으로써 지난 열흘 동안의 연속된 다섯 분의 장례를 모두 마쳤다.
 
그동안 교구 상례부원들과 조가대원들께서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함께 하는 교구 전도사님(김OO 목사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김OO 목사님이 어제 임기를 마치고 사임을 하여서, 마지막 장례는 혼자 갔다. 고인이 등록교인이 아니셔서 이번에는 상례부와 조가대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도 김 목사님이 장례순서지는 준비해 주었다.
 
그는 마지막 주일인 어제 1-5부 예배 시간마다 사임 인사를 하면서도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이마에 땀을 흘리며 수고하였다. 하루가 끝나고 종례 후에 김OO 목사님이 준비한 장례순서지를 내밀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울컥하였다. 순서지가 잘 접혀져서 담겨있는 봉투가 마치 작별 선물처럼 느껴졌다. 순서지 1면 교구목사 이름 옆에 그의 이름이 항상 있었는데 비워져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이제 내 옆에 없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는 지난 일 년 동안 함께 교구를 섬기면서 내가 맡기는 일을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잘 해내었다. 그는 이제 교구전도사의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의엿한 목사님이 되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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