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예배

날적이/사역일기 2021. 11. 20. 09:06

지난 주간에는 두 분의 임종예배를 드렸다. 한 분은 요양원에 오래 동안 계신 어르신인데, 위드 코로나와 더불어 면회가 가능해졌다는 가족의 연락을 받고, 가능한 빠른 날짜를 잡아서 찾아뵈었다. 간병사는 환자가 평소에 의식이 없을 때가 많다고 하였지만, 어르신은 어린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침대에 누운 채로 면회실로 내려오셨다. 이렇게 심방을 가면 의식이나 정신이 없던 분들도 그때만큼은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을 종종 경험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시편 23편을 읽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선하신 목자 되신 예수님과 손을 잡고 가면,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와 같은 아버지의 집, 천국에 이르러 영원히 거하시게 될 것이니 두려워 하지 말고, 용기 있게 죽음을 맞으시라는 요지의 말씀을 전했다.

간단한 예배가 끝난 후 따님들이 아버님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과 손을 만지며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비록 어르신은 지금 말씀도 제대로 하시지 못하지만, ‘혹시 수십 년 전 따님들이 어린 아이였을 때 당신께서 예쁜 딸들을 쓰다듬고, 안아주던 때를 회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은 거의 변함이 없었지만, 눈빛에서 만족과 고마움이 읽혀졌다. 그렇게 면회는 기쁨 속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난 어젯밤 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요양원 면회가 며칠 만에 다시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면회실 문이 다시 닫힌 것은 안타깝지만, 잠시 열린 틈에 임종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감사하였다. 어르신은 중증치매 환자로 거동을 못하시고, 연하 장애가 있어 콧줄로 유동식을 공급받고 계셨지만, 아직 영양분을 공급받으시니 좀 더 버티실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이틀 전 임종예배를 드렸던 또 다른 한 집사님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그분은 아직 연세가 그리 많지 않으신데, 몸속 깊숙이 자리 잡은 암을 끝내 이기지 못하셨다. 집사님은 약 2년 전, 내가 지금 교구를 처음 맡을 때부터 암투병 중이셨다. 그때는 매주 운전을 해서 교회에 나오실 수도 있었으나 점점 몸이 약해지셔서, 나중에는 음식도, 물도 마실 수가 없는 상태가 되셨다. 집사님께서 검사와 치료를 반복하시는 동안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극심한 고통을 없애주시고, 평안케 해달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집에 계실 때는 심방을 가서 함께 예배하였지만, 병원에 들어가시면 가족 외에는 전혀 면회를 할 수 없어 간혹 전화로 기도할 뿐이었다. 그러다 이틀 전엔 가족들이 병원에서 호출을 받고 마지막 면회를 들어갔을 때, 전화로 임종예배를 드렸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19-22)

아담의 후손인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성도들에게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생명이 꺼져가는 집사님께, 이제 잠시 잠을 주무시다가 주님의 품에서 다시 깨어나실 것이니 두려워 하지 마시라는 요지의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뵙자고 작별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집사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감사합니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말씀을 나누고 기도해 드리면, 집사님은 항상 “목사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일은 추수감사주일이다. 비록 집사님께서는 추수감사절을 맞지는 못하셨지만, 이미 집사님의 마음에는 감사가 가득했다. 고통 속에서도 늘 감사하며, 인내하셨던 집사님의 구원이 이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12)

2021.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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