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달랑

단추   

  같이


 



얼마 전 밤늦은 시간에 지하철을 탔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웃지 못할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한 중년 남성이 상체가 왼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졸고 있었는데, 90도 가까이 꺾인 머리가 두 칸 옆에 앉은 한 젊은 여성의 어깨를 주기적으로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여성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앉아 그 남성을 불쾌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잠에 빠진 중년 사내의 머리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남성과 여성 사이의 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것을 못 본 듯, 그저 서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는데, 문득 시 한 편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그 남성과 여성 사이의 빈자리에 앉아 술에 취한 남성의 머리를 어깨로 받쳐 주었습니다. 하지만 기울어진 몸과 머리가 누르는 힘이 어찌나 센지 저는 옆의 여성에게까지 밀리지 않기 위해 몸에 힘을 잔뜩 준 채 버티고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금방 다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시를 다시 떠올리며, 목적지까지 버텼습니다. 이 날 저를 남들이 마다하는 자리에 앉아 버티게 한 시는 김응교 시인의 단추입니다.

 

단추

 

옆 사람이 심하게 졸고 있다

객차가 흔들릴 때마다 내 어깨에 머리를 박는다

검은 넥타이를 보니 상가에서 밤새우고

자부럼 출근하는가 보다

 

와이셔츠 단추 하나가 떨어지려는데

꿰매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그나 나나 비슷한 처지라며

작은 단추가 봉지처럼 달랑거린다

 

가만 어깨 베게 대줬더니

손에 들린 신문처럼 반대편으로 넘어간다

반대편 사람도 저무는 어깨를 대준다

단추도 우리도 악착같이 붙어 있다

 

이 시는 최근 발간된 김응교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2018)에 실려 있지만, 사실은 몇 년 전부터 서울 시내 어느 지하철 역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되어 여러 사람들의 눈길을 끈 작품이기도 합니다. 좁은 지하철 좌석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박으며 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드문 경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흔한 경험을 낮선 이에 대한 따뜻한 친절과 시적 통찰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시를 써내었습니다.


먼저 1연에서 시인은 옆 자리에서 심하게 졸고 있는 낯선 사내를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좌석은 비록 엉덩이를 올려놓으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지만, 전 날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출근길에는 잠시나마 긴장을 내려놓고 쉼을 누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중한 쉼을 방해하는 옆자리의 승객을 시인은 경계나 원망의 눈초리가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검은 넥타이를 매고 졸고 있는 그 사람이 지금은 출근길 지하철 좌석에서 다른 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지만, 지난밤에는 어느 상가에서 애통하는 그 누군가의 곁을 밤새 지켜준 의리와 연민이 가득한 존재라고 추측합니다.


2연에서 시인의 시선은 사내로부터 자신에게로 옮겨집니다. 자신의 와이셔츠에서 떨어질 듯 달랑거리는 거리는 단추를 보며, 그는 봉지처럼 흔들리는 사내와 동질감을 느낍니다. 시인은 단추가 달랑거리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다시 고쳐 꿰맬 여유도 없이 아침이면 바쁘게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생활에 묶인 사람입니다. 또한 옆 자리의 사내도 상가에서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보통의 시민입니다.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시인은 옆자리의 사내에게 자신의 어깨를 빌려 줍니다.


3연으로 가면 이제 시인의 시선은 반대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됩니다. 시인이 사내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어 주자 그는 손에 들린 신문처럼힘없이 반대편으로 넘어갑니다. 그 가련한 인생에게 반대편 사람도 저무는 어깨를대어줍니다. 그 사람의 어깨가 해가 저무는 것처럼 가라앉은 것을 시인은 알아챕니다. 이쯤 되면, 중간에서 좌우로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은 민폐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양옆의 사람들을 긍휼과 공감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러한 확장된 연민과 동질감 속에서 이 시는 단추도 우리도 악착같이 붙어 있다는 선언으로 끝이 납니다.


단추같이 악착같이 붙어 있는 인생, 이 말은 상가에서 밤을 지새우고서도 출근길에 올라야하고, 단추를 꿰맬 시간도 없이 이른 아침 버스나 전철에 몸을 실어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합니다. 그러면 시 속의 그들은, 아니 우리는 무엇에그리 악착같이 붙어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힘으로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달랑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이렇게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남기며, 문학에세이 연재를 끝맺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Magazine Hub 62 (2018년 6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거진 허브는 건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지역 및 계층 간 문화 격차 해소, 문화예술 인재의 발굴과 양성 등을 통하여 사회문화의 창달과 국민의 문화생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무료로 배포하는 월간전자간행물입니다. 구독 신청 : 예장문화법인허브. hubculture@daum.net. 다음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온라인에서 잡지를 보시거나 내려 받으실 수 있습니다. 잡지 보기.


'시와 수필 > 문학에세이 (Magazine Hub)'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점이 시점이다  (0) 2018.11.29
오늘도 찾아오시는 선생님  (0) 2018.05.09
꽃이 그리워서  (0) 2018.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