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16일, <한국고등신학연구원 11주년 기념 & 제3차 KIATS Forum>에서 나눈 짧은 생각을 옮겨 놓는다. 아직 추상적이고 날 것 그대로인 모자란 생각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의 지혜와 협력으로 함께 발전시켜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개한다.



제자들의 연대를 꿈꾸다

Back from Churchianity to Christianity



     제2세대 한국 선교사 브루스 헌트(Bruce Hunt: 1903-1992)는 1957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한 연설에서 선교의 사명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선교사들이 “한국에 진정한 기독교(Christianity)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교회교’(Churchianity)”다 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교회의 외형에 들러붙을 수 있는 여러 폐해에도 우리 주님의 목표는 여전히 ‘그분의 교회를 짓는 것’이었다”라고 변호합니다.[각주:1]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복음주의권의 여러 선교사들이 영웅주의에 도취되어 교회 설립보다는 구제 프로젝트에 집착한 현상[각주:2]을 비판한 것이라는 점에서 정당하게 이해됩니다. 또한 신자들이 모여 교회를 조직하고, 예배당을 건축하며,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형태의 영성이 한국 기독교 형성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헌트도 인정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에서 ‘교회중심주의’가 많은 폐해를 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교회중심주의’라는 토양 위에서 싹이 트고 자라난 것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개교회의 이익과 제도와 교리에 집착하는 경향은 교회 분열을 야기하였고, 나아가 교회를 세상과 분리시켜 버렸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견고한 담장 안쪽에 개교회 목회자들과 소수의 장로들이 다스리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교인들을 분별력 없는 ‘눈 뜬 맹인’으로 만들어 한국 기독교의 수준을 저하시켰습니다. 또한 교회 건물을 잘 지어놓고 매력적인 프로그램, 곧 서비스를 공급하면 사람들이 모여 든다는 상업적, 소비주의적 사고는 ‘목회 성공’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의 야심과 결합하여 무리한 건축으로 교회를 부채 더미 위에 올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만 분주하게 봉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우리 한국 교회가 개교회 중심의 ‘교회교(Churchianity)’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교(Christianity)’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도적 교회를 부정하거나 교회의 중요성을 부인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어울리는 존엄을 제대로 구현해 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영성사에서 ‘제자도(discipleship)’, 곧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매우 중요한 흐름을 형성해 왔습니다. 신약성서의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4세기의 사막 교부들, 6세기 성 베네딕트(Benedict of Nursia: 480-547)와 그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자들, 13세기 성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 1182-1226) 등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제자로서 살기를 추구하며 기독교에 역동성을 불어 넣어왔습니다. 한국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기철, 손양원, 이현필, 김교신, 방지일 등은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고자 했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오늘 한국 교회 안에는 ‘제자 훈련’은 넘쳐 나지만 제자들은 희소하고,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가 말한 ‘값싼 은혜’를 즐기는 소비자 신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식’ 위주의 기존의 제자훈련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제자로 온전히 형성해 내는 데에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교회와 교단을 초월한 ‘제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아닌, 실제적인 제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복음적인 가치와 삶의 규칙을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고, 실천하는 사랑의 연대(solidarity)를 꿈꿉니다. 규칙(rule)은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주요한 수단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규칙을 주셨습니다(마태복음 10:1-15). 성서와 기독교 영성 전통에 근거하고 오늘날의 시대에 적합한 규칙들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고, 또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개교회의 담장을 넘어 연대한다면, 한국 교회가 ‘교회중심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제자 공동체’로서의 생명력과 존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영화 "Son of God"

  1. 브루스 헌트, 《브루스 헌트》(서울: KIATS, 2013), 254-55. [본문으로]
  2. Ibid., 256-57. [본문으로]

'잡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성경 퀴즈 자료  (0) 2014.11.17
물에서 건져낸 생명: 세례, 입교 교육 자료  (0) 2014.03.30
[희곡] 전도사 김봉두  (0) 2014.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