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7. 토.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셀폰을 임대해서 동생에게 전화했다. 이제 '강제 무소식'의 시기가 끝났다. 수화기에 귀를 대고 규칙적으로 울리는 발신음을 들으며, 어떤 소식이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동생이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이전보다 조금 밝은 것 같다. 드디어 아버지께서 의식이 돌아오셨고 사람을 다 알아 보신단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사하다. 국내선으로 갈아 타기 위해 인천에서 김포로 가는 공항철도를 탔는데, 마침 영종도의 바다 저편으로 해가 넘어간다. 석양을 바라보는데 주님과 시선이 마주친 듯 하다. 긴장된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장모님과 처형이 마중 나와 있다. 힘이 들고 어려운 시기에 가장 힘이 되는 사람들은 역시 가족이다. 처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을 떠나 시내로 들어갔다. 3개월만에 다시 보는 부산. 이렇게 돌아오게 될 지는 몰랐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제한 되어 있어서 집으로 바로 갔다. 아버지와 학교 시험을 앞둔 조카 한 명을 제외하고 온 식구가 모여 있다. 누나도 주말을 이용해 서울에서 내려와 있다. 부산과 서울 그리고 버클리, 각각 따로 떨어져서 걱정하다가 이렇게 함께 모이니 그래도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동생이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자세하게 말해 주었는데,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이야기할 때 눈에 눈물이 고인다. 부모님께서 검사 받으실 때부터 지금까지 옆에서 혼자 모시면서 마음에 안고 있었던 부담을 가늠케 한다. 



2013. 4. 28. 주일.


병원 면회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1부예배에 갔다. 애굽으로 가기를 주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확신시켜주시는 본문이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출애굽기 4:17)는 말씀이 눈에 들어 온다. 내가 가진 지팡이, '기도'로 아버지께서 회복되시고 일어나시는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병원으로 갔다. 


면회 시간이 되니 많은 사람들이 중환자실 앞에 모여 면회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가족도 그렇지만 모두 딱한 사람들이다. 드디어 중환자실이 열리고 가족 중 제일 먼저 아내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들어갔다. '아! 아버지!' 당신은 너무나 애처로운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 계신다. 아버지의 몸에는 알지 못하는 각종 기계들과 튜브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고, 사지는 침상에 묶여져 있다. 아버지는 우리를 알아 보시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신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촉촉해진다. 우리의 가슴이 뭉개진다. 중환자실에 계셔서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시편 23편을 읽어 드렸다.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리고 '이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기도 드렸다. "태초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되게 하신 주님, 오늘 아버지의 코에 산소를 불어 넣어주셔서 아버지의 폐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바람, 성령께서 아버지의 가슴에 늘 계셔 주시옵소서."


오늘은 외가식구들이 여러분이 오셔서, 면회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당 벽에 걸린 홍보물에서는 환하게 웃고 있는 여주인이 일손이 없다며 서빙도 늦고 불친절해서 아내와 제수씨가 직원처럼 직접 물과 음식들을 날라야 했지만, 의식을 찾으신 아버지로 인해 식탁에는 기쁨이 있었다.

 


2013. 4. 29. 월.


아침에 부모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면회를 오시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자꾸 사람들이 찾아 오는 것도 부담스러우신 가 보다. 이것을 계기로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점심 면회 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가자 목사님 부부와 아버지께서 속하신 남전도회 소속 장로님들께서 와 계셨다. 목사님 부부께서 면회를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버지께서 깨어 계셔서 미소로 맞으셨다고 한다. 목사님께서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함께 들어가지 않아서 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으신 장로님들은 아버지께 용기가 되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저녁 면회를 기다리며 중환자실 앞에 서 있는데, 아버지는 아직 면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미 두 번의 위기를 경험하신 어머니는 혹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지 조금 불안해 하신다. 나는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려고 아마 체외순환기를 교체하는 것일 거라며 말씀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뒤에 들어가보니 담당 의사가 기계를 교체하였다고 말해준다. 아버지의 폐가 적응하실 수 있도록 단계를 낮추어 기계 연결 방식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막 시술을 끝내신 후라 아버지의 호흡이 가쁘고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안정되신 것으로 생각했던 어머니는 이 모습을 보시고 또 불안해 하신다. 어머니의 마음이 생각보다도 더 약해지신 것 같아 지켜보는 마음이 아린다. 



2013. 4. 30. 화.


어머니께서 염려와 불안으로 밤에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한 모양이다. 함께 아침을 먹는데, 음식도 제대로 넘기시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신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아침을 드신 어머니는 가까운 병원에 가서 영양제라도 맞고 와야겠다며 나가신다. 어머니도 나름 고통과 불안을 이겨내고 기운을 차리시려고 노력하고 계신다. 이러다가는 어머니도 병이 들겠다 싶어 친구 두철이가 하는 한의원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했다. 그리고 점심 면회와 저녁 면회 사이 시간에 어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 다녀왔다. 착한 친구 두철이가 친절하게 상담하고 이것저것 조언을 해준다. 특히 어머니에게 집에만 계시지 말고 외출과 활동을 자주하셔야 활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퇴원하시고 집에 계시면 정말 어머니가 외출을 하실 수 있을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아버지께서 어제보다 많이 안정되어 보이시고, 각종 수치도 좋아서 어머니의 마음이 좀 회복되시는 듯하다. 아버지께서 자꾸 무언가를 말씀하시고 싶어 해서 손에 펜을 쥐어 드리고 글자를 쓰시게 해는데 알아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저녁에는 아버지께서 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입력하시는 방법을 아시는 것을 기억하고, 일종의 글자판을 만들어서 아버지랑 의사소통을 시도했으나 그것도 잘 되지 않는다.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 저녁 면회를 마치고 누나는 아이들 때문에 밤에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누나는 더 부모님 옆에 있고 싶어 했는데 서울에 두고 온 첫째와 둘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막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울어서 고생했다고 한다. 누나와 자형도 고생이 많다.



