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Halloween)이 다가오니 마켓에는 호박이 가득 쌓여 있고, 길을 걷다보면 기괴한 할로윈 장식을 한 집들이 쉽게 눈에 띈다. 그것은 할로윈 날 밤에 죽음의 신이 보내는 악령들이 사람을 해치러 왔다가, 집 앞의 무시무시한 장식들을 보면 무서워서 도망을 가기 때문에 해를 피할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아마도 오늘날 이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 미국에 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로윈을 문화적인 놀이로 즐기는 듯하다. 물론 복음주의권에서는 이교 문화인 할로윈 파티에 거리낌을 느끼고, 추수 축체(harvest festivals)로 대체하기도 한다.


   


처음에 미국에 유학을 와서 산책길에 이런 풍경들을 봤을 때 신기하기도 하고 좀 섬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약 백 여년 전에 한국에 온 서양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도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방문했다가 이와 비슷하게 섬뜩한 풍경을 목격했다.


용천에서는 한 특이한 풍습이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이런 것을 조선의 다른 데서는 본 일이 없다. 우리는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더러운 주막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능한 한 깨끗한 자리를 골라서 앉았는데, 그 후에서야 우리는 바로 머리 위의 마룻대에서 단검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들의 조상 때부터 계승된 관습인 것 같다. 그들에 의하면 만약 그 마을에서 누가 불길한 날에 죽으면, 그 혼령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가 살아 있는 사람을 데려 갈 작정으로 남의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집에 들어 갈 때에 망령이 마룻대를 흘깃 쳐다보는데, 거기에 달린 단검을 보면 겁을 먹고 도망간다고 한다. 그래서 단검이 집안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게일(James S. Gale, 1863-1937) 지음, 권혁일 옮김,《제임스 게일(서울: KIATS, 2012), 93-94.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죽음의 힘을 가진 어떤 존재가 자신들을 해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괴한 장식물이나 무기로 악한 힘을 퇴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회는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에 대한 위협조차도 '조롱'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음을 정복하셨다! '할로윈(Halloween)', 곧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All Hollows' Eve)'라는 이름 자체에 그 승리와 소망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참조1, 참조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all saints)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죽음은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이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죽음으로 끌어 당기는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미신을 따라 천장에 단검을 매달아 놓을 필요도, 집 앞에다 기괴한 장식물을 달아 놓을 필요도 없다. 무시무시한 장식물이나 무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악령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다. 오직 어떤 인위적인 것으로도 장식하지 않은, 그리스도를 향한 '벌거벗은' 믿음과 부활을 바라보는 검질긴 소망이 우리를 그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서양의 할로윈 문화를 수입하여 즐긴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어린아이 교육 기관들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모든 성도들의 날 전야'라는 할로윈의 이름 뜻조차도 모르면서 '고급스러운 서양 문화'라고 생각하며 즐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여전히 많은 현대인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요란한 껍데기'로 그 두려움을 가리고, 얼이 빠진 채로 유흥(entertainment)을 즐기며 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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