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지게 하나
아카시아
창백한 얼굴로 허기를 게워 내는
운문산 겨드랑이 가파른 시골길을
빈 지게 하나
조그만 아이 등에 업혀
휘청거리며 올라간다.
보릿고개 몽롱한 햇살에
살갗은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세월이
바람 속에 흘러서
아이가 아버지가 되어도
지게는 벗겨지지 않아.
나무를 해도 해도
지게는 바닥만 드러내고
빈 지게는 더욱 무거워 지고.
매년 어버이날만 돌아오면
자꾸만 빈 지게가 눈에 밟혀와.
작대기보다 앙상한 두 다리로
다섯 식구 지고 가시는
아버지의 눈곱이 보여
코에 묻은
아카시아 향기에도
코끝이 시큰거리고.
바람이 어루만지는
언덕에 앉아
사랑 가득
한 짐 지고 내려오시는
아버지를 꿈꾸며
나도 빈 지게를 지고.
1997년 5월
아버지께 큰 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옛날 문서 파일들을 뒤져보니, 대학시절 아버지를 소재로 쓴 시들이 여러 편 있다. 이 시는 신병훈련소에서 쓴 글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어버이날에 입대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훈련소에서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이 더 애틋해졌던 것 같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그때까지도 가난을 지고 살아가시는 아버지가 참 안타까웠다. 그리고 지금도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부모님 어깨와 마음에 짐이 되고 있어 죄송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 201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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