2013. 5. 1. 수. 노동절.


며칠 전 체외순환기의 연결 방식을 변경한 이후에 큰 변화 없이 시간이 흘러 가고 있다. 아버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매우 궁금해 하시는 듯하다. 계속 입을 움직이시면 무엇인가 의사를 표현하시고 하신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수술 후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수술대에 누우셨는데, 열흘이 다 되도록 중환자실에 계시니 매우 혼란스러우실 것이다. 아버지는 이전에 치과 진료를 받으실 때에도 항상 모든 치료과정을 상세히 아시고 싶어하셨다. 아버지께 최대한 긍정적으로 진행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안심시켜드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에 가족들의 생각이 모였다. 


저녁 면회를 마치고 나오다가 아버지를 담당하는 레지던트 의사를 복도에서 만나서 경과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젊은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가족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체외순환기를 언제 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잠깐 뜸을 들이더니 "며칠 내에……"라는 막연한 대답을 준다. 그래도 그 대답에 희망을 가져 보려고 애쓴다. 



2013. 5. 2. 목.


병원에 가기 전 오전시간을 활용해, 자동차 정비소에 갔다. 아버지 차의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부품교환과 가스충전을 통해서 간단하게 수리가 되었다. 아버지도 이렇게 간단한 수술인 줄 알고 길어도 열흘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병원에 걸어 들어가셨는데, 열흘 째인 오늘도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계신다. 생각보다 자동차 수리비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병원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병원비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수술하고 입원해 계신지 열흘 정도의 병원비 중에 본인부담금이 천 만원을 훌쩍 넘었다. 암환자는 본인부담금이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항목이 많은 듯하다. 동생과 누나는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알아서 할 테니 병원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마라고 한다. 걱정은 안 하지만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동생과 누나에 대해 미안한 마음과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에서도 아주 가난한 계층인 나는 한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병원 원무과에서는 수술 전 담당 교수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아직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시고 계시는 아버지의 휴대폰으로 병원비 중간 정산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저녁 면회 때 마지막으로 들어갔던 동생이, 최근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서 수술 직후와 달리 아버지의 왼쪽 폐가 모두 흰색으로 변해 있다며 이상하게 여긴다. 난 괜찮겠지라고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늘 점심엔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분의 부인이, 그리고 저녁에는 사돈 어르신 내외분께서 면회 오셨다. 다들 우리에게 밥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식당에 갔지만, 신세지기 싫어하는 동생이 모두 계산을 선수쳐 버렸다. 그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나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아버지가 글자를 좀더 알아 볼 수 있게 쓰셨다. 그런데 상황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셔서, 아버지가 꿈과 현실을 잘 구분 못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했다. 수면유도제를 계속 맞고 있어서 그러실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2013. 5. 3. 금.


오늘도 담당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마침 체외순환기 담당 기사가 옆에 있어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동생의 말처럼 중환자실에 다시 들어가신 후부터 며칠 사이에 아버지의 왼쪽 폐가 아랫부분부터 점차 흰색으로 변해 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왼쪽 폐가 완전히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기사에게 왜 그런지 질문했더니, 담당 교수에게 말해 놓을 테니 설명은 내일 교수에게 직접 들으라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개운치 않아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왼쪽 폐가 흉수로 가득 찬 것이 거의 확실한 것 같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근거들을 모두 모아서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정작 내 마음속에는 염려가 점차 차 오른다. 최근 며칠 동안 병세가 아주 조금이지만 회복하고 계신 것 같아서 살짝 안도하고 있었는데, 폐렴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 아닌가 하여 다시 걱정 모드로 돌아섰다. 


오늘 저녁에는 부산 반대편에 사시는 한 친척께서 멀리서 버스를 타고 병문안을 보셨다. 그런데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보시고 그만 눈물을 흘리시자, 옆에 있던 직원이 수술이 잘 되어서 회복되고 있는데 환자 불안하게 왜 그러냐며 제지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꼭 면회를 하시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미리 주의를 드려야 겠다. 어머니는 당신은 편히 지내는데, 아버지는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는 것이 안 되셨는지 저녁 내내 표정이 좋지 않다. 



2013. 5. 4. 토.


한국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큰 변화 없이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고생하고 계신다. 오전에 중환자실 문 앞에서 아버지를 담당하는 전공의를 만났다. 붙잡고 물어보니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데, 아무래도 폐렴을 극복하는 것이 회복의 관건인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폐렴이 전날에 비해 조금 좋아졌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런데 저녁 면회 때는 아버지에게 미열이 오르고 호흡도 다시 거칠어 지신 것이 폐렴이 도지는 게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저녁 면회 후 처가에 가서 처가 식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요즘 마음이 약해지신 어머니 곁을 지키느라 처가에는 이제서야 인사를 드린다. 장모님께서 손수 면을 뽑아 만드신 맛있는 칼국수를 먹으면서도, 아버지의 수척하신 얼굴이 눈 앞에서 떠나지 않는다. 동서와 처남이 위로를 전한다. 저녁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어서 돌아가라는 장모님의 재촉